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바로잡지 않으면 전력난 해소 못한다
  • 김익중 | 동국대 의대 교수 ()
  • 승인 2012.12.1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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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이 싼 탓에 불필요한 전력 수요 부추겨

12월14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전력거래소에 동절기를 맞아 전력수급 비상대책 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는 모습. ⓒ 시사저널 전영기
요즘 매일매일 뉴스 시간마다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전력 수급’ 상황이다. ‘주의’ 또는 ‘경보’ 단계가 그날그날 표시된다. 강추위가 예상되는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전력난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이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난방온도 낮추기 등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렇듯 우리나라가 계획대로 모든 원전을 건설했음에도 전력난에 시달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전력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전력 공급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최근 원전의 부품 납품 비리 사건 등으로 다섯 기의 원전이 가동을 중단하고 있지만, 그 대신 신고리 1, 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가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공급에 큰 변화가 온 것은 아니다. 반면에 수요 쪽은 어떠한가? 정부의 예측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결국 최근의 전력난은 거의 전적으로 수요 관리의 실패 탓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수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전기요금이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체 전력 사용량의 53%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의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원가에도 미치지 않는 산업용 전기요금 때문이다. 최근에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했지만 여전히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1차 에너지인 석유와 가스보다 2차 에너지인 전기가 오히려 싼 비정상적인 에너지 가격이 문제인 것이다.

“원전 발전 단가가 가장 싸다”는 것은 잘못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턱없이 싸다. 주요 선진국의 절반 이하로 판매하고 있다. 특히 중국보다 더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 때문에 해외에서 전기 다소비 업종들이 국내로 유입되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또한 기업들이 다른 에너지원에서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이른바 ‘전환 수요’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한편,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전기요금 때문에 한국전력의 적자 폭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이 적자는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질 것이다. 결국 국민에게 돈을 걷어서 외국 기업을 비롯한 대기업들에게 혜택을 주는 정의롭지 못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기요금이 이렇게 낮게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산업계의 압력도 존재하겠지만 좀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정부는 ‘원자력 때문에 전기요금이 싸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국민의 세금 부담을 늘리면서까지 값싼 전기요금을 유지하는 이유이다. 불행하게도, ‘원전의 발전 단가가 가장 싸다’는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좀 다르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나온 자료만 보더라도 원전의 발전 단가에서 빠져 있는 요소가 너무나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 흔히 원전의 발전 단가에 건설비와 운영비, 연료비만 계산되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폐쇄 비용, 사고 대비 비용, 사회적 갈등 비용, 폐기물 처리 비용 등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원전 홍보를 위해서 전기요금을 낮게 책정하고 있고, 이 낮은 전기요금 때문에 한전의 적자 폭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국민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상대적으로 비싼 가정용 전기요금으로 대기업의 전기요금을 대신 내주고 있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작금의 전력난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전기요금을 바로잡아야 한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않는 한, 대국민 홍보를 늘리고 애국심에 호소한들 전력 수요를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기요금,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수요 관리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전기요금을 올리면 산업 부문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이는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제조업의 생산 단가 중 전기요금의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이 비중이 높아진다 해도 전체 생산 단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보아야 한다. 1% 정도의 생산 단가 증가로 인해 제조업 전체가 위험에 빠지는 듯이 호들갑을 떠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명분도 없다.

전력 수요 폭증, ‘탈원전’ 통해 해결해야

다행히 이번 대선에 출마한 유력 대선 후보들이 모두 전기요금의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공약을 제시했기 때문에, 새 정부에서는 전기요금의 왜곡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전력난 탈출은 ‘탈(脫)원전’을 해야만 가능해질 것이다. 전기요금 왜곡의 원인이 바로 원전이고, 원전이 있는 한 언제든 이 문제가 불거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도 종전에 “원전은 안전하다”라고 말하다가, 요즘은 “원전은 안전할 수 있다”라고 고쳐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안전성에서 의심받고 있는 데다가 수많은 비리 사건으로 얼룩진 원전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서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은 ‘값싼 전기를 생산한다’는 것뿐이다. 결국 탈원전을 하지 않으면 현재와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곡된 원전의 발전 단가는 왜곡된 전기요금을 낳고, 왜곡된 전기요금은 결국 왜곡된 전기 소비 패턴을 낳는다. 그래서 결국은 ‘밑 빠진 독’처럼 원전을 아무리 많이 건설해도 전기는 언제나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탈원전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원전을 없애면 전기요금을 40%는 올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력난의 원인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원전을 아무리 많이 지어도 요금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전력난을 막을 수 없다. 단언컨대 요금 인상 없이는 수요 관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탈원전 정책을 내건 문재인 후보뿐 아니라 원전에 찬성하는 박근혜 후보 역시 산업용 전기요금 현실화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결국 다수당인 새누리당도 현재의 전력난이 원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기요금으로 대표되는 수요 관리의 실패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원전의 경제성을 홍보하기 위해서 유지하는 낮은 전기요금과, 이로 인한 수요 폭증 문제의 해결은 결국 탈원전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무리 음식을 많이 먹어도 정작 세포에는 에너지가 전달되지 않는 질병이 바로 당뇨병이다. 원전에 의존하는 나라들은 가격의 왜곡과 이로 인한 수요 관리의 실패가 뒤따르게 되어 있어서 마치 당뇨병에 걸린 환자처럼 에너지의 낭비와 체력의 소모를 야기할 수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탈원전’이라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전기요금을 인상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석유나 가스보다 전기요금이 더 싸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층도 전기담요 등으로 난방을 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이 에너지 빈곤층의 고통이 심각해지게 된다. 이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전기가 끊겨서 촛불을 켜고 자다가 화재로 사망하는 비극이 더는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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