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독자 신당으로 간다”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2.12.18 14: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인 안철수’가 12월19일 대선 이후 행보에 대해서 “민주당 등 기존 정치권과 다른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 전 후보의 공평동 캠프에 참여했던 핵심 측근은 “내년 4월 재·보선이 ‘안철수 신당’의 첫 시험 무대가 될 것”이라고 로드맵을 밝히기도 했다. 안 전 후보의 행보가 대선 이후 여야의 정계 재편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12월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부근에서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 유세를 펼치고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60년 전통을 가진 대한민국 정치가 정치 경험이 채 1년도 안 된 정치 신인의 손에 좌지우지되게 생겼다.”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가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대선 지원 유세에 나서기로 한 지난 12월6일, 여권의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인사가 기자에게 내뱉은 자조 섞인 반응이다. 이번 18대 대선은 그야말로 ‘안철수의, 안철수에 의한, 안철수를 위한’ 대선이었다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그렇게 과장된 것만으로 들리지도 않는다. 선거 막판까지 유례없는 접전 양상을 펼쳤던 박근혜 당선인과 문재인 민주당 후보보다도 안 전 후보는 오히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 대선 이후 그의 새로운 행보에 대해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정치권의 재편이 예고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안철수를 바라보는 정치 전문가들의 시각은 극명하게 두 갈래로 엇갈린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대선 이후 안 전 후보에 대한 정치권의 수요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새 정치’ 요구는 수면 아래로 들어간다. 아마도 2014년 지방선거나 되어야 새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새로운 요구가 터져나올 것이다. 당장 내년 4월의 재·보선은 새 정부 출범 직후여서 그다지 큰 동력은 안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역시 “누가 권력을 잡든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2인자의 내일은 담보하기 어렵다”는 말로 안 전 후보의 미래를 어둡게 내다보았다. 대선이 막을 내리면서 안 전 후보의 정치적 위력도 어느 정도 쇠락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당분간은 정치권과 의도적으로 거리 둘 듯

반면, 이번 대선을 통해서 특히 2030세대들을 중심으로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안 전 후보의 위력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많다. 오히려 대선 이후 기성 정치권은 ‘안철수 신당’의 출현이라는 또 한 번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 공산이 커 보인다. 이미 상당수 정치 전문가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기존 정당을 대체할 수 있는 신당의 출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안 전 후보가 있다.

특히 대선 이후 선거 결과와 평가를 둘러싸고 기존 정당의 내분이 확산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이것이 ‘안철수 신당’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급속도로 정계 재편이 이뤄질 가능성에 모두들 주목하고 있다. 대선 이후 가장 먼저 치러질 내년 4월의 재·보선 규모가 의외로 만만치 않은 ‘미니 총선’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내년 2~3월 정치권에 지각변동이 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단 대선 직후 당분간 안 전 후보는 정치권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둘 것으로 보인다. 안 전 후보 자신도 최근 정책포럼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백의종군의 자세로 대선에 임한 뒤 (대선 후 곧바로) 해외로 출국할 것”이라고 말하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안 전 후보 주변에서는 대통령 취임식이 예정된 내년 2월 말경까지는 기존 정치권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한 구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안 전 후보 캠프의 정치혁신포럼 멤버인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지난 12월13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대선이 끝난다고 해서 안 전 후보가 기다렸다는 듯이 신당을 창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신당 창당을 목표로 (기존 정치권) 세력을 규합하는 등의 인위적 방식은 안 전 후보가 그동안 견지해온 구태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당은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상자기사 참조).

정치 전문가들의 전망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전계완 MBN정치아카데미 대표는 “대선 이후 출현할 신당이 큰 틀에서 민주당을 포함할 것이냐, 아니면 안 전 후보의 독자 신당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안철수 신당의 출현은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안 전 후보가 새로운 정치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가 내걸었던 새 정치의 상징성을 이어나가는 행보는 계속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민주당 등 기성 정당은 새 정치의 틀이 아닌 만큼 기존 정치권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기 정치를 모색할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안 전 후보의 해단식 발언을 자기만의 정치를 하는 메시지로 인식하는 층이 많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안 전 후보가 당분간은 자기 지지층을 끌어들이는 정치 세력화 작업보다는, 기존 정치권과는 거리를 둔 독자적 행보를 보일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익명을 전제로 한 안철수 전 후보 공평동 캠프의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 전 후보는 대선 이후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고 내부 모임에서 분명히 말했다. 자칫 대선 전에 이런 말이 알려지면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운 입장인 것이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안 전 후보의 대선 이후 행보에 대해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민주당 등 기존 정치권과 연대한 새로운 정당 출현이나 정치 세력의 모색은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는 뜻을 이미 내부적으로는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23일 밤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사퇴 기자회견 후 울먹이는 캠프 관계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자기 기반 없는 점 뼈저리게 느껴”

