문재인도 징크스의 덫에 걸리나
  • 이택수│리얼미터 대표 ()
  • 승인 2012.12.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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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 후보, 공식 선거운동 이후 대세 굳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7전 4선승제이고, 그중 1차전을 이기는 경우의 우승 확률은 83%이다. 만일 1, 2차전을 승리한다면 확률은 94%로 높아진다. 실제 올해 한국시리즈 역시 초반 1, 2차전을 내리 이긴 삼성이 결국 우승컵을 안았다. 초반 기세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2002년 대선의 노무현 후보(왼쪽)와 2007년 대선의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확정된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시사저널 우태윤·임준선

대선도 마찬가지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돌입하면 선두가 바뀌지 않는다’는 징크스가 바로 그것이다. 역대 대선을 보면 공식 선거일 직전 여론조사의 판세대로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었다. 이 징크스가 올해에도 그대로 통한다면, 공식 선거운동 시작일인 지난 11월27일 직전 13개 언론사가 일제히 실시한 여론조사 중 오차 범위이기는 하지만 아홉 개 조사에서 앞섰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문재인 민주당 후보보다 다소 유리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노무현, 공식 선거운동 개시부터 선두 나서

올해 선거와 가장 흡사하다고 하는 10년 전의 대선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2002년 대선 당시만 해도 여론조사 공표 금지 시한이 D-6이 아니라, 공식 선거운동 개시 시점부터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앞당겨져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공개된 여론조사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야권 단일화 후보로 확정된 직후인 11월26일 조사였다.

야권 단일화 직후 발표된 당시 문화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후보는 48.2%를 기록해서 39.1%를 기록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9.1%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단일화를 성사시키기 일주일 전 ‘양자 가상 대결’에서는 노후보가 46.2%로, 이후보(42.2%)와 4%포인트 격차를 보였는데, 단일화 이후 더 벌어진 것이었다. 단일화 이전 정몽준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58.9%가 노후보 지지로 선회했고, 부동층에 있던 유권자들도 노후보 지지로 돌아서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가 컸다.

같은 시기 동아일보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노후보는 42.2%로 35.2%의 이후보를 7%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2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후보가 8.2%포인트 차로 앞섰으나, 단일화 TV 토론 직후인 11월23일 노후보가 오차 범위 내에서 이후보를 역전했고, 단일화가 이루어진 뒤에는 다시 격차를 벌렸다.

2007년 대선부터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규제가 완화되어서 여론조사를 선거일로부터 7일 전까지는 할 수 있었다. 따라서 12월12일 여론조사가 법적으로 허용된 마지막 조사였는데, 당시 조사 결과를 보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45% 안팎,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16% 안팎,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13% 안팎,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7% 안팎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실제 대선 득표 결과는 이명박 후보가 48.7%, 정동영 후보가 26.2%, 이회창 후보가 15.1%, 문국현 후보가 8.5%로 각각 나타났다. 정동영 후보 외에는 공표 금지 직전 마지막 조사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정후보는 막판 스퍼트로 여론조사 결과보다 10%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2012년 12월 현재 판세를 보자. 박근혜 후보의 우세가 전반적인 여론조사 기관들의 지표로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와 이정희 통합진보당(통진당) 후보 변수가 남아 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대선 여론조사 징크스가 이번에도 그대로 이어질지, 아니면 처음으로 깨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2년 선거와 같으면서도 다른 부분이 바로 야권 단일화 과정인데, 안철수 전 후보의 갑작스러운 후보직 사퇴와 그 이후의 ‘오리무중’ 행보는 미완의 단일화라는 오명을 얻게 했고, 결과적으로 단일 후보인 문재인 후보가 그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결혼 예식을 준비하다 혼수 문제로 파혼을 당한 예비 신랑 입장에서는, 예비 신부가 밉긴 하지만 그 신부를 달래서 혼례를 치러야 하는 입장인 터라 난감하기 그지없는 셈이다.

‘안철수 일방적 사퇴’로 오히려 박근혜가 앞서

안철수 전 후보가 사퇴를 선언하기 직전 여론조사를 보자. 11월22~23일(조사 대상 1천5백명, 95% 신뢰 수준, 오차 범위 ±2.5%포인트) 리얼미터 조사 결과,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양자 구도 가상 대결에서 박후보가 47.3%, 문후보가 46.6%로 불과 0.7%포인트 격차로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단일화만 되면 시너지 효과로 문후보가 50%를 넘지 않겠느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안 전 후보의 일방적 사퇴로 문후보는 사퇴 일주일 후인 11월30일 조사에서 42.8%로 박후보(48.4%)에게 오차 범위를 조금 넘는 5.6%포인트의 격차로 오히려 뒤처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안 전 후보가 10일 만에 등장한 지난 12월3일 캠프 해단식에서도 진전된 지지 선언을 해주지 않고, 문후보가 안 전 후보의 자택까지 방문했으나 양자 회동이 무산되면서, 문후보는 박후보와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문후보를 더 곤란하게 하고 있는 돌발 변수는 다름 아닌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이다. 지난 12월4일 중앙선관위 주관 1차 TV 토론에서 이후보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박후보를 거칠게 몰아붙였고, 그 토론을 시청한 보수층을 더욱 똘똘 뭉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 유탄은 문재인 후보가 맞았다.

TV 토론 당일과 다음 날 실시된 리얼미터 조사(조사 규모 1천5백명, 95% 신뢰 수준, 오차 범위 ±2.5%포인트) 대선 다자 구도에서 박근혜 후보는 49.7%, 문재인 후보는 42.1%, 이정희 후보는 1.0%로 각각 나타났다. 전날에 비해 박후보는 0.8% 포인트 상승, 문후보는 1.8% 포인트 하락했고, 이후보는 0.2% 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양자 구도에서도 박후보 50.1%, 문후보 45.1%로 전날에 비해 박후보는 0.7%포인트 상승, 문후보는 0.8%포인트 하락했다.

‘안철수 트랩’에 빠진 데다 ‘이정희 유탄’까지 맞은 문후보가 남은 10여 일 동안 안 전 후보의 적극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이후보의 사퇴와 같은 극적인 반전을 맞지 않는 한, 대선 징크스를 깨는 것이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정권 교체를 간절히 바라는 야권 지지층 입장에서는 힘이 빠진 상황이다.

문후보가 과연 대선 여론조사 징크스를 깨는 첫 정치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 징크스의 덫에 걸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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