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박근혜 정부’ 첫 시험대에 선다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2.12.3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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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반 사수하라” vs “과반 허물어라”…‘재ㆍ보선’ 여야 혈투 불가피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4월24일 치러질 재·보궐 선거를 향한 관심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대선 이후 실시되는 첫 선거라는 상징성이 큰 만큼 여야 모두 사활을 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이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나기는 했지만, 여야 간 힘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크게 쏠려 있지 않았음이 확인된 만큼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야권에게도 대선 패배를 설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안철수 전 대선 후보의 등장 여부이다. 안 전 후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야권은 물론 정치권 전체의 지각 변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유지할지, 민주통합당이 재기에 성공할지,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지고 국회 의석을 확보할지 등에 따라 정치권이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라고 내다보았다.

(왼쪽)지난 12월21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당 위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오른쪽)지난 12월27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우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대선 이후 첫 선거’에 여야 모두 총력전

현재까지 4월에 국회의원 재·보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는 곳은 총 10곳이 넘는다. 지난해 10월 검찰에 의해 19대 총선에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당선자 본인이나 선거 회계 책임자 등 당선에 영향을 미치는 관련자가 기소된 경우는 총 34명이다. 정당별로는 새누리당이 17명으로 가장 많고, 민주당 13명, 통합진보당 1명, 무소속 3명 등이다. 이 가운데 이미 재판이 마무리되어 의원직 유지가 확정된 의원은 5명에 불과하다.

반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29명 중 1심이나 2심에서 당선 무효형(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은 의원은 총 14명이다. 새누리당 소속으로는 김근태(충남 부여·청양)·이재균(부산 영도)·이재영(경기 평택 을)·박상은(인천 중·동·옹진)·심학봉(경북 구미 갑)·윤영석(경남 양산)·안덕수(인천 서·강화 을) 성완종(충남 서산·태안)·김동완(충남 당진) 의원 등 9명이다, 민주당은 배기운(전남 나주·화순)·신장용(경기 수원 을) 의원 등 2명이다. 통합진보당 김미희(경기 성남 중원) 의원과 무소속 김형태(경북 포항 남·울릉) 의원, 현영희 의원도 의원직 유지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비례대표인 현의원을 제외한 13명은 일차적으로 4월 재·보선 대상자군(群)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법원에 가서 1·2심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도 있고, 또 대법원 확정 판결이 늦어져서 그 시점이 4월 재·보선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4월 재·보선 규모는 아직도 조금 유동적인 것이 사실이다.

당장 상반기인 4월 재·보선은 아니더라도, 올해 하반기 재·보선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도 여럿이다. 아직 재판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검찰의 구형량이나 그간의 재판 과정을 감안할 때 새누리당 박덕흠(충북 보은·옥천·영동)·조현용(경남 함안·의령·합천) 의원 등 곧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역구가 더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선거법 위반은 아니지만 선거 비용 편취ㆍ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도 의원직 상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비례대표라 재·보선 대상은 아니다.

4월 재·보선 대상 지역의 절반가량이 수도권과 충청권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수도권은 지난해 대선에서 야권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박근혜 당선인이 선전했던 곳이다. 이곳의 재·보선 성적표는 어떤 식으로든 ‘박근혜 정부’를 바라보는 민심의 풍향계가 될 수밖에 없다. 여야가 접전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박근혜 당선인에게 표를 몰아줬던 중원(충청권) 민심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박근혜 당선인의 정국 운영과 여야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으로서는 과반 의석 유지가 지상 목표이다. 그래야 집권 초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현재 의석 수는 지난해 대선 직전 선진당과 합당해서 현재 과반을 조금 넘는 1백53석이다.

지난 12월 19일 안철수 전 후보가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재·보선 전 ‘안철수 신당’ 가능성 있나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4월 재·보선 대상 지역 중 상당수가 우리 쪽에서 금배지를 반납한 지역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이겨야 본전’이라 좀 갑갑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차적인 목표는 과반 의석을 유지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당력을 총결집할 것이다. 다만 새 정부 출범 첫해인 만큼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라고 밝혔다.

