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스포츠 인물] 양학선,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12.2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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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양2’로 리우올림픽에서 다시 난다

올 한 해 체육계의 가장 큰 이벤트는 런던올림픽이었다. 지난 8월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은 금메달 13개로 종합 성적 5위를 거두어 역대 원정 하계올림픽 사상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사격의 진종오와 김장미, 양궁의 기보배와 오진혁, 유도의 김재범과 송대남의 금메달도 화려했다. 그렇지만 박태환이 보여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세, 손연재의 깜찍함, 배구계의 월드스타 김연경의 파워풀한 스파이크와 여자 핸드볼의 사력을 다하는 끈끈한 파이팅 그리고 스포트라이트 바깥에서 머무르던 펜싱에서 터진 새로운 금맥으로 국민들은 한여름 밤의 인간 드라마를 경험했다.

특히 채점 종목인 남자 체조 뜀틀에서 양학선이 금메달을 따낸 것과 남자 축구에서 홍명보호가 동메달을 따낸 것은 텔레비전 중계로 대회를 지켜보던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양학선이 8월6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노스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도마 결선에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 AP연합

부끄럽지 않은 가난, 자랑스런 기술

<시사저널>은 스포츠계의 올해의 인물로 체조선수 양학선을 뽑았다. 그는 지난 10월 제50회 대한민국 체육상 경기상을 받았다. 그 말고도 금메달리스트가 많았지만, 양선수가 자신이 개발한 최고 난이도의 신기술을 국제체조연맹에 등재시키고 바로 그 기술로 금메달을 따냈기에 경기상을 받은 것이다.

양선수는 올림픽 대회 전부터 금메달 후보로 꼽혔고, 이변 없이 최고의 기술로 금메달을 따냈다. 이것만 해도 국민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었는데, 그는 덤으로 국민에게 뭉클한 휴먼 스토리까지 선물했다. 가난이라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자신의 가족을 최고로 소중하게 여기는 그의 태도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올림픽이 끝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그의 멋진 퍼포먼스를 이용한 자동차 광고를 볼 수 있지만 정작 그가 받은 자동차는 고창의 부모님 댁에 보내놓고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12월17일 일본 도요타컵 기계체조 초청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그를 전화로 만나보았다.

“올림픽 이후 주위 시선이 확 바뀐 것 같다. 평소에 하던대로 한 것뿐인데 ‘효자’라는 말도 듣고, 관심도 많이 가져주고…. 처음에는 밖에 나가면 알아보고 그래서 어색했는데 이제는 못 알아보는 사람도 많다. 상도 많이 받았다. 상을 받으니까 기분은 많이 좋다. 사실 나 스스로는 변한 게 없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다만 주변 시선 때문에 힘든 게 있다. 부러워하는 시선도 있지만 거만해졌다고 보는 사람도 있더라. 나는 그런 게 아닌데….”

양선수의 생활은 올림픽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밤 11시쯤 잠들어 아침 5시50분쯤 일어난다. 새벽 운동을 한 시간 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한체대)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오후 운동을 3시간 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올림픽 직후 밝혔던 리우올림픽을 대비한 신기술(양2) 개발은 진행 중이다. “신기술을 연습하다가 대회(도요타컵)가 있어서 연습을 중단했다. 내년에 또다시 개발을 진행할 것이다. 양1은 지금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사실 도요타컵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는 손목이 아파서 연습을 많이 못 했다. 하지만 양1의 성공률은 많이 올라가 있다. 도요타컵 대회에서 안 쓴 이유는 경기장 기구가 낯설기도 하고 무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 선수는 부상을 달고 살기 마련이다. 그도 예외는 아니다. 그도 이번에야 그를 괴롭히는 것의 이름이 ‘피로 골절’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늘 부상이 있었지만 올림픽 뒤에 조금씩 아팠다. 이번에 국제 대회를 준비하면서 훈련 강도를 조금씩 높이다 보니까 손목이 아파왔다. 손목 피로 골절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번 대회 결과가 괜찮아서 다행이다.”

중학교 때부터 합숙 훈련을 하던 그에게 합숙소는 집이다. 국가대표로 선발된 뒤에는 1년에 절반 이상을 머무르는 곳이 태릉이다. 올림픽 뒤 진짜 집인 고창 부모님 댁에 머무른 것은 1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름휴가 때 가고, 추석 때 가고 그랬다. 아버지나 어머니도 예전과 다름없이 지내신다. 아직 집은 짓지 못했다. 은사인 광주체고 오상봉 선생님도 뵙고, 후배들 평가전도 보고 그랬다.”

10월5일 올림픽파크텔에서 양학선 선수(왼쪽 네 번째) 등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핸드프린팅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를 믿고 계속 가면 길이 열린다”

그가 부모님을 위해 짓고 싶다던 새집의 신축 허가는 나왔다. 양선수의 어머니 기숙향씨는 “집 짓는 것 때문에 남편 어깨 수술도 내년으로 미뤘는데 날이 추워져서 공사를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올림픽 때 화제가 되었던 양학선의 ‘라면’은 그가 휴가를 얻어 내려왔을 때 어머니가 끓여주었다고 한다. 양선수는 “합숙소에서는 라면을 안 준다. 부모님 집에 갔을 때 어머니가 해주시는 백숙도 먹고 메기매운탕도 먹었다.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꽃게나 새우 빼고는 다 먹는다. 체조 선수는 경기 직전에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밥을 적게 먹을 뿐 특별한 식이 요법을 쓰지는 않는다. 경기 기간 중에는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먹는데, 경기가 끝나도 조금씩밖에 안 먹는다”라고 전했다.

올림픽 잔치 뒤의 떠들썩함을 뒤로 하고 양선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양선수의 1차 목표는 2016년 리우올림픽이다. 더 큰 목표는 올림픽 3회 출전이자 3연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 2014년 아시안게임, 2015년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시험대를 통과해야 한다. 게다가 그는 이제 도전자가 아니라 챔피언으로서 1인자 자리를 방어해야 하는 쫓기는 입장이 되었다.

양선수는 8월6일 밤 영국 런던의 노스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스스로에게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이정표를 세웠다. 그가 직감적으로 자신의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플로어로 뛰쳐나갈 때 많은 사람이 즉각적으로 그와 동의하고 박수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처럼 번개 같은 확신의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 채 길을 탐색 중인 사람이 많다. 그런 이에게 전해줄 말을 부탁하자 이런 말을 전했다. “어느 길이든 목표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고 못 하는 사람도 있다.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도 그 주변까지는 가는 것 같다.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계속 가라.” 이는 2016년까지 양2라는 신기술을 개발하고 계속 가야 하는 스스로에게 주는 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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