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은 금물, 눈(雪) 상태를 먼저 보라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12.1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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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면-보드 간 마찰력 고려한 후 스키·스노보드 타야

스위스의 스키장에서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이 완벽한 설질의 슬로프를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흩날리는 눈이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데 제격이다. ⓒ EPA 연합
겨울은 눈의 계절이다. 굵게 엉기어 꽃송이처럼 내리는 눈은 정말 눈부시다. 지난 대설에는 강원 산간과 전북 서해안에 10cm 이상의 폭설이 쏟아졌다. 함박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싸락눈으로 변하다가 진눈깨비가 쏟아지는 풍경까지 연출되었다. 순식간에 일상의 풍경을 덮어버리고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또, 겨울철 운동인 스키나 스노보드를 탈 때 가장 적합한 눈은 어떤 것일까?

온도·습도 따라 눈송이 모양·크기 달라져

눈은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 현상이다. 0℃ 이하에서 수증기가 구름 속의 미세먼지(응결핵)와 만나는 순간 달라붙어 눈 결정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눈 결정은 바람을 따라 구름 사이를 떠다니면서 다른 수증기와 결합해 점점 크기를 키워 눈송이가 된 후 지상으로 떨어진다. 0℃ 이상이라면 눈 결정 대신 비를 내리는 빗방울을 형성할 것이다.

눈의 종류는 하늘의 기상 상태, 즉 온도와 습도에 따라 달라진다. 눈 결정이 만들어질 당시의 수증기(습도) 양과 온도에 따라 덩치가 커져 다양한 형태의 눈송이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싸락눈이 되어 내리기도 한다. 눈송이는 대기 중에서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는데, 1초에 무려 1천조개의 결정이 생긴다. 눈 결정 안에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100경(10억×10억)개의 물 분자가 있다. 따라서 똑같은 생김새의 눈이 내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포근한 날에는 함박눈이 잘 내린다. 눈송이가 떨어질 때 일부가 녹아 서로 잘 엉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춥고 건조한 날에는 이같은 엉김 현상이 적게 일어나 가루눈이 내린다. ‘파우더 스노’라고 말하는 눈이다. 싸락눈(구형의 눈 알갱이)은 0℃ 이하로 냉각된 물방울에 미세한 얼음 알갱이가 달라붙어 생긴 것이므로 원래의 형태를 잘 알 수 없다. 둥근 모양이나 원뿔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 많다.

눈이 녹아 비와 함께 내리면 진눈깨비이다. 보통 눈이 생기는 곳의 기온은 0℃보다 훨씬 낮다. 눈이 형성되는 곳의 온도는 영하 40℃ 정도로까지 알려져 있다. 온도가 더 떨어지면 대기 중 수증기의 양이 적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저온에서 만들어진 눈은, 내릴 때의 지표면 부근 기온이 0℃ 이상이더라도 도중에 모두 녹지 않는다. 다만 일부분이 녹아내려 마치 비가 섞여 내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이것이 진눈깨비이다.

세상에는 눈 결정만큼 천태만상인 것도 없다. 눈 결정의 기본 구조는 대개 육각형이고, 눈이 형성되는 대기층의 온도와 기압, 수증기량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성장한다. 눈은 결정의 모양에 따라 약 80종류, 눈송이의 크기에 따라 약 30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국제 분류에서는 간단하게 눈의 결정에 따라 7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7가지 모양을 살펴보면 판 모양, 별 모양, 기둥 모양, 나뭇가지 모양, 부채 모양, 바늘 모양, 불규칙한 모양이다. 불규칙한 모양을 좀 더 세밀하게 분류하면 3천종이 넘는다.

기온이 영하 30℃보다 낮은 차가운 공기에서는 기둥 모양 같은 단순한 모양이 많이 만들어지고 결정이 크게 성장하지 못한 채 싸락눈이 된다. 날이 춥고 건조할수록 뾰족한 모양의 결정이 생긴다는 얘기이다.

