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청춘이야말로 절대 가치"
  • 감명국·조해수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12.31 17: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년 특별 인터뷰│고은 시인

75.8%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지난 12월19일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소중한 한 표에 대한 국민들의 주권 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불과 25년 전만 해도 이런 기본적인 주권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1987년 전두환 정권 시절.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게 해 달라”며 민주화 투쟁을 벌였던 시민들과 학생들이 시위 진압 병력에 쫓겨 명동성당으로 피신했을 때 안기부(국정원의 전신) 차장과 경찰 치안국장이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온다. 그때 김추기경은 그들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시민과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지나가시오”라고 말한다. 결국 경찰의 강제 진압은 이뤄지지 못했고, 이어진 6·29 선언으로 그해 12월, 16년 만에 다시 국민들의 손에 소중한 대선 투표용지가 들려졌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원로로 존경받아왔다. 2009년 2월 선종했음에도 여전히 그는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만큼 그의 빈자리가 큼에도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새로운 정신적 지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생전 김추기경은 특히 젊은이들과 가까웠다. 그는 젊은이들의 스승이 되기보다는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18대 대선의 후유증이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하다. 세대 간의 갈등이 첨예화된 선거였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 상대적으로 비판적인 성향이 강했던 20대와 30대층은 기성세대와 기득권층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통해 ‘노인 무임승차 폐지 서명운동’까지 확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사저널>은 2013년 신년을 맞아 젊은 층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 골이 점점 더 깊게 패여서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세대 간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신년 특별 인터뷰 자리에 젊은 층으로부터 존경받는 원로를 모시고자 했다.

본지 편집국은 거의 한목소리로 고은 시인을 꼽았다. 인터뷰는 대선이 치러진 지 꼭 일주일만인 지난 12월26일에 이루어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
 

2013년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줄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는 국내 생존 문제의 깊은 불안이다. 계층 간의 골짜기는 더 깊게 파여 있다. 지역 간의 조화력은 좀 더 장기적인 추구가 있어야 할 듯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세대 간의 단절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청년 쪽이나 노년 쪽 각자 살아남기가 처절하다. 두 번째는 한반도 문제이다. 지금과 같은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를 하루빨리 공존 관계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것이 영영 불가능해져서는 어느 한 쪽도 결코 행복할 수 없게 된다.

세 번째는 동아시아에서 살아남기이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이 두 나라의 상충 뒤에 엄연히 개입하고 있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사이에서 지혜롭게 헤쳐나갈 방식을 스스로 탐구해야 한다. 이 지역의 위기 상황을 막을 국제 완충의 지혜가 바로 한반도의 지혜라고 본다.

새해를 맞은 우리 국민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는 없을까?

역시 우리 민족의 저력이다. 위기의식이 곧 역사의식이다. 우리 현대사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장기적인 위기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역사는, 망해보기도 하고 흥해보기도 했다. 피눈물을 흘린 기억과 그럴 때마다 그 기억 위에서 영광도 피워낸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우리들의 풀은 비바람에 강하다.

지난 12월 18대 대선이 있었다. 우선 박근혜 당선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대선은 끝났다. 앞으로의 5년을 ‘내일이 있는 나라’로 만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취임의 결심과 퇴임의 회포가 일치하기를 바란다. 그동안 기대의 끝이 환멸이었던 아픔의 반복이 얼마나 많았나. 우리는 역대 정권의 처음과 끝을 늘 경험해왔다. 이번에는 이전 정권처럼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 원수라는 표상을 일정 기간 감당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처음에 모두로부터 집중되는 광선을 받다가 나중에 쓸쓸히 퇴장하는 뒷모습은 참 너무 딱하다.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이번(박당선인)은 정말 깨끗하게 끝내줬으면 좋겠다. 국가 운명을 담당했던 처음의 고상한 사명이 왜 끝으로 갈수록 가장 바닥에서 추악한 자화상을 남기고 마는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지난 12월26일 과 인터뷰를 하는 고은 시인. ⓒ 시사저널 이종현
이번 선거에서 아쉽게 패배한 야당에게도 한 말씀 해주신다면.

