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 검찰의 반격 카드
  • 김지영·안성모·조해수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1.0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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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선 정국에서의 검찰은 마치 산소마스크를 쓴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중환자와 같았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검찰은 권력기관이었다. 대선 이후 회복 기미를 보인 검찰은 병상을 걸어나와 다시 반격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가리켜 ‘검찰 공화국’으로 부르기도 했다. 역대 주요한 선거마다 정국을 좌지우지했던 것은 검찰이었다. 2007년 대선만 해도 검찰의 ‘BBK 수사’ 결과에 따라 대선 판세가 일거에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 정국에서의 검찰은 그야말로 참담함 그 자체였다. 야당 후보뿐만 아니라, 여당 후보조차도 한목소리로 검찰 개혁을 소리 높여 외쳤다. 검찰은 마치 산소마스크를 쓴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중환자와 같았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검찰은 권력기관이었다. 대선 이후 회복 기미를 보인 검찰은 병상을 걸어나와 다시 반격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기간 ‘검찰 개혁’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개혁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뇌물 검사-성추문 검사-검찰 수뇌부 알력 다툼’ 등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쏟아지는 사건 속에서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던 검찰의 분위기가 대선 이후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나마 한시름 놓았다”라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개혁의 칼날이 인정사정없을 것으로 보고 바짝 긴장했던 검찰이 대선 이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이유이다.

1월2일 김진태 검찰총장 직무대행(오른쪽 맨 앞)이 ‘2013 검찰 신년 다짐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대강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충격 최소화할 자체 개혁안 제시

그동안 민주당과 검찰은 ‘악연’을 이어왔다. 민주당은 “검찰이 정권의 비호 속에서 야당을 탄압하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과 경찰의 갈등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검찰 쪽에 우호적이었다면, 민주당은 경찰 쪽에 더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모습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민주당은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면도날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하게 몰아붙여 검찰 수뇌부가 진땀을 흘리도록 만들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박영선 국회 상임위 법사위원장 등은 검찰의 요주의 대상이었다.

물론 향후 박근혜 정부에서도 검찰이 수술대에 오르는 것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당선인도 대검 중수부 폐지 등 여러 가지 개혁 방안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체제에서 검찰 개혁에 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월2일 법무부가 자체적인 검찰 개혁 방안을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에게 브리핑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중수부의 수사 권한을 없애고, 차관급 55명에 달하는 검사장 수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의 안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검찰의 안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로부터의 충격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스스로 자구책을 내놓은 셈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검찰이 숨겨진 발톱을 다시 드러내 보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중수부는 수사 권한을 없애는 대신 특수수사 조정 역할을 계속하는 선에서 조직을 유지하고, 검사장 수도 10여 명 정도만 줄이는 등의 최소한의 개혁안으로 조직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반격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검찰 개혁을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로 누구를 내세울지 여부가 핵심 관건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인물의 중량감을 감안해 대법관을 지낸 안대희 전 정치쇄신특별위원장(사법연수원 7기)을 우선 거론한다.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검찰 개혁 방안을 담당했던 곳이 바로 안 전 위원장이 이끌었던 정치쇄신특위였다.

하지만 안 전 위원장은 수술 대상으로 첫손에 꼽히는 중수부 폐지에 반대 입장을 보이는 등 ‘개혁 코드’가 맞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 전 위원장 자신이 중수부에서 승승장구한 중수부장 출신이다. 박근혜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한 여권의 한 인사는 “정치쇄신특위 2소위 분과에서 검찰 개혁 분야를 담당했지만, 여기서 새롭게 나온 것은 사실상 없었다. 검찰 공약은 이미 다른 곳에서 올라온 것을 박당선인이 수락한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안 전 위원장 자신도 달갑지 않은 카드로 여기는 분위기이다. 안 전 위원장은 대선 직후 소리 소문 없이 일본으로 출국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 조만간 한 달 정도의 일정으로 미국에 다녀올 계획을 세워두었다고 한다. 당장은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안 전 위원장과 가까운 한 여권 인사는 “지금은 역할을 맡아달라고 해도 거절할 것이다.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본인의 성격과도 안 맞다. 당원 가입도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향후 1년 동안은 거취에 변동이 없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컨트롤타워, 안대희·진영·이주영 등 거론

안 전 위원장이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의원은 “안 전 위원장은 향후 박근혜 정권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장하려고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감사원장에 이어 국무총리를 거친 후 대선 출마 수순을 밟으려고 하지 않겠느냐”라고 전망했다. 이는 당내, 특히 친박 진영 내의 안 전 위원장에 대한 견제를 염두에 둔 행보로도 해석된다.

안 전 위원장과 친분이 두터운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7기)이 법무부장관을 맡아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진부위원장은 안 전 위원장의 경기고, 서울대 법대 3년 선배이다. 함께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진부위원장이 판사 생활을 접으면서 정치인과 검사로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끈끈한 인연은 계속 이어왔다고 한다. 3선 의원인 진부위원장은 2004년 박당선인이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 비서실장을 지낸 친박 핵심 인사이다. 이번에 인수위 부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박당선인의 신뢰는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판사 출신으로 4선 중진인 이주영 의원(10기)도 법무부장관 후보로 거론된다. 이의원은 박당선인의 측근 인사는 아니었지만, 2011년 5월 황우여 원내대표-이주영 정책위의장 출마 때 친박 진영이 똘똘 뭉쳐 당선되었다. 이후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새누리당과 박당선인의 공약을 주도했다. 이의원은 대선 국면에서 경선 특보단장, 대선기획단장, 후보 특보단장을 차례로 맡으며 박당선인의 신뢰를 이어갔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장을 맡은 바 있어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중앙대 법대 교수인 이상돈 전 정치쇄신특위 위원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비대위원 시절부터 검찰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이 전 위원이 키를 쥐게 될 경우 검찰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내 검찰 출신으로는 대선 캠프에서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권영세 전 의원(15기)과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던 김회선 의원(10기) 등이 물망에 올라 있다. 이들은 검찰 개혁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둘 다 정보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국정원장 후보로도 거론된다. 3선의 권 전 의원은 서울지검 검사 시절 당시 안기부(국정원 전신)에서 3년 동안 파견 근무를 한 적이 있다. 국회 정보위원장도 지냈다. 초선의 김의원은 현 정부에서 국정원 2차장으로 일했다. 권 전 의원은 대통령비서실장, 김의원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도 거론된다.

