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총기 참사 이젠 끝내자”
  • 한면택│워싱턴D.C. 통신원 ()
  • 승인 2012.12.2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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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초등생 20명 희생되자 규제 여론 부글부글

미국은 총기 사고의 나라이다. 잊을 만하면 총기 사고가 발생했던 미국이지만, 이번에는 희생자가 어린아이들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심했다. 6~7세 어린 생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12월14일 코네티컷 뉴타운에 찾아온 20세 청년 애담 랜자의 총기 난사로 샌디훅 초등학교 학생 20명과 교직원 6명이 사망했다. 랜자가 살해한 자기 어머니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랜자까지, 숨진 사람만 28명이다.

미국에서 총기는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다. 1993년 브래디법(총기 구입자 신원조회법)이 제정되었고, 1996년에 일시적으로 총기 규제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대형 총기 비극이 벌어져도 총기 규제는 강화되지 않았다. 1999년 4월 사망자 13명을 낸 콜로라도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2007년 한인 조승희씨가 총기로 33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버지니아 공대 비극, 2009년 13명을 숨지게 한 텍사스 포트후드 미군기지 총격 사건이 일어나도 미국 정가는 총기 규제 강화를 모른 척했다. 그런 워싱턴D.C.에도 이번에는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백악관과 민주당이 구체적인 총기 규제 법안을 추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샌디훅 총기 참사는 그동안 동력이 부족했던 총기 규제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미국 애틀랜타의 총기 판매점에서 한 남자가 권총을 만지는 모습. 현재 미국에는 약 3억1천만정의 총기가 퍼져 있다. ⓒ EPA 연합

돈만 있으면 되는 ‘묻지 마 거래’

“이런 비극들을 반드시 끝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총기 폭력 근절 의지를 천명했다. 오바마는 이번 사건까지 포함하면 재임 중 대형 총기 사건의 추모대회에 참석한 것이 네 번째이다. 이전 세 번의 추모대회와는 다르게 본격적으로 총기 규제를 선도하기 시작했다.

일단 발언이 강해졌다. “총기 규제법 하나만으로 비극을 근절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변명거리로 삼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의회도 동참했다. 연방 상원에서는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과 척 슈머 상원의원 등이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을 새해 벽두부터 발의하겠다고 공언했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이 밝힌 새로운 총기 규제 법안의 핵심 조치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군사용으로 쓰이는 고성능 공격 무기를 전면 금지시킨다는 계획이다. 대량 살상이 가능한 공격 무기를 판매하거나 수입하는 것은 물론, 소지하는 것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새 총기 규제 법안에 담을 예정이다.

이와 함께 10발 이상 신속하게 장전해 쏠 수 있는 연발 탄창도 아예 금지시키겠다고 공언했다. 한꺼번에 수십 발씩 장전할 수 있는 무기가 대량 살상극에 사용되는 사태를 막아보자는 뜻이다.

미국에서 한 해 동안 총기로 피살되는 사람은 1만명 안팎에 이른다. 그나마 근래 들어서야 그 숫자가 1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총기에 피살된 미국인은 9천9백3명이었다. 통계대로라면 하루에 27명이 총탄에 목숨을 잃고 있다. 총기가 주는 더 큰 문제점은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손쉽게 자신의 목숨을 취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총기를 이용한 자살자 수는 피살자 수보다 두 배나 많다. 2011년 총기 자살자는 1만9천7백66명에 달했다.

미국 전역에 떠돌고 있는 총기의 수는 얼마나 될까. 2009년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조사에 따르면 그 수가 3억1천만정에 달하는데, 현재 미국 인구가 3억1천5백만명이니 미국인 1명당 1정씩 갖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권총이 1억1천4백만정이고 라이플 소총이 1억1천만정, 엽총이 8천6백만정이다.

미국 내에서 매년 생산되는 총기만 한 해 평균 4백만정인데, 최근에는 그 수가 늘어나 2010년에만 5백40만정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더해 해외에서 1년 동안 수입해오는 총기 수도 평균 3백만정 이상이다. 2011년 미국이 합법적으로 수입한 외국산 총기는 3백20만정이었다.

유통보다 심각한 문제는 부실한 관리 체계이다. 연방법과 주법은 총기를 거래할 때 신원조회를 하게 하는 등 부분적인 관리 제도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조차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총기 구매 현장은 말 그대로 ‘묻지 마 거래’의 온상이다. 돈만 내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온라인 총기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이런 묻지 마 거래는 한층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온라인 거래에서는 신분 확인이나 신원조회, 서류 작성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약 온라인에서 누군가 총기 구입 의사를 내비친다면 이내 벌떼처럼 총기를 팔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오프라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마다 열리는 ‘건쇼(Gun Show)’에 가면 총기를 얼마든지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총기 규제 단체가 촬영한 몰래카메라를 보면 오하이오, 미네소타, 버지니아, 텍사스 등지의 ‘건쇼’에서 권총과 엽총, 소총과 장총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단지 돈이었다.

범인 개인의 정신 건강 문제?

CNN과 CBS가 샌디훅 초등학교 참사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총기 규제에 찬성하는 응답이 52~58%로 나타났다. 올해 4월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서는 총기 규제론이 45%로 총기 옹호론 49%에 미세하게 밀렸는데, 지금은 총기 규제 여론이 7~13%포인트 정도 높아져 총기 옹호론보다 우세하다. 알려지다시피 총기 규제 법안을 만들 때마다 그것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장벽은 회원 수 4백만명을 자랑하는 미국총기협회(NRA)이다.

하지만 NRA조차 이번에는 여론 때문에 어느 때보다 숨죽이고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2013년은 선거가 없는 해여서 정치인들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 당장 민주당 상원에서 총기 옹호론자로 분류되었던 조 맨신 의원과 마크 워너 의원이 이번에는 총기를 규제하는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백약이 무효’일 것이라는 낙담도 벌써 터져나오고 있다. ‘스스로를 지킬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는 총기 옹호론은 미국의 뿌리 깊은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번 샌디훅 참사를 두고도 “범인 개인의 정신 건강이 문제일 뿐이다” “교직원들이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면 광기 어린 총기 난사를 막아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적지 않은 지지를 얻고 있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추모 분위기는 잠시였을 뿐, 샌디훅 참사 이후에도 미국 내 총기 판매점이 북적이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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