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협회장도 직선제로 뽑자”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12.3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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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출범한 ‘전국치과의사연합’ 이상훈 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
직선제(直選制). 낯설었던 이 단어가 우리에게 낯익게 된 시점은 1980년대였다. 전두환 군사 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 세력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면서부터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가 ‘6·29 선언’을 통해 전격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면서, ‘직선제’는 ‘민주화’와 등치되는 제도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각종 사회·교육 단체 등에서 자신들의 수장을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 열풍이 불었다. 1995년 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과거 낙하산식 임명직이었던 시·도지사 등이 선출직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학교 반장도 직선제로 뽑고 있다.

의료계에도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직선제가 속속 도입되었다. 대한의사협회는 2001년 직선제로 전환했다. 2009년 한때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로 바뀌기도 했으나, 2012년에 다시 직선제로 돌아왔다. 대한약사회도 2008년부터 직선제를 시행해오고 있다. 2012년 11월11일에는 대한한의사협회가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어 협회장을 직선제로 선출하기로 했다. 이로써 의약단체 가운데 대한치과협회(이하 치협)만이 유일하게 대의원을 통한 간선제를 채택하는 곳으로 남게 되었다.

“직선제는 시기상조” 반대도 만만치 않아

이런 치협에도 직선제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2012년 12월8일, 서울 성수동 치협회관에서는 ‘직선제 쟁취 전국치과의사연합’(이하 치과연합)이 출범했다. 의사 1백5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치과연합은 이날 출범 선언문을 통해 “치과의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체 치과의사 중 40대 중반 이하가 52%이다. 여성 치과의사도 25%에 달하고 있으며,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치협 회장을 선출하는) 2백1명의 대의원 숫자는 전체 치과의사(2만여 명)의 단 1%에 해당한다. 그마저도 40대 중반 이상이 90%이며, 남성이 거의 대부분으로 전체 치과의사의 다양한 민의를 효율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직선제를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일반 회원들은 치협의 사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직선제는 시기상조이다”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또한 “치과의사가 2만명이나 되어서 직선제를 도입할 경우 돈도 많이 들고, 참여율도 저조할 것이다”라며 직선제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치과연합은 “대한의사협회는 11만명이고, 대한한의사협회는 2만명, 약사회는 6만명이다. 그런데도 모두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활용하면 비용도 별로 들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라고 반박한다.

치과연합을 이끌고 있는 이상훈 회장을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 12월1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회장은 12월8일 치과연합 출범식 때 삭발했다. 머리카락이 다 자라지 않은 그는 한파가 몰아친 이날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기자 앞에 나타났다. 그는 “회장 선거 때만 되면 각 후보 캠프에서 호텔을 빌려 초호화 출정식을 하고, 대의원들을 경쟁적으로 룸살롱으로 모셔가면서 선거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1%가 전체 민의 반영할 수 있나”

직선제에 대해 반대하는 의사들은 “직선제로 인해 지연과 학연의 폐해가 나타날 것이다”라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이회장은 “지금의 간선제에서도 후보들이 자신들의 출신 대학 동창회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한민국 치과의사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직선제만이 동창회 등 인맥 선거에서 벗어나 정책 선거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이회장은 1990년 경희대 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논문 ‘아말감 수복 시 상아질접착제가 변연 봉쇄에 미치는 영향’으로 경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경기도 부천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 치과대학 외래교수이기도 하다. 특히, 그동안 경기도 치과의사회 자재이사와 기획이사, 치협 자재위원, 대한치과개원의협회 회장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치과계 현안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치협 내 직선제 요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제26대 안성모 회장 체제에서 ‘치협 선거 제도 개선 연구위원회’가 활동하기도 했다. 그동안 회장 출마 후보자들도 직선제나 선거인단 제도 등 선거 제도 개혁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김세영 현 치협 회장도 선거 제도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고 2011년 4월에 당선되었다. 김회장은 “2013년에는 반드시 획기적인 선거 제도를 대의원회의 안건으로 상정할 것이다”라고 천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회장은 “김회장 집행부는 현행 대의원 2백1명을 포함한 4백여 명 정도의 선거인단 제도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직선제를 갈망하는 치과인들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전체 치과의사의 단 2%만으로 어떻게 다양한 민의를 대변할 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치과연대는 직선제 관철을 위해 향후 각 지부와 전공의, 공중보건의, 의료 단체, 학회, 학생 등 다양한 세력과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회장은 “치과계 공조직에서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최소 60%에서 최대 90%까지 직선제를 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일반 치과 의사들은 직선제를 원하는데, 치협 집행부나 대의원들은 민의를 거스르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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