현재 공석인 검찰총장 인사는 검찰 개혁의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검찰총장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검찰 독립을 확보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검찰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라고 강조해왔다. 박당선인은 대선 전 검찰총장 인사와 관련해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인물로, 국회 청문회를 통과해야만 임명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검찰총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겠다는 뜻이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2011년 검찰청법이 개정되면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가동된 적은 없다. 이 위원회가 세 명 이상 후보를 추천하는데, 법무부장관이 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 거론되는 검찰총장 후보로는 14기의 김진태 대검차장(경남 사천 출신), 채동욱 서울고검장(서울), 노환균 법무연수원장(경북 상주), 김학의 대전고검장(서울) 등과, 15기의 길태기 법무부 차관(서울), 소병철 대구고검장(전남 순천), 부산고검장(충남 예산)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김진태 차장과 채동욱 고검장, 소병철 고검장 등이 많이 거론되는데, 특히 호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소고검장이 한때 유력한 카드로 떠오르기도 했다.

검찰 개혁의 상징성 차원에서 내부 인사보다는 외부 인사 발탁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 전 총장의 동기(13기)인 차동민 전 서울고검장(경기 평택)이 거론된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차 전 고검장은 원래부터 내부에서 검찰총장감으로 꼽혀왔는데, 지난 총장 인선 때 석연찮은 이유로 한 전 총장에게 밀렸다. 안대희 전 위원장 쪽에서도 차 전 고검장을 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차동민 카드’에 대해 호의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2012년 12월2일 오전 강릉시청에서 검찰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차동민·조대환 등 외부 영입 인사 카드도

하지만 차 전 고검장이 현재 대형 로펌 ‘김앤장’ 소속이고, SK 관련 사건을 수임한 점 등을 들어 부정적인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15기인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서울)의 역할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 전 지검장은 대선 기간 안 전 위원장이 이끄는 정치쇄신특위에서 활동했다. 박근혜 캠프의 한 여권 인사는 “남 전 지검장은 상당히 강성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역할이든 맡게 된다면 제 식구(검찰)라고 해서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사가 최종 낙점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3기 중에서 ‘삼성특검보’를 지낸 조대환 변호사(경북 청송)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조변호사에 대한 박당선인의 신임이 상당히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12월 박당선인의 정책 자문 그룹으로 대선 기간 싱크탱크 역할을 한 국가미래연구원이 발족식을 가질 때의 일이다. 당시 행사장의 헤드테이블에는 박당선인 이외에 김광두 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 등 여섯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그중 한 명이 박당선인의 오른편에 앉은 조변호사였다. 일각에서는 13기 동기인 차동민 변호사와 조대환 변호사가 검찰총장과 민정수석을 각각 맡게 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박당선인 주변에서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검찰 개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후보들이 대개 ‘친(親)검찰’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검찰에서 조금 신경을 쓰는 인사가 남기춘 전 검사장과 조대환 변호사, 이상돈 교수 정도이다. 재야 법조계의 한 중견 인사는 “현재 예상되는 인물의 면면을 볼 때 박근혜의 검찰 개혁은 중수부의 형식적 폐지 등 소폭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인수위 뒤에서 얼핏 슬며시 미소 짓는 검찰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박근혜 인사 움직이는 ‘숨은 손’ 찾아라…
김용환·최외출 등에 선 대기 위해 동분서주 

검찰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당선인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대 대통령 당선인들은 저마다 사법 개혁을 공약했다. 하지만 검찰과 법무부의 조직적 반발 등으로 이행에 차질을 빚었다. 박당선인이 초기 인선 때부터 검찰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박당선인 특유의 ‘깜깜이 인사’는 이러한 확신을 주기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정권처럼 ‘밀실 인사’ ‘보은 인사’ 등이 이루어진다면 검찰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각에서는 특정 인사가 박당선인의 구상과 인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검찰 주변에서도 박당선인의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숨은 손’이 누구인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우선 박당선인의 원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7인회’를 두고 뒷말이 여전하다. 특히 재무부장관을 지낸 ‘7인회 좌장’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다. 당내 사정을 잘 아는 한 새누리당 인사는 “모든 인사의 큰 흐름은 김용환 전 장관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온다. 박당선인 주변 인사 중 가장 파워풀하다고 볼 수 있다. 벌써 김 전 장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라고 전했다. 박당선인의 ‘그림자 실세’로 불리는 최외출 영남대 교수를 주목하는 이들도 많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최교수는 입이 무겁고, 앞서 나가지 않고, 외부와 접촉도 하지 않는 등 박당선인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 실질적인 기획과 조정 역할을 최교수가 총괄하고 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검찰 내에서는 “차기 총장 인사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총장 인사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박당선인에게 현재의 총장 공석 체제가 나쁘지만은 않다. 검찰 입장에서는 인수위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될 검찰 개혁안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될 총장이 필요하다. 총장이 공석이다 보니 다들 손을 놓고 인수위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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