야당은 정말 아픈 자기 갱신이 필요하다. 야당이 (대선에서 외부 세력에) 도움을 받아야 했다는 것은 불명예이다. (이번 대선의 야당 세력은) 시민사회로부터 나온 세력을 합해서 나온 것이다. 야당이 지금까지 해온 정치 능력의 결정체가 아니다. 빌려오고 얻어온 것이다. 빌려온 것은 다시 되돌려줘야 한다. 이를 돌려주고 난 다음 벌거벗은 처지는 매우 고독한 처지이다. 이를 잘 극복해야 국민들의 꿈을 대행할 수 있다. 며칠만 아픈 것이 아니라 길게, 정말 뼛속까지 아픈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풀어헤쳐졌다가 뭉치는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이대로 간다면 민주당이라고 하는, 한국 정통 야당의 뿌리가 흔들린다. 과거 정치 형식의 틀에 함몰되는 것은 안 된다. 시민성이 좀 더 강조되어야 한다. 자기 얼굴을 정치 표면에서 빼고 있는 ‘안철수 현상’과 같은 시민사회 세력들이 앞으로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게 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야당은 자기를 해체하는 방식, 자기를 재창조하는 방식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요구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비록 역대 최다 득표의 당선이라고 하지만, 상대방이 50% 턱밑까지 선전한 득표에 대해서도 유의할 것이 있다. 이번 선거는 분명하게 절반의 대국으로 고착되었다. 이런 민심은 그만큼 사회의 긴장 상태가 얼마나 원색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를 잘 파악해야 할 것으로 본다. 50대 이상 기성세대에 대한 20대들의 비판도 어느 때 없던 초유의 일이다. 복지 문제, 기득권 문제에의 엄중한 성찰이 요구된다.

방금 말씀하셨듯이 선거 후 세대 갈등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동안 젊은이들의 쌓여 있는 것들, 내재했던 일상이 표출된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뭔가를 표현하려고 했는데…. 오전에는 기성세력들이, 오후에는 젊은 세력들이 뭉쳤다. 이상한 현상이다. 오전과 오후의 불화는 며칠 안에 가라앉을 파도는 아니다. 누적된 결말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집권 상반기까지는 내내 이 문제가 중요한 해결 과제로 압박받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해결해야 할 첫 번째 사안이다.

지금 20대 젊은 층 사이에서는 SNS 등을 통해 ‘노인 무임승차 폐지 서명운동’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표현이 아주 적나라하다. 젊은이들의 얘기 중 이 정도로 적나라한 발언이 없었다. 그 정도로 절박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기득권 전체가 이를 감당해야 한다. 기득권들은 최소한 아파트 한 채라도 가지고 있지 않나. 부의 대부분이 소수에게 종속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아주 오래된 어휘가 아직까지 우리 몸에 들러붙어 있다. 소득 양극화는 더 심각해졌다. 부의 크기는 늘어났지만 밑에는 아직 그대로이다. 어느 한 고아원의 실내 온도가 10˚C라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겠는가. 나 같은 사람이야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다니지만, 독거노인들은 심각하다. 독거노인들은 죽은 지 며칠이 지나야 냄새가 나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감당하나. 국가적 책임이다. 말이 좀 빗나갔지만, 아무튼 20대를 위로할 사회적 치유의 힘을 찾아나서야 한다. 시대를 개척하는 주역은 언제나 20대가 선도적으로 맡아온 것이 한국 현대사이다. 이런 주역에게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폐기시키게 해서는 안 된다. 엄청난 노령화 사회에서의 청춘이야말로 절대 가치이다.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원로로서 2030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는 ‘멘토-멘티’ 문화가 있는데, 나는 솔직히 멘토라는 말이 굉장히 거북하다. 전부 멘토만 있고 멘토 말만 듣는 복종자만 있는 것인가. 이는 시민을 모독하는 것이다. 부자지간이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형제화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엄마와 딸도 자매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절대 종속이 아니라 상대화되는 것이다. (나는) 지도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종속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우리 국민 모두) 하나하나가 존엄성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자기가 해내는 각성이 진짜 각성이다. 누구한테 영향받는 각성은 진짜 각성이 아니다. 나 역시 누구의 영향을 받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캄캄한 암흑 속에서 시작했다. 나는 원로 이런 것 싫다. (나는) 행렬을 지어 가는 개미 무리들 중 일부일 뿐이고, 군무를 이루어 날아가는 새 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도 지금 힘들어하는 젊은 층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나는 내 뒤 세대의 사회 구성원에게 어떤 격려사나 어떤 경종의 소리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들에게 원천적으로 미안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먹는 밥이 그들이 먹어야 할 밥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마디 감히 할 수 있다면, 격류를 거스르는 고기들의, 그 전신의 의지 하나를 절대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고은 시인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육필 신년 메시지.
평소 젊은 층과의 소통은 잘 하는 편인가?

나는 누구하고나 친하다. 소통이 잘 되는 편이다. 이 존재가 저 존재와 소통함으로서 생명의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니까. 이를 굳이 젊은이들과 소통해야겠다고 의식하지는 않는다. 나이 먹었다고 의식할 필요도 없고, (젊은 층을) 가르칠 필요도 없다.