반면, 영하 15℃ 근처의 상대적으로 따뜻한 공기에서 형성된 눈은 주로 예쁜 별 모양이나 꽃 모양 결정이 만들어지고, 결정들이 주변의 결정과 결합하면서 더욱 성장해 함박눈을 만든다. 날이 따뜻할수록 둥근 모양을 만든다는 얘기이다.

재미있는 것은 모든 온도 조건에서 습도가 낮은 경우, 즉 공기의 수증기량이 불포화 상태이면 단순한 구조의 눈 결정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즉, 별이나 나뭇가지 모양처럼 여러 갈래로 나눠지지 않고 단순한 기둥 모양을 띤다.

영하 5℃ 안팎의 파우더 스노가 좋아

겨울철 대중 스포츠로 자리를 잡은 스키와 스노보드. 눈 덮인 설원을 시원하게 가르며 계곡을 상쾌하게 질주하는 스키와 스노보드는 즐거움 그 자체이다. 그러나 속도를 즐기는 스포츠인 만큼 즐거움 크기와 비례해 부상 위험이 크다. 그렇다면 다양한 종류의 눈 가운데 스키나 스노보드 타기에 최고의 설질(雪質)은 어떤 것일까.

스키어나 스노보더들이 가장 선호하는 눈은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나는, 습기를 적당히 머금은 보송보송하고 적당하게 딱딱한 눈이다. 하늘에서 방금 막 내린 ‘파우더 스노’에 가깝다. 이런 눈은 스키를 타고 회전할 때 가루처럼 흩날린다.

일반적으로 하늘에서 방금 막 내린 눈은 스키 플레이트(부츠에 부착하는 기다란 판)의 마찰력을 키워준다. 반면 내린 지 꽤 지난 눈이나 영하 2℃ 안팎의 눈처럼 잘 뭉쳐지는 눈은 플레이트와의 마찰력이 작다. 또 파우더 스노는 눈 자체가 잘 뭉쳐지지 않고 가벼운 편이라 부드럽다. 따라서 넘어져도 푹신하기 때문에 다칠 염려가 훨씬 작다. 보통 영하 5℃ 안팎인 경우 이런 눈이 만들어진다.

눈 위를 달리는 거의 모든 스포츠는 마찰력과 중력의 힘겨루기이다. 산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스노보드를 미끄러지게 하는 힘은 당연히 중력이다. 여기서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면 중력 외에도 바닥면이 떠받치는 수직항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산 비탈면인 경우에는 중력의 방향과 수직항력의 방향이 일직선에 있지 않으므로 이 두 힘을 합한 알짜 힘은 비탈 아래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이 힘들뿐이라면 우리는 결코 스노보드를 탈 수 없다. 왜냐하면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가 접하는 자연 세계에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운동을 방해하는 마찰력이 존재한다. 스노보드를 탈 때 운동을 방해하는 마찰력은 눈으로 덮인 바닥면과 보드가 닿는 면과의 마찰력이다.

스노보더가 눈 위를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고 있는 동안 바닥과의 마찰력이 하는 일은 마찰열을 발생시키고, 이 열은 접촉하고 있는 눈을 녹여 얇은 수막을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스노보드나 스키를 타는 것은 얇은 물 위를 미끄러지는 것과 같다. 이런 마찰력으로 인해 속도가 무한히 커지지 않고 속도를 조절해 눈 위를 미끄러질 수 있는 것이다.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눈은 비교적 잘 미끄러진다. 하지만 습기를 많이 머금으면 머금을수록 눈은 무거워지고 쉽게 스키 바닥에 달라붙는다. 질척해질 정도로 습기가 많은 눈은 마찰 계수가 매우 높아 오히려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스키 타는 날의 날씨도 설질에 영향을 미친다. 날씨가 너무 따뜻하면 설질이 안 좋아진다. 너무 추워도 활주성이 떨어져 좋지 않다. 설질 기온은 5℃에서 영하 5℃ 사이가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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