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통해 시작, 전 세계로 확산 유튜브 조회 수 10억 돌파 눈앞
  • 김봉현│대중음악평론가 ()
  • 승인 2012.12.2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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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대중음악계 결산에서 싸이를 빠뜨릴 수 없다. ‘올해의 음악인’이나 ‘올해의 노래’ 부문에 싸이와 <강남스타일>이 자주 거론되는 것은 필연에 가까워 보인다. 그만큼 싸이의 열풍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7주 연속 2위를 기록했다. 물론 1위를 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이다. 또 영국 차트에서는 1위를 했고, 40여 개 나라에서 아이튠스 음원 다운로드 정상에 올랐다. 유튜브상의 지표도 놀랍다. <강남스타일>은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Baby>가 1년여 만에 달성한 1위 기록을 단 3개월 만에 갈아치웠고, 현재는 조회 수 10억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 밖에도 싸이는 마돈나의 무대에 오르는 한편,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는 MC 해머와 공연하는 등 한국 음악 팬들이 그동안 꿈꾸기만 하던 풍경을 현실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한국 음악 시장보다 더 넓고 대체로 더 선진화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곳에서의 이런 엄청난 선전은 확실히 높게 평가할 만하다.

<강남스타일>의 성공을 둘러싸고 ‘노래’임에도 오히려 ‘음악’에 대한 분석보다는 ‘현상’에 대한 다양한 층위의 분석이 펼쳐졌다. <강남스타일> 열풍 속에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악 자체가 핵심은 아니라는 무언의 합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열풍의 한가운데에는 ‘뮤직비디오’의 시각적 재미와 그에 따른 카타르시스가 자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노장 래퍼는 싸이를 가리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래퍼일 뿐”이라고 폄하했지만, 어떤 이는 “그 ‘우스꽝스러움’이야말로 미국이 발명해내 전 세계로 퍼뜨린 B급 코미디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중문화의 축을 이루는 두 핵심 코드인 ‘코미디’와 ‘춤’을 싸이가 정확히 파고들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혹은 우연이나 운이 터진 것이 전부가 아니라 미국 시장과 통하는 어떤 ‘코드’가 작용했다는 이야기이다.

또 <강남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마케팅 경로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강남스타일> 열풍은 트위터를 통해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저스틴 비버를 발굴한 인물이자 싸이의 현 미국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프로모터 스쿠터 브라운이 처음 싸이의 존재를 발견하고 뮤직비디오를 링크한 곳도 바로 트위터였다. 이렇듯 <강남스타일>은 해외의 각종 음악 사이트와 셀레브리티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트위터와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뉴미디어 통해 ‘강제 해외 진출’당한 첫 사례

이는 기존의 전형적인 마케팅 경로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흥미와 관심을 자아내는 코믹한 뮤직비디오 한 편이 소셜 미디어의 자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고, 그 호응은 곧바로 음원의 소비로 이어졌다. 아마추어 뮤지션에게는 큰 자본 없이도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음악으로 앞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사례이기도 했다.

그러나 싸이의 성공이 모든 한국 뮤지션의 성공을 구조적으로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싸이의 성공은 K팝 열풍과도 큰 관련이 없었다. 다시 말해 <강남스타일> 열풍은 K팝이 만들어놓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같은 국적’인 싸이가 자신의 재기 어린 뮤직비디오와 코믹한 춤으로 적절한 미디어 시스템의 수혜를 입은 다음, 그 위에 일정한 운과 타이밍이 더해져 완성된 ‘개인적 성공’에 가깝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박은석 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우연히 터진 히트곡 하나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여론의 호들갑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싸이의 성공은 본의 아니게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음원 구조 문제를 다시 한번 들추어내기도 했다. <강남스타일>이 한국에서 3백60만 다운로드로 6천5백만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외국에서 2백90만 다운로드로 28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같은 엄청난 금액 차이가 한국의 턱없이 낮은 음원료 때문이라는 사실이 회자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흘러나왔다. 이미 ‘스탑덤핑뮤직’ 운동을 비롯해 국내의 많은 뮤지션이 목소리를 내어왔으나 ‘월드스타’ 싸이의 사례가 그 모든 움직임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평론가 나도원씨의 말이다. “병역 문제로 공적이 되어 두 번이나 군대를 다녀와야 했던 싸이는 돌연 영웅이 되어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초대받더니 결국 훈장까지 받았다. 노래와 뮤직비디오보다 이 ‘한국적 현상’이 더 우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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