우리 사회에 존경할 만한 진정한 원로가 없다는 목소리가 많다. 어떻게 보는가?

그것은 문명의 질적인 전환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에서 이제 어른은 이전의 농경 사회 덕목으로서의 어른이 아닐 것이다. 고 함석헌 선생의 운명은 농부의 운명이다. 시장의 운명이 아니다. 고전적인 판단일 것이다. 이제는 예전 농경 사회에서나 있었던 마을 촌장·어른, 원시 시절의 추장·지도자·원로 이런 것은 없다. 국가 원로가 없다고 해서 우리가 참 쓸쓸하다 하는 생각과, 옳은 결정을 한마디 던질 수 있는 원로들을 갈구하는 것 등은 이제 맞지 않다고 본다. 원로에게 가서 물색하지 말고,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 원로를 발명해야 한다. 지금의 모든 사람이 예전처럼 순진하지도 어리석지도 않다. 원로가 갖고 있는 가치가 이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배당된 시대이다. 원로를 찾는 방식은 옛날식이다.

새 정부 들어 남북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나는 남북 관계를 단지 지난 5년, 앞으로의 5년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통일 문제 또한 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긴 역사라고 생각한다. 한 해를 보낸다고 하는 것도 그냥 우리가 1년을 정해서 느끼는 것일 뿐이다. 깊은 시간이 아니지 않나. 긴 시간의 토막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통일이라고 하는 사업은 한 번의 극적인 드라마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철이 있듯이 역사가 자연화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통일 후 100년은 지나야 실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 독일을 봐라. 동독 쪽에서는 예전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고 극우파나 히틀러를 찬양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사회에는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한다. 어느 사회라도 이상적으로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되고, 100이 전부 박수하고 행복한 사회는 이 세상에 없다. 일정한 갈등 없이는 사회는 구성이 안 된다. 이번 선거에서 정직하게 보여준 절반의 간격이, 이제 전부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유동체가 되어서 유연하게 서로 섞이기도 하는 것이다. 

매년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국민들의 기대도 큰 듯하다.

노벨상에 관해서는 사실 내 입으로 말할 것이 없다.(웃음) 나는 내 문학을 지속할 뿐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 활동은 하는 편인가?

SNS 활동은 안 한다. 문학은 대중에게 내의까지 다 벗어던질 수는 없다. 문학은 인터넷 대중에게 환장해서는 안 된다. 또한 시장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나는 공부가 모자란 사람이라 계속해서 공부하는 데 뜻이 있다. 오늘도 책을 몇 권 샀다. 책과의 관계가 긴밀하다. 공부를 해야 한다. 사회 소통보다는 공부에 더 매진하고 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이 사업이 최근 좀 지지부진해서 아쉬움이 많을 듯하다.

현 정부보다는 새 정부에서 좀 낫지 않겠나.(웃음) 우리 민족은 과거에 살길을 찾아서 중국 연해주, 일본, 중앙아시아 등으로 흩어졌다. 1960년대 이후에는 미주까지 흩어졌다. 그곳에 아리랑도 가고 언어도 갔다. 시간과 함께 언어는 변한다. 더 변하기 전에 국어를 모아야 한다. 사전을 만들어놓으면 이것에 기초해 통일 사회 이후 삶의 척도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내 생애 마지막 조국에 대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몇백 년 뒤에 우리 언어가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세계에는 6천5백~6천8백개의 언어가 있는데, 100년 내에 절반 이상의 언어가 사라진다. 국어도 사라질 수 있다. 앞으로는 아랍어, 스페인어, 중국어, 영어만 남아 있을 수 있다. 우리 모국어는 정말 약하다. 이럴 때 사전이 있으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2012년 초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 이사장 연임과 관련해 현 정부와 다소 잡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서 이사장 임기가 좌우되기 때문에 날더러 그만두라면 그만둘 수 있다. 개의치 않는다. 일정한 급여를 타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양해 사항으로 (처리)되었다.

앞으로 작품 활동과 계획이 있다면.

나는 쉬는 날이 없다. 나에게는 일이 곧 놀이이다. 오전 집필, 오후 공부라는 내 문학의 일상은 중단되지 않는다. 지금 쓰는 것은 다소 기획적인 작품이다.

끝으로 <시사저널> 독자들에게 새해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시사저널> 독자는 사려 깊은 독자라고 판단된다. 선정과 엽기에 놀아나지 않는 신중한 지적 중산층의 그 명예에 경의를 표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