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차 전선’ 사수 나선 에쿠스·K9
  • 엄민우 (bestmw1@naver.com)
  • 승인 2012.12.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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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VVIP 맞춤형 마케팅’으로 대반격 나서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에쿠스 프라이빗 쇼룸’에서 고객들이 차와 관련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12월11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에쿠스 프라이빗 쇼룸. 겉에서 보면 거대한 검정색 박스를 연상케 한다. 창문 하나 없는 검정 벽면에 커다랗게 ‘EQUUS’라고 쓰여 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새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내부 공간은 마치 재벌 회장 집 마루를 연상케 했다. 벽면에는 72인치 대형 벽걸이 TV가 걸려 있고 8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둥글게 놓여 있다.

TV에서는 오페라 공연이 한창이다. TV 양 옆에는 웬만한 성인 여성 키 정도의 스피커가 놓여 있다. 해당 스피커는 탄노이 사의 제품 ‘킹덤로얄’로, 가격이 7천만원 상당이다. 가운데 놓인 진공 엠프는 유니스 리서치 사 제품으로 3천만원이다. 음향 시설만 1억원으로 에쿠스 차 가격과 맞먹는다.

오페라 공연이 끝나자 양복을 입은 프리젠터(발표자)가 앞으로 나와 ‘에쿠스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대해 설명한다. 이후 차량 안내를 맡은 직원이 고객들을 비치된 차로 안내한다. 고객들은 대부분 VVIP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승진한 홍원표 삼성전자 사장도 이곳을 찾았다.

‘수입차 열풍’에 숨죽이던 현대차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수입차로 눈을 돌린 머리 희끗한 중년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VVIP 맞춤형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현대차는 그동안 고급차 부문에서 자존심을 구겨야 했다. 수입차 열풍으로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부문이 고급차 분야였기 때문이다. 수입차는 문턱을 낮추며 국내 시장을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3천만원대 수입차가 쏟아져 나왔다. 아우디는 독일 현지 가격보다도 싼 가격으로 차를 내놓았다. BMW는 공격적으로 서비스센터를 늘려갔다. 연비 20km에 가까운 디젤 차량들이 나오면서 연비 면에서도 국산차를 압도했다. 이렇게 공격적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한 결과 수입차는 국내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하게 되었다. 10%는 그동안 수입차가 넘기 힘든 장벽으로 여겨져왔다. 업계에서 수입차 점유율 10%는 100m 달리기에서 8초대를 기록한 것만큼 놀라운 일로 여겨진다.

과거 수입차 시장과 국산차 시장은 별도의 시장처럼 나뉘어져 있었다. 수입차가 많이 팔린다고 해서 국산차 시장이 위축되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10%가 넘어가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언제나 현대·기아차를 탈 것 같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수입차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고급차 부문에서 두드러졌다. 수입차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 가치를 바탕으로 VVIP들의 마음을 흔들어댔다. 고급차 시장을 내준다는 것의 의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치명적이다. 첫째는 브랜드 가치나 이미지 측면에서 밀린다는 것이고, 둘째는 실속을 챙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급차는 소형차에 비해 마진율이 높다. 일반 소형 차종은 5~10%가량 마진을 남기지만 대형차는 최소 10%에서 많게는 30%까지 마진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급차 종목에서의 승패는 자존심 문제를 넘어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고급차 싸움의 구도는 아무래도 수입차 브랜드에게 유리하다. 수입차 브랜드는 그동안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한 전략을 펼치면 된다. 가격을 하락시켜도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가격 할인 정책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대차는 아직까지 고급차보다는 양산차의 이미지가 크다. 따라서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며 밑에서 위로 치고 올라가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현대차는 요새 VVIP를 모시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고급차 전선으로 병력을 집중 투입하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서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문을 연 ‘에쿠스 프라이빗 쇼룸’은 이러한 현대차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프라이빗 쇼룸은 일반 판매점이나 대리점과는 개념이 다르다. 소수의 고객을 위해 맞춤형 정보와 편의를 제공한다. 자동차 고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이다. 에쿠스 프라이빗 쇼룸은 서울 청담사거리 인근에 마련되었다. 반경 1km 안에 BMW·벤츠 등 다수의 수입차 브랜드 매장이 자리한 곳이다. 수입차 매장이 즐비한 한복판에 정면으로 치고 들어간 것이다.

‘프라이빗 쇼룸’에 전시된 에쿠스 페이스리프트 모델. ⓒ 시사저널 임준선
골프 레슨부터 요트 투어까지 파격적 혜택

VVIP들에게 에쿠스가 갖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중년 남성들에게 에쿠스는 곧 성공과 지위를 의미한다. 벤츠·BMW 등 수입차 브랜드 중 에쿠스보다 비싼 모델은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대표적 고급 세단은 에쿠스이다. 정부 장관급 인사나 기업 임원 및 CEO들이 모이는 곳의 주차장은 모두 검정색 에쿠스로 가득 채워진다. 프라이빗 쇼룸의 한 관계자는 “이곳의 고객들은 벤츠나 BMW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높은 사람들이 타는 차’라는 에쿠스의 상징성 때문인지 중년층 사이에서는 에쿠스에 대한 특별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기아차는 2012년 마케팅의 키워드를 아예 ‘고급화’로 잡고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대형 세단 K9을 출시하고 영업 거점을 고급화했다. 수도권 등에는 ‘K라운지’를 열어 유명 작가 작품전을 여는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서비스들을 내놓고 있다. 고급차의 이미지에는 ‘어떤 사람들이 타느냐’ 하는 점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점에서 올해 출시한 K9은 에쿠스나 수입차에 비해 2% 부족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아차는 K9을 의전 차량으로 제공하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 11월 한국을 방문한 독일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에게 K9을 의전차로 제공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내한한 볼쇼이 극장 공연 팀에도 열흘 동안 K9을 타고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VVIP 고객의 마음을 잡기 위해 기아차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최경주·임진한 등 골프 프로에게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고객 100여 명을 초대해 1박 2일 럭셔리 요트 투어를 보내준다. 고객 2백여 명을 초대해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보여주고 인천공항에서 무료로 발렛파킹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K9 고객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VVIP들이 흥미를 끌 만한 이슈, 각 분야 명사들의 인터뷰, 경영 지식 정보 등을 제공한다.

이 모든 서비스가 단지, ‘K9을 탄다는 이유’ 하나로 제공되는 것들이다. 콧대 높던 국내 고급 차량들이 이처럼 친절해진 것은 소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수입차 점유율이 올라가면서 국내차가 가장 큰 피해를 본 부문이 고급차 라인이다. 최근 VVIP 마케팅은 고급차 라인에서 수입차 브랜드에 정면 승부를 걸겠다는 현대·기아차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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