재·보선이 절박하기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대선 패배 이후 전면적인 당 쇄신과 야권 전체의 새판 짜기를 주도하려면 4월 재·보선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둬야 한다. 그렇잖아도 새로운 리더십을 찾지 못한 채 계파 갈등이 노골화된 상황에서 재·보선 성적표마저 시원찮을 경우 19대 국회 내내 새누리당에 끌려다니는 것은 물론 당의 존립 기반마저 허물어질 공산이 크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2007년 대선에서 참패한 뒤 이듬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과반을 내주고 나서 5년 내내 끌려다녔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야권 전체가 작은 차이를 뛰어넘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도 “그간 미뤄둔 쇄신 과제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재·보선을 준비해야 하는 만큼 어려운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선 이후 첫 선거라는 상징성이 큰 만큼 적어도 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일만은 없어야 이후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4월 재·보선을 준비하는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다. 정치권의 관심이 특히 집중되는 곳은 부산 영도이다.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되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의원의 출마설이 나오는 데다 안철수 전 후보가 ‘정치인 안철수’의 출발지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김 전 의원과 안 전 후보의 맞대결이 성사된다면 이는 그야말로 ‘빅매치’이다. 두 사람의 상징성을 감안할 때 결과에 따라 여야 관계의 균형추가 급격히 기울 수 있다. 이 때문에 맞대결 성사 가능성이 오히려 작다는 관측도 많다. 실제로 김 전 의원의 경우, 경북 포함 남·울릉 지역구 출마로 선회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안 전 후보의 주변에서도 수도권 출마를 선호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안철수 전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이다. 대선 패배 이후 야권의 재편이 모색되는 시기인 데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안철수 현상’에 열광하는 중도·무당파층이 여전하다. 민주당의 상황이 지지부진할수록 안 전 후보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안철수 전 후보의 4월 재·보선 출마 가능성은 크게 보면서도 ‘안철수 신당’ 출범설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새 정치’ 실현이라는 명분이 있더라도 최소한 원내교섭단체(20석)를 꾸리지 못하면 현실 정치의 벽을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총선이나 대선, 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을 창당하는 경우는 있어도, 재·보선을 앞두고 신당을 창당한 전례는 없었다는 점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안 전 후보가 박선숙·김성식 전 의원, 금태섭 변호사, 허영 전 강원도지사 비서실장 등과 함께 ‘새정치연대’와 같은 틀로 무소속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신당 창당은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안철수 전 후보 캠프 출신의 한 인사는 “창당 문제는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까지 내다보는 긴 호흡으로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좀 더 현실적으로는, “후보 단일화 이후 안철수 전 후보의 행보에 실망했다는 의견이 꽤 있다”는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의 말처럼 신당에 합류할 의원이 얼마나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있다. 물론 친노(親盧) 책임론과 문재인 전 후보의 의원직 사퇴까지 주장한 민주당 ‘쇄신모임’은 친안(親安) 성향이 강하지만 새 정치의 주체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반면, 민주당 내 친안 그룹 일부를 결합시키면서 시민사회·학계·전문가 그룹이 참여하는 신당 창당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금처럼 민주당 내 쇄신 작업이 지지부진할 경우 창당 요구가 훨씬 강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사실상 야권발(發) 정계 개편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물론 시기와 폭이 어느 정도일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안철수 전 후보의 귀국을 전후해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일정한 분열과 재편이 시작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야권 지지층 사이에서 대선을 지나면서 안 전 후보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확산된 점은 또 다른 변수이다.


“새 정부에 힘을 주자”…대선 직후 재ㆍ보선, 집권 여당 유리 

역대 대선 직후 치러진 첫 선거에서는 일부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집권 여당이 크게 승리한 경우가 많았다. 국회의원 총선거나 지방선거 같은 전국 단위의 큰 선거는 물론이고, 일부 지역에 국한되는 재·보궐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대선을 통해 새로 출범한 집권 세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감이 반영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1992년 12월 대선에서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가 승리한 뒤 치러진 1993년 재·보선은 그야말로 민자당의 ‘싹쓸이 판’이었다. 4월과 6월, 8월 등 세 차례 실시된 재·보선에서는 총 8명의 국회의원이 새로 뽑혔는데, 민자당이 6곳에서 승리한 반면, 야당인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 척결 등 ‘역사 바로 세우기’를 추진했고,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동해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하는 등 강도 높은 개혁 드라이브로 90%를 넘나드는 국정 운영 지지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1997년 대선에서 ‘DJP 연합’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도 이듬해 6월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6명의 광역단체장을 배출했다. 공동정부를 구성했던 자민련까지 포함하면 16곳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영남권과 강원을 제외한 10곳에서 승리했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66명의 기초단체장 중 52명(국민회의 48명, 자민련 4명)이 집권 여당 소속이었다.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신승을 거뒀던 2002년 대선 이듬해는 상황이 좀 달랐다. 2003년에는 재·보선이 4월과 10월 두 차례 치러졌는데, 표면적인 결과만 놓고 보면 집권 여당의 패배였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국회의원 선거구 3곳 중 2곳에서 승리했고, 6곳(충청 4곳, 경남 2곳)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전패했다. 하지만 수도권 유권자들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리던 유시민 개혁당 대표(경기 고양 덕양 갑)를 국회에 입성시켜주었다. 노대통령은 이를 기반으로 민주당을 대체할 정치 개혁의 주체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5백30만표 차이로 압승을 거둔 이듬해 치러진 2008년의 18대 총선도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압승이었다. 한나라당은 1백53석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한 반면, 야당인 통합민주당은 81석에 그치면서 세가 급격히 위축되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른바 ‘MB 노믹스’를 적극 펼치는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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