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 검진 전에 이것만은 꼭 체크하라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2.3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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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자료 없는 상업화 유혹 경계해야

ⓒ 시사저널 임준선
50세의 한 남성이 있다. 그는 몇 년 전 유전체(지놈) 검사를 했고, 3년 이내에 폐암으로 사망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받았다. 수십 년 동안 힘들게 중소기업을 운영했고, 이제 겨우 먹고살 만해진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건강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유전체 검사로 질병을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검진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몇 달 동안 고민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치료법을 찾기 위해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를 만난 김종원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사진)는 “폐암이 생기지도 않은 사람이 3년 이내에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에 죽을상을 하고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그 분석 결과를 달라고 해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떤 유전자도 폐암을 일으킬 만큼 변이된 것이 없었다. 그 당시는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는 정보가 빈약했음에도 그 유전체 해독업체는 돈벌이를 위해 거짓 예측을 한 것이다. 그 사람은 현재 건강하게 회사를 잘 운영하며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발표된 분석 결과는 대부분 외국인 사례

유전체 돌연변이와 질병과의 관계를 밝히려면 해독과 분석이 필요하다. 지난 10년 동안 유전체 해독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 결과 개인이 자신의 유전체 지도를 USB 메모리(이동 저장 장치)에 넣어 다닐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분석 기술 분야는 설익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원시인들이 옛날에 그려놓은 동굴 벽화나 그림 문자를 발견했지만 그것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유전체 검진을 상업화하기에는 다소 이르다는 말이다.

김교수는 “사람 신체에는 2만여 개의 유전자가 있고, 인간이 걸리는 질병은 7천여 가지이다.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가 특정 질병과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밝혀내야 한다. 수많은 유전자와 질병에 줄긋기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콜레스테롤이 심장병의 원인이라는 것은 모두 아는 상식이다. 이렇게 뚜렷한 연관성을 찾기까지는 수백 명, 수만 명의 자료가 필요했고, 연구 논문도 수없이 나와야 했다. 또 학자들이 갑론을박을 거쳐 의학적으로 검증한 후에 진단·치료에 적용한다. 그런데 현재는 유전체를 해독한 사람 수도 적고, 분석한 연구 성과도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발표된 유전체 분석 결과는 대부분 외국인의 것이다. 인종에 따라 잘 걸리는 병이 있는데, 백인의 유전체 분석 결과를 아시아인에게 대입하면 오차가 발생한다. 예컨대, 백인에게서 발병률이 높은 일부 피부암 분석 자료를 황인종에게 대입하면 마치 아시아인도 피부암에 많이 걸리는 것처럼 왜곡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동양인, 그중에서도 한국인만의 유전체 해독 및 분석 결과가 많이 축적되어야 한국인에게 맞는 질병 예측이 가능하다. 유전체 해독을 많이 했다는 미국도 수십만 명 수준이고, 그나마 질병과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 성과는 그렇게 많지 않다. 현재 한국이 확보한 유전체 해독 사례는 100건 안팎이다. 그는 “외국에서 이런 실험이 있었다. 한 사람이 두 유전체 해독·분석업체에서 유전체 검사를 받았다. 절반은 같은 결과가 나왔지만 나머지 절반에서는 정반대의 분석이 나왔다. 한 업체에서는 특정 암에 걸릴 가능성이 크게 나왔고, 다른 업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유전체 해독·분석업체들이 질병에 걸릴지를 예측한다지만 그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아직 유전체 해독과 분석 정보량이 부족하다. 조금 시간을 가지고 유전체 분석 정보를 더 많이 축적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유전체 해독·분석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 업체들은 마치 모든 유전체를 검사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유혹한다.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과학적 입증이 불확실한 유전체 분석은 금지되어 있다. 생명윤리법에 따라 인종·키·지능 등 인종 차별과 관련된 것도 제한되어 있다.

‘돈 되는 사업’에 해독·분석업체 우후죽순

이들 업체는 또 병원과 제약사에 유전체 검진을 하도록 부추긴다. 병원이나 제약사도 유전체 검진을 새롭고, 정확성이 큰 첨단 검진 방법인 양 포장하면 돈벌이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2011년 국내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의 유전체 분석업체와 협력해서 질병 유전자의 존재를 찾아냄으로써 질병 예방과 치료에 활용한다고 발표했었다. 약 3백여 만원으로 유방암, 대장암, 혈관질환 등 29가지 질병 가능성을 예측하는 검진 결과를 3~4주 만에 받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 복용 시 부작용 여부까지 확인해준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검진법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실적은 거의 없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일반인의 인식이 부족한 탓인지 실제로 검진을 받은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유전체 검진이 돈벌이 수단으로 먼저 발전하면 유전체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교수는 “과거 논문 조작으로 국내 줄기세포 연구가 모두 중단되었다. 이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가 다른 나라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유전체 분석도 유사한 홍역을 치르지 않을까 걱정된다. 유전체 분석은 인류 건강에 크게 이바지할 분야이므로 많은 학자가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너도나도 돈벌이만을 위해 사업을 한다면 유전체 검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정부는 유전체 연구를 규제할 것이고, 연구자들은 위축될 수 있다. 한국의 유전체 연구는 줄기세포 연구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런 준비 없이 유전체 검진을 본격적으로 상업화하면 특정 식품을 특효약처럼 선전하는 장사꾼들도 생겨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혈액 한 방울로 검진하는 것이니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유전체 검진의 상업화는 개인과 사회에 혼란과 불안을 안겨줄 수 있다. 좋은 사례가 있다.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혈액검사에서 양성으로 잘못 진단받은 적이 있다. 그는 고민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반인이 어떤 질병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질병을 예방하는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 병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이 불행해질 수 있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절당할 수도 있다. 결혼이나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유전체 검진은 핵과 같아서 잘 사용하면 유용하지만 잘못 쓰면 폭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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