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호크에 몸단 한국군의 짝사랑 10년
  • 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 승인 2012.12.3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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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창고에 들어갈 운명, 한국에 바가지 씌우기?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다음 날인 지난 12월13일 일본 산케이 신문은 ‘북한이 발사 전날인 11일 로켓을 발사대에서 해체한 후 예비 로켓을 세웠고, 이같은 사실을 파악한 미국은 (한국 정부를 빼고) 일본 정부에만 관련 내용을 통보했다’라고 보도했다. 북한의 로켓 발사 정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대북 경계 태세를 한 단계 낮추었던 한국 정부를 심하게 조롱하는 내용이다. 2009년과 2012년 4월, 두 번에 걸쳐 북한의 로켓 발사 사실을 알지 못해 곤경에 처했던 일본 정부가 이번에는 제때 발사 사실을 탐지했다며 한국 정부의 정보 능력을 마음껏 비웃는 반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 한·일 간에는 누가 먼저 최신형 글로벌호크 정찰기를 도입하느냐의 문제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대북 정보 능력 강화를 최우선적인 방위 목표로 삼은 일본은 최근 미국의 최신형 ‘글로벌호크 블록40’ 도입을 타진 중이다. 반면 한국은 ‘글로벌호크 블록30’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이 기종은 막대한 운영비 소요로 지금 미국에서도 창고로 들어갈 판이다.

그런데 돌연 지난 12월24일 미국 국방부 안보협력국은 한국에 글로벌호크 블록30 무인정찰기 4대(1세트)를 12억 달러(약 1조3천억원)에 판매하기로 하고 미국 의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글로벌호크는 20km 상공에서 36시간 이상 체공하면서 3천km 범위에서 30cm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는, 현존하는 최고 성능의 무인정찰기이다. 미국으로부터 2015년에 전시작전권을 전환받는 한국군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한 정보 감시 능력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장비이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부터 도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최첨단 기술의 유출을 우려한 미국측은 미사일 기술 수출 통제 제도(MTCR)와 한·미 미사일 지침에서 미사일 기술로 전용될 수 있는 무인항공기 판매에 10년째 난색을 표명해왔다. 그러던 터에 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한국에 대한 판매를 승인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여러모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지난 12월25일 미 국방부가 한국에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위)를 판매하겠다면서 제시한 가격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아 논란이 예상된다. ⓒ 연합뉴스
1년 유지비만 3천억원이 들 것으로 관측돼

이런 소식이 놀라운 것은 미국 국방부가 밝힌 판매 가격 때문이다. 우리의 2012년 국방 예산에 계상된 ‘고고도 무인정찰기’ 도입 예산 4천8백억원의 두 배가 훨씬 넘는 비상식적인 가격이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지난 12월27일 “미국 의회에는 최대 예상 가격을 제출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의회 승인 후 오퍼(LOA)에서 제시하는 가격은 프로그램의 범위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향후 오퍼가 접수된 이후에 가격, 판매 조건, 기술 조건 등을 검토한 후에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는 이미 2011년에 “9천6백억원을 내라”고 방사청에 직접 가격을 제시한 바 있다. 게다가 글로벌호크 도입은 협상이 가능한 일반 상용 구매 방식이 아니라 정부 간 구매(FMS) 방식으로 추진되는데, 이럴 경우 미군이 도입한 수준과 동일하게 한국에 판매되기 때문에 우리의 가격 협상력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 한다.

글로벌호크는 미국이 이제껏 운용해온 유인 U-2 정찰기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블록30의 경우는 운영·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미국에서조차도 블록30을 취소시키고 블록40이라는 성능이 개량된 글로벌호크로 방향을 전환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방 예산 감축으로 여의치 않자 최근에는 U-2 정찰기의 사용을 연장하는 방향을 모색 중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런 형편에 우리가 지금 블록30을 4대 도입할 경우 1년 유지비가 공군 전투기 1백35대 운영·유지비에 버금가는 3천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2월27일 이진학 공군 예비역 소장은 한 방송에서 “높은 운영·유지비 때문에 도입이 불가능한 무기”라고 단언했다.

더욱이 블록30의 운영·유지비가 매년 25%씩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4대를 도입할 경우 향후 운영비는 예측조차 불가능할 정도이다. 이런 문제를 인식했는지, 2011년 초에 방사청 관계자는 필자에게 “미국이 가격을 너무 세게 불러 우리가 국산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국내 언론에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중고도 무인정찰기를 개발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2012년 12월27일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 글로벌호크 도입 반대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국방 정책의 첫 시험대 될 듯

글로벌호크에 대한 우리 군의 짝사랑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데 대해 많은 전문가는 이제 이 장비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전 세계 무인정찰기 개발 추세는 장기 체공이 가능한 ‘고고도 무인기’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수소 엔진·태양광 등 새로운 동력 체계를 이용한 무인항공기 개발 프로젝트를 이미 시작했다.

이는 고고도 무인정찰기에서 ‘고고도 장기 체공(HALE·High Altitude Long Endurance)’으로 바뀌는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말한다. 고고도 장기 체공 외에 다른 방식의 추진 시스템을 이용하는 무인기도 개발되고 있다. 이른바 ‘고고도 장기 체공 무인항공기’이다. 미국이 고고도 장기 체공을 비롯해 장시간 비행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원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갖는 것은 연료 문제를 해결해 이른바 ‘영구(永久) 비행기’로 개발하기 위해서다.

전장이 좁은 한반도에서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3천km 작전 반경을 모두 커버하는 글로벌호크는 과도한 성능의 정찰기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향후 한국의 무인기는 ‘장기 체공형 무인기+중고도 무인기+군단·사단급 저고도 무인기 혼합형’으로 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문제에 정통한 공군 출신의 한 전문가는 “1조3천억원이면 이런 종류의 무인기를 전부 개발할 수 있다. 국내 산업 파급 효과와 국내 무인기 기술 발전을 위해서라도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그렇지 않고 미국 국방부와 방위산업체의 어려움을 한국에 전가하는 식으로 글로벌호크 구매가 진행된다면 이는 한·미 동맹이 무기 거래에 악용되는 가장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이런 군 안팎의 여론을 의식했는지 방사청도 “여러 기종의 경쟁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라며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문제는 더 복잡하다. 도입 예산이 9천억원을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던 2011년에도 국방부는 글로벌호크 이외에 다른 대안은 “개발이 끝나지 않았다”며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오직 세계 최고 성능의 무기를 보유하겠다는 소요군의 과욕과, 이미 결정된 정책은 번복하기 어렵다는 고루한 인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정책의 재검토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이미 고고도 무인정찰기 도입을 전제로 한 공군의 정보부대 창설까지 검토가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정책이 재검토될 경우 조직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조직 이기주의도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새로 들어설 박근혜 정부가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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