공평동 캠프의 또 다른 핵심 참모는 “대선 이후 해외 출국 계획을 밝힌 것도 향후 새 정치에 대한 장·단기 구상을 나름대로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며 여행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이번 선거에서의 행보와 상관없이 이미 ‘안철수 현상’에 대한 유권자들의 요구는 확인이 된 상태이다. 이는 기존의 정당으로 대체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안철수 후보만의 브랜드로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함은 이미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안 전 후보는 이미 대선 전 문후보 지원 유세 과정에서도 “향후 집권하는 정부의 임명직은 맡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결과적으로 안 전 후보가 주도하는 새로운 신당 창당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앞의 관계자도 인정하듯이, 대선 결과에 따라서 ‘안철수 신당’의 구성 요소에 다소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민주당-안철수 세력-새정치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를 매개로 한 민주당과의 연대 창당론은 계속 살아 숨 쉴 전망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와 소설가 황석영씨,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지난 12월6일 공식 출범한 국민연대는 기자회견에서 “정권 교체와 새 정치를 바라는 민주·진보·개혁 진영이 하나로 힘을 합치고 건강한 중도·합리적 보수 진영까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대선 이후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비전까지 제시해야 한다”라며 대선 이후 민주당과 안 전 후보측 등이 연대하는 신당 창당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요구가 거대한 흐름이 될 경우, 과연 안 전 후보가 마냥 외면만 할 수 있겠느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안 전 후보측이 민주당과의 연대 신당 창당이라는 카드를 덥석 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아 보인다. 안 전 후보측 내부에서 민주당과의 연대 신당 창당을 꺼리는 복잡한 함수 관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전 후보 지지 기반의 상당 부분은 반노(反盧)와 비노(非盧) 등 반(反)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안 전 후보의 공식 지원 단체인 진심포럼의 한 핵심 관계자는 “안 전 후보의 지지층 내부는 상당히 복잡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을 어느 정도 안고 가자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민주당 정서가 강한 사람들도 있다. 민주당과의 연대에 대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창당을 한다는 데는 더 안 좋은 기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앞에서 언급한 캠프 핵심 참모 역시 “안 (전) 후보가 독자적으로 가겠다고 한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라고 본다”라며 ‘독자적’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안 전 후보가 기존 지지층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신당을 창당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 안 전 후보는 지난 12월11일 캠프 정책포럼 관계자들과 함께한 만찬 자리에서 “이번엔 (새 정치가) 좌절되고 미뤄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같이 고민하고 협의도 하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대선 이후 기존 정당에서 이탈하는 정치권 인사와 기존 지지층을 규합하는 헤쳐 모여 식 신당 창당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안 전 후보측의 한 관계자는 “야권의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자기 기반이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낀 상태이다.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과 같은 응집된 지지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신당에 대한 미련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박경철 원장과 함께 했던 청춘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는 안철수 전 후보 @시사저널 자료실

“4월 재·보선에 직접 출마할 수도”

당장 안철수 신당은 내년 4월 재·보선을 목표로 할 것으로 보인다. 앞의 핵심 참모는 “안 (전) 후보는 이미 여러 차례 4월 재·보선에 대해서 강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준비도 하고 있다. 안 (전) 후보가 직접 출마할 것인지, 지원만 할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무튼 신당의 첫 번째 도전 무대는 내년 4월 재·보선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안 전 후보의 최종 목표가 5년 후인 2017년 대선인 상황에서 독자 신당 창당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부소장은 “안 전 후보를 향한 높은 지지율은 막연한 기대감이었고, 대선이 다가올수록 지지율이 떨어진 것도 참신함이 사라진 결과였다”라면서 “안 전 후보가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냉혹한 평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려면 당도 만들어야 하고 재·보선에 뛰어드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지역별 조직, 언제든 신당 체제 전환 가능” 
안캠프 정치혁신포럼 소속 김민전 경희대 교수 인터뷰 

안철수 전 후보가 대선 후보 출마 선언(9월19일)을 하기 불과 열흘 전인 지난 9월9일, 그는 김민전 경희대 교수와 만나 대선 출마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12월13일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기자와 만난 김교수는 “안 전 후보가 대통령을 잘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도 했지만 그보다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정치 개혁을 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더 많이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안 전 후보가 공정한 룰 등 원칙을 유독 강조한 것도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후 3개월, 안 전 후보의 정치혁신포럼 멤버로 활동해왔던 김교수는 안 전 후보의 대선 후보 사퇴에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안 전 후보는 굉장히 외연이 확대되는 지지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002년 노풍(盧風)과 같은 광풍을 일으킬 수 없었던 것은 핵심에 응집력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교수는 안 전 후보가 자신의 지지 기반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신당 창당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었다. 그는 이를 두고 ‘안철수의 딜레마’라고 표현했다. 그는 “일부에서 안 전 후보가 자신의 정당을 만들지 않고 (지지층을) 조직화하지 못한 점을 실책으로 꼽는다. 하지만 안 전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신당을 창당하고 민주당의 합당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오히려 호남표도 이탈하고 지지율도 높지 않았을 것이다. 안철수의 딜레마는 대선 이후에도 유효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김교수는 사견임을 전제로 “평소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듯 단계별로 나아가는 것에 익숙한 안 전 후보가 난데없이 신당 창당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문후보와 민주당이 한 새 정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구태 정치가 반복되고 국민이 새로운 정치 조직을 필요로 한다고 판단되면 독자적인 신당을 창당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안 전 후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역별 진심포럼 등 주변에서는 새 정치를 구현하는 자기 기반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인 것도 사실이다”라면서 “만약 기성 정치가 정치 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원자력발전소가 핵무기로 전환되듯이 즉각적으로 (신당 체제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안 전 후보가 주도할지는 그때 판단할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