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 터지는 회장님들의 ‘빵 전쟁’
  • 엄민우 (bestmw1@naver.com)
  • 승인 2012.12.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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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때문에 생긴 허영인 SPC 회장과 이재현 CJ 회장의 30년 악연

허영인 SPC 회장과 이재현 CJ 회장(왼쪽부터). ⓒ 뉴스뱅크 이미지·시사저널 자료사진
허영인 SPC 회장과 이재현 CJ 회장. 두 사람은 재계에서 대표적으로 ‘악연’을 맺고 있다. 제빵 원료 공급자와 구매자로서, 때로는 제빵업계 경쟁자로서 부딪혀왔다.

최근 두 회장 사이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소송전으로 비화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SPC 계열사인 삼립식품은 밀가루 생산업체인 CJ제일제당과 삼양사를 상대로 ‘밀가루 가격을 담합해 입힌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1월29일 대법원은 SPC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CJ제일제당이 12억4천만원, 삼양사가 2억3천만원을 각각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삼립식품과 CJ제일제당 간 소송의 발단은 약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CJ제일제당 등 국내 8개 업체가 밀가루 공급 물량과 가격을 담합해 소비자들에게 4천억원 이상 손해를 끼쳤다며 4백3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밀가루 중간 소비자였던 삼립식품은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분에 배상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별 진전을 보지 못하자 CJ제일제당과 삼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공정위 결정이 나온 지 7개월 만이었다. 그렇게 제기된 소송이 2010년 2심을 거쳐 최종 판결까지 나게 되었다.

CJ “다른 소송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

이번 밀가루 담합과 관련해 소송을 낸 곳은 삼립을 비롯한 SPC 계열 기업들뿐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과징금 결정이 났는데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업무상 배임으로도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손해를 덜 본 삼립은 소송을 제기했는데, 더 큰 피해를 본 업체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라고 전했다.

손해를 본 부분에 대해 공정위 결정이 나왔음에도 회사 이사진들이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상법 399조를 걸면 배임 행위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취재 결과 삼립뿐 아니라 또 다른 SPC 계열사 샤니도 밀가루 및 설탕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공정위 판결 후 모두 9건의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모두 취하되고 2건만 남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11월29일 최종 판결이 난 소송이며, 이제 샤니가 CJ제일제당을 상대로 한 소송이 1심을 기다리고 있다.

CJ제일제당을 향한 SPC의 포문이 아직 하나 남아 있는 상태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1심 판결을 앞두고 삼립에 협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CJ제일제당이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해 협상이 무산되었다. 당시 제시한 조건은 수년 동안 나누어 돈이 아닌 밀가루로 보상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히려 SPC를 자극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CJ제일제당은 12억원을 보상하게 되었다.

SPC는 이번 판결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일단 담합과 관련해 최종 소비자가 아닌 중간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 앞으로 다른 부문으로도 소송이 번질 수 있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이러한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판결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다른 부문으로까지 소송이 번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지금까지 갈등

밀가루 담합 관련 판결이 나온 때로부터 약 열흘 후 CJ푸드빌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지난 12월10일 CJ푸드빌은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뚜레쥬르 가맹점 확장을 자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SPC측은 CJ푸드빌의 이러한 결정을 파리바게뜨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뚜레쥬르의 ‘가맹점 순증’ 자체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확장을 자제하겠다고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순증이란 ‘순수하게 증가한 매장 수’를 뜻하는 업계 용어이다. 늘어나는 가맹점 수보다 폐장하는 점포 수가 많으면 그해 순증은 마이너스가 된다. 지난해 뚜레쥬르의 순증은 마이너스 1백20이다. 1천4백1개였던 매장이 1천2백81개로 1백20개 줄었다. 뚜레쥬르는 가맹점 숫자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고 있어 가맹점 확장을 자제해도 별 부담이 없으리라는 것이 SPC의 주장이다.

반면 파리바게뜨의 사정은 다르다. 파리바게뜨는 뚜레쥬르와 달리 계속해서 점포 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해에는 2천6백75개에서 3천95개로 4백20개가 순증했다. 가맹점 확장 자제 바람이 불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곳은 파리바게뜨인 것이다.

CJ푸드빌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손해를 감안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다. 매장 수가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확장 자제를 선언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CJ와 SPC의 악연은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본격화했다. 당시 SPC 계열사인 샤니의 부도설이 나돌자 CJ는 샤니에게 밀가루 대금을 현금 결제할 것을 통보했다. 샤니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CJ는 밀가루 공급을 중단했다.

CJ는 이 무렵 파리바게뜨 인력을 빼내갔다. 뚜레쥬르는 1997년 문을 열었다. 외환위기 때 퇴직하게 된 삼성 직원들에게 ‘먹고살 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후 2009년부터 민간인들에게 가맹 신청을 받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빵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뚜레쥬르는 SPC의 인력들을 대거 흡수했다. SPC 관계자는 “당시 나이 어린 직원들과 임원급을 포함해 100여 명의 직원을 뚜레쥬르가 데려갔다”라고 전했다.

이후 뚜레쥬르와 파리바게뜨는 곳곳에서 부딪쳤다. 지난해 5월 파리바게뜨가 서울 강남에 3층짜리 매장을 열자 불과 이틀 뒤 CJ가 바로 옆에 2층짜리 카페형 뚜레쥬르를 개점했다. 국내를 넘어 베트남 등 해외에서도 뚜레쥬르와 파리바게뜨는 불꽃 튀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뚜레쥬르가 먼저 진출한 동남아로 파리바게뜨가 치고 들어가고 있다. 지난 3월 허영인 회장은 파리바게뜨 베트남 1호점을 깜짝 방문하며 주목받은 바 있다.

‘빵집’을 격전지로 삼은 SPC와 CJ의 신경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허영인 회장과 이재현 회장에게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는 각각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허영인 회장에게 빵 사업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닌 가업이다. 허회장의 부친인 허창성씨 집안은 전쟁 중에도 빵을 만들어 팔았다. 모친에게 업혀 다니면서 빵을 만들고 판매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자란 사람이 허회장이다. 허회장은 직접 매장을 돌며 빵을 시식하고 매장을 점검한다.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신제품 회의에도 해외 출장을 가는 경우가 아니면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문화’를 통한 해외 진출에 주력하고 있는 이재현 회장에게도 뚜레쥬르는 단순한 빵집 이상이다. CJ푸드빌 관계자는 “CJ푸드빌의 목표는 KFC 등을 갖고 있는 미국의 ‘얌’과 같은 세계적 먹거리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서양인에게 밥과 같은 빵 부문에서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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