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등 더 이상 방치하지 말라
  • 김윤태 | 고려대 사회학 교수 ()
  • 승인 2012.12.3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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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노인과 청년의 대화·협력 통한 ‘사회 협약’ 만들기를

대선 ‘후폭풍’이 심각하다. 성난 2030세대가 인터넷에서 5060세대에게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인터넷에서 일부 젊은 세대는 “과거의 박정희 향수 때문에 표를 찍은 것이 아니냐”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반면에 일부 5060세대는 “박정희가 김일성보다는 최소한 덜 나쁜 사람”이라며, “이념 교육으로 젊은 세대의 판단력이 마비되었다”라고 비난한다. 과거사 논쟁으로 얼룩진 대선은 세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지역 갈등이 예년에 비해 다소 완화되는 기미를 보였지만, 세대 갈등은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골이 커졌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30세대는 3명 중 2명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3명 중 1명은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다. 10년 전에 비해 진보 후보를 지지한 비율은 8%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이에 비해 5060세대는 3명 중 2명이 박근혜 후보를 찍었고, 3명 중 1명만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10년 전에 비해 보수 후보를 지지한 비율이 1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투표의 ‘세대 양극화’가 더욱 뚜렷해졌다.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면, 젊은이들의 투표는 기성세대가 만든 게임의 규칙을 뒤엎으려는 ‘아버지 살해’일 수 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상대적으로 박근혜 후보(왼쪽)를 더 많이 지지했던 노년층과 문재인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던 청년층의 분열이 심각해지고 있다. ⓒ 박근혜 제공·시사저널 박은숙
지하철에서 벌어진 세대 갈등

세대 갈등은 투표장에서 지하철로 옮겨갔다. 다음 아고라에서 일부 2030세대를 중심으로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 주장이 등장하더니 ‘기초노령연금제 폐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청년들이여, 지하철 늙은이들에게 빼앗긴 자리를 탈환합시다”라거나, 아예 “60세 이상 치매 검사 후 투표권 지급”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세대 갈등이 점점 세대 전쟁으로 치닫는 분위기이다.

다음 아이디 ‘좋은 일만 생긴다’를 쓰는 누리꾼은 대선 다음 날 복지에 대한 노인들의 인식을 지적하며 ‘우리나라 노인분들께서 가지고 계신 복지에 대한 개념이란 빨갱이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재정이 악화되어가는 지하철공사에서 노인 무임승차를 전면 폐지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청원의 글을 올렸다. 서명 목표 인원 8천8백88명이었던 청원에는 2012년 12월26일 현재 목표를 훌쩍 넘어 1만3백명이 서명했다. 청원에 서명한 누리꾼들은 “복지는 빨갱이라는 노인들이 왜 복지 혜택을 받느냐”라는 불만을 적었다.

세대 갈등의 뜨거운 감자가 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 혜택을 가리킨다. 지하철 무임승차에 따른 적자는 해마다 증가하면서 2011년 1천4백37억원에 이르렀다. 1980년 70세 이상 노인에게 50% 할인 요금을 적용했다가 나중에 무상이 되었다. 심각한 적자난을 고려해 무임승차 폭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 고연령층 가운데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권은 청년 세대 불만 제대로 인식해야

문제는 지하철을 둘러싼 세대 갈등이 정치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얼핏 선거에서 패배한 진보 성향의 청년 세대들이 보수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5060세대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사회에 잠복된 세대 갈등이 대선을 통해 본격적으로 분출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실제로 안보를 걱정하는 노인 세대와 달리, 군대와 직장에 다니는 젊은 세대는 남북 관계의 긴장이 반갑지 않다. 또한 젊은 세대가 세금 부담을 많이 받는 한편, 복지 혜택은 노인 세대가 누리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노인층이 잘 조직되어 있고 의회에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노인에게 유리한 복지 정책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연금과 정년 연장을 둘러싼 갈등이 뜨겁다. 2010년 프랑스의 정년 연장 반대 시위에 많은 학생과 청년들이 참가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지금 인터넷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벌어지는 ‘무임승차 폐지’ 논쟁은 실현 가능성이 작고, 대부분 감정적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청년 세대의 불만을 정치권이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언젠가 폭발할 수 있다. 지금 성난 청년의 목소리를 일시적인 흥분으로만 본다면 세대 갈등은 해결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세대 갈등의 과제를 차기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헝가리 사회학자 칼 만하임은 인구 통계의 범주인 연령(age)과 달리 공통의 역사적 경험이라는 사회·문화적 범주로서 세대(generation)를 지적했다. 세계사의 격변기에 선 유럽의 ‘1914년 세대’가 과거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분석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2030세대와 5060세대는 매우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5060세대는 냉전 구조 속에서 반공 교육을 받고 살아온 세대이다. 이들은 탈냉전 시대에 자라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을 경험한 2030세대의 인식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5060세대는 경제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급속한 소득상승을 경험한 반면, 복지에 대한 권리 의식이 적다. 이에 비해 2030세대는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취업난을 겪으며 비정규직의 고통 속에서 사회복지 제도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면 젊은이와 노인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려야 하는가? 어떤 젊은이는 “노인들에게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도 고맙다고 말할 줄 모른다. 심지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노인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모든 노인을 폄하하고 공격하는 것이 옳을까? 로마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노년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노인들이 고집이 세고 불안해하고, 화를 잘 내고, 괴팍스럽다고들 하네. 알고 보면 어떤 노인들은 인색하기까지 하네. 하지만 이것들은 성격상의 결함이지 노년의 결함이 아닐세”라고 주장했다. 맞다. 모든 노인이 그런 것은 아니다. 키케로는 “달콤한 포도가 있듯이 새콤한 포도도 있다”는 은유를 소개했다. 실제로 진보 후보를 지지한 노인도 있지 않은가.

오늘날 노인들은 농경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가부장이 아니다. 많은 노인은 은퇴 이후 자신의 삶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이다. 노인들 가운데는 저학력·저소득의 서민층이 압도적이다. 실제로 노인 빈곤율은 45%가 넘고, 노인 자살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젊은 세대들은 왜 노인 세대들이 자신의 계층 이익을 배반하고 보수 후보를 찍는지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노인 세대의 고통과 불안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차기 정부에서 노인과 청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한 ‘사회 협약’과 ‘세대 협약’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정년 연장, 연금 개혁, 고용에 관한 정책이 다른 세대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세대 영향 평가’도 필요하다. 세대 간 역사적 경험의 차이가 세대 갈등이 아니라 세대 공존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젊은이들이 ‘민주화의 아이들’답게 보수 후보를 뽑은 노인들을 정중하게 토론에 초청하면 어떨까? 마지막으로 노인들에게도 부탁이 있다. 지하철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고통과 분노를 이해한다는 따뜻한 눈길을 보내면 어떨까? 로마의 현인 키케로는 “젊은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음으로써 노년이 더 수월해진다”라고 말했다. 이는 지금도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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