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입’ 세대교체… 젊어지고 유연해졌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12.1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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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학번 떠나고 80년대 학번 부상 ‘경제 민주화’ 대응 논리 개발이 첫 과제

(위쪽부터시계방향으로)ⓒ 뉴스뱅크 이미지, ⓒ 연합뉴스, ⓒ 연합뉴스, ⓒ 뉴시스

연말을 맞이해 대기업 홍보 임원의 승진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삼성은 그룹 홍보를 담당하던 미래전략실의 임대기 부사장을 제일기획 사장으로 승진시켰고, 이인용 부사장을 커뮤니케이션팀 팀장·사장으로 승진시켰다. KT의 인사에서는 30여 년 동안 KT의 대외홍보를 담당했던 이길주 홍보총괄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KT문화재단 이사장으로 보직을 바꿨다. LG그룹의 대표 홍보맨 정상국 부사장이 퇴진하고 유원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으며, GS그룹에서도 여은주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다. 현대중공업그룹에서는 김문현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는 등 재계 홍보맨들의 승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의 특징은 70년대 학번이 저물고 80년대 학번이 각 그룹의 홍보 책임자로 등장했다는 점과 홍보 임원에 방송기자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의 최고 홍보 책임자로 떠오른 이인용 사장은 MBC 앵커 출신이고, 김은혜 KT 전무 역시 MBC 보도기자 출신으로 이명박 청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KT로 옮겨와 기업 임원으로 변신한 경우이다.

이인용 사장이 2005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때 재계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익’ 기준에 맞춰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던 방송사 보도국 부국장을 지낸 인물이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옮긴 것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은 결과적으로 그의 영입으로 플러스 효과를 보았다.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친근한 이미지의 이인용 사장이 말 그대로 삼성의 대변인(spokes man)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업 홍보 담당자가 콘텐츠 전문가인 기자를 상대로 하는 일종의 ‘B to B’ 업무였다면, 대중에게 지명도가 높은 이사장은 ‘B to C 비즈니스’(대중을 직접 상대)에도 능했기 때문이다. 삼성이 최근 들어 삼성 블로그를 개설하며 대중을 상대로 자사의 이해관계와 사실관계를 직접 알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물론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크게 바뀐 미디어 환경이 한몫하기도 했다.

대중에게 친숙한 방송기자 출신 부각

비슷한 흐름으로, 정치권으로 유입되었다가 홍보 전문가로 변신한 MBC 기자 출신 김은혜 KT 전무가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전무가 된 것을 꼽을 수 있다. 방송기자 출신들은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던 존재라 기존의 기업 홍보 전문가와는 다른 패러다임을 지니고 있다.

재벌 그룹에서 30년 이상 홍보 활동을 해온 홍보 전문가 김 아무개씨는 ‘홍보인 자체가 취재 대상이 되는 순간 끝’이라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최근 방송인 출신이 또 다른 흐름을 형성하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이들을 말 그대로 “대변인”이라고 불렀다. 그룹의 이해관계를 사내외, 언론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끈끈한 관계도 유지하고 몸으로 뛰던 기존 기업 홍보 패러다임과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에서는 평사원 때부터 홍보실에서 수련을 한 자체 홍보 전문가를 키우거나 신문기자 출신을 영입하는 것이 관례였다. 삼성의 이인용 사장은 삼성의 차세대 오너로 꼽히는 이재용 부회장과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후배 관계라 더욱 눈길을 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할 때까지 이사장이 삼성의 언론담당 최고 책임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이사장의 승진과 함께 그룹 홍보 담당을 떠나 제일기획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임대기 사장은 원래 제일기획 출신이었고, 상무로 승진한 뒤 2005년부터 구조본 홍보팀으로 호출되었다가 전무 승진을 했으며, 2008년 제일기획으로 복귀했다가 6개월여 만에 다시 구조본으로 돌아왔다. 임사장은 삼성미래전략실 홍보 담당으로 일하면서 체계적인 기업 광고나 브랜드 전략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언론을 상대로 하는 홍보 말고도 일반 대중을 상대로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대중에 좀 더 가깝게 끌어다 놓는 데 한몫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번에는 사장으로 ‘금의환향’하게 되었다. 삼성에서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제일기획 사장을 지낸 배동만 전 사장도 그룹 홍보 책임자와 제일기획 사장을 번갈아 지내는 등 그룹 홍보 전문가가 제일기획 사장으로 가는 것이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번 재벌그룹 홍보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은 80년대 학번이 책임자로 대거 올라섰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의 김문현 전무는 승진과 함께 울산의 인재개발원 책임자로 갈 것으로 알려졌다. 김문현 전무는 2000년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으로 쪼개질 때 현대중공업으로 몸을 옮긴 현대그룹 문화실 출신이다. 김전무는 78학번으로, 그가 문화실 과장으로 있을 때 함께 일했던 현 현대오일뱅크 금석호 이사와 이번에 승진한 허광회 현대오일뱅크 홍보 담당 이사가 2001년 현대중공업에 합류했다. 금이사나 허이사는 80년대 학번. 현대중공업그룹도 홍보 인맥의 세대교체에 들어간 셈이다.

정치 환절기 앞둔 재계의 창구 정리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 LG그룹 홍보실에서 함께 일했던 유원 전무와 여은주 전무도 최고 홍보 책임자로 떠올랐다. 유전무는 1987년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기조실에 입사한 뒤 몇 번 소속사가 바뀌기도 했지만 그 이후 계속 홍보 업무를 맡아왔고 이번에는 ㈜LG의 홍보 담당 전무로 승진했다. 유전무의 입사 1년 후배인 여전무는 2002년 그룹 홍보실을 떠나 LG카드로 발령받았지만 카드 사태로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4년 GS그룹이 LG그룹과 분리되면서 GS그룹 지주회사에 합류해 홍보 업무를 담당해왔다. 여전무의 승진은 GS그룹에서 홍보 전문가로는 처음 전무급 고위 임원으로 발령이 났다는 의미도 있다.

LG그룹은 유상무의 전무 승진과 함께 LG전자의 전명우 상무와 LG화학의 조갑호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지난 2~3년간 LG그룹에서 전자 부문이 부진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이들에 대한 승진과 격려는 LG가 턴어라운드 신호를 외부에 알리는 것으로도 해석되어 이들이 어떤 활약을 보일지 주목받고 있다.

그 밖에도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코오롱 김승일 홍보담당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고, 한솔그룹의 홍보 업무를 총괄하는 김진만 경영기획실 홍보담당 이사가 상무로 승진했다.

내년에는 이번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 공약이 주요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기업 환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계 홍보맨은 이 이슈를 선점하거나 방어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대응해야 할 것 같다. 삼성에서는 언론인 출신의 이인용 사장과 기자 출신의 부장이 미래전략실에 포진해 있다. 현대차도 올해 기자 출신의 공영운 전무를 기획에서 홍보쪽으로 보직 발령을 냈다. 더 젊어지고 언론 생리와 흐름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전직 언론인-현직 홍보인’이 바뀌는 정치·경제 흐름에서 어떤 솜씨를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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