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이념도 대물림하는 세습 정치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2.12.3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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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지지 기반·간판·가방 물려받는 일본 정치인들

아베가(家)의 가족 사진. 가운데에 있는 아이가 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총재이다. 꼬마 아베를 무릎에 앉힌 사람이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 맨 오른쪽이 부친인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다. ⓒ 연합뉴스
2007년 9월12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물러났다. ‘건강 악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아베는 당시 정치적 위기에 부딪힌 상태였다. 대표적인 우익 보수 정치인답게 과거사 부정, 개헌 준비, 애국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기본법 개정, 방위성 승격, 대북 제재 등을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국제 사회에서 번번이 비판받거나 무시당했고,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는 야당에 참패했다. 아베는 2006년 9월 총리에 오른 뒤 불과 1년 만에 자리를 내던져버렸다. 아베의 사임을 일본 언론은 ‘도피’라고 풀이했다.

6선의 아베는 일본의 대표적인 세습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아베가(家)는 일본 전후 정치를 움직인 집안이다. 할아버지 아베 히로시는 중의원이었고, 전후 총리를 지낸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에서 그림자 총리로 활약했던 A급 전범이었다. 그의 삼촌인 사토 에이사쿠 역시 총리를 지냈고, 부친인 아베 히로시는 외상을 지낸 중의원이었다. 아베의 동생인 노부오는 기시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 현재 참의원을 지내고 있다. 기시가(家)와 사토가(家)라는 두 전직 총리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자민당 중의원 후보 중 92명이 세습 정치인

이런 정치 귀족은 종종 서민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약점으로 지적받는다. 가문의 지역구가 지방이더라도 정치 가문의 자손들은 도쿄에서 생활한다. 선거가 있을 때만 정치 교육을 받으러, 혹은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지역구로 내려간다. 지역구의 길바닥에서 지지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선친의 기반을 물려받아 온실 속에서 자란 정치인이 된다. 곱게 자란 나약한 정치인에게 ‘정치적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아베의 ‘1년 천하’ 역시 똑같은 지적을 받았다. 일본 언론은 아베가 물러나자 세습 정치인을 일본 정치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평가하며 ‘도련님의 허약함’이라고 비꼬았다.

허약한 도련님은 2012년 재기를 꾀했다. 그는 자민당 상·하원의원 수십 명이 모인 ‘신경제 성장 전략 연구 모임’을 결성했는데, 자민당 내 매파 의원들이 대부분 참가했다. 이를 발판으로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섰다. 9월26일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아베 신조 전 총리,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외무상, 이시하라 노부테루 간사장, 하야시 요시마사 정조회장 대리 등 다섯 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공교롭게도 모두 세습 정치인들이었고,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군국주의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가문의 명예를 건 이 싸움에서 결국 아베가 승리했다. 세습 정치인들만의 총재 경선은 거꾸로 “세습 정치인이 아닌 이상 수장이 되기 어렵다”라는 일본 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일본 정치판에서 세습 정치인은 흔하다. 마이니치 신문은 이번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에 입후보한 세습 정치인의 숫자를 조사했다. 세습 정치인의 범위는 ‘부모 또는 조부모(입양 대상 조부모 포함)가 국회의원이거나 3촌 이내의 친족이 국회의원으로 동일 선거구에서 입후보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조사해보니 △자민당 92명 △민주당 26명 △일본유신회 15명 △모두의당 7명 △신당 대지 2명 △공명당 1명으로 나타났다. 

‘세습 정당’이라고 비아냥을 받는 자민당은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3촌 이내를 동일한 선거구에 공천하지 않겠다”라고 공약했지만, 이후 ‘공모’에는 나설 수 있는 것으로 바꾸었다. 은퇴를 표명한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군마 4구), 나카가와 히데나오 전 간사장(히로시마 4구), 타케베 츠토무 전 간사장(홋카이도 12구), 오노 요시노리 전 방위청 장관(카가와 3구)의 자리는 ‘공모-총선’을 모두 승리한 아들들이 물려받았다. 공모의 형태를 취했지만 세습이나 다름없었다.

‘탈세습 정치’를 천명한 민주당은 은퇴한 의원의 선거구를 친족이 물려받는 것을 금지시켰지만, 현직 의원에게 예외를 두고 신인 후보에게만 이 규칙을 적용했다. 사실상의 세습을 용인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거액의 정치자금까지 후대로 이어져

일본 선거판에서 승리하려면 ‘지반’ ‘간판’ ‘가방’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반은 지역 기반, 즉 선거 때 운동원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강력한 후원 조직을 뜻한다. 간판은 지명도, 그리고 가방은 정치자금을 말하는데 모두 신인 정치인과는 인연이 먼 것들이다. 반면 같은 신인이라도 같은 성을 가진 현직 의원의 자식이나 손자는 익숙한 이름 덕에, 그리고 부친 혹은 조부의 자산 덕분에 지역 기반 구축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일본 선거판에서는 지역구에 이름을 알리는 데 보통 1억 엔(12억원) 정도가 드는데, 이들 세습 정치인들은 지명도를 높이는 데 이런 돈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후원회도 순조롭게 구성된다. 지역에서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확률 높은 세습 후보의 옹립에 줄을 서게 된다. 이런 흐름에 불씨를 당기는 것은 현직 의원이 남긴 정치자금과 돈줄이다. 결국 온전한 정치 신인은 진입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의 수혜자인 아베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정치 명문가 출신답게 과분할 정도로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 1993년 부친인 아베 신타로가 사망하자 지반을 인수받으면서 거액의 정치자금도 함께 ‘상속’받았다. 부친의 정치 단체가 보유하고 있던 정치자금은 총 7억 엔(약 89억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돈은 아베의 정치 활동을 지원하는 데만 사용되었다.

아베 신타로에서 아베 신조로 내려가는 정치자금은 기부 형태를 띠고 있어서 일본 세법상 상속세를 낼 필요가 없다. 일종의 합법적인 탈세라고 볼 수 있다.

부친의 정치자금을 보유했던 단체들은 매번 아베의 선거를 돕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도쿄 정경연구회’는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보유한 아베의 후원 단체인데 그의 부친 때에도 존재했던 곳이다. 설립할 때 만들어진 약관 중 ‘아베 신타로의 정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명기된 문구는 아베 신조로 넘어오면서 변경되었다. ‘그 후임으로 활동하게 된 아베 신조가 훌륭한 정치인으로 대성할 수 있도록 그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로 바뀐 뒤 ‘중의원 의원 아베의 정치 활동을 후원하기 위해 집결했다’로 다시 한번 수정되었다.

조부-외조부의 뒤를 이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뒤를 이은 아베. 정치 초년생부터 강고한 지반, 두둑한 자금, 안정된 당선을 보장받았다. 선거구에서 악전고투할 이유도, 유권자들을 위해 고민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정치가인 ‘아베’ 자신의 약점을 되새기는 것보다 오로지 국가에 대해서만 고민하면 되는 천혜의 환경에서 자랐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아베가 내놓은 결론은 ‘위험한 군국주의적 국가론’이었다. 아베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비단 물질적 유산만이 아니었다. 위험한 정치 이념도 비판 없이 계승했는데, 세습 정치인이 선대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베의 군국주의적 구상의 뿌리는 ‘세습’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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