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죽지세’ 신라 ‘4대문 사수’ 조선
  • 엄민우 (mw@sisapress.com)
  • 승인 2013.01.0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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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신세계가의 비즈니스호텔 전쟁

호텔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종전과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대형 호텔급’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경쟁이 이제는 ‘비즈니스호텔’급으로 한 체급 낮춰졌다.

최근 호텔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는 비즈니스호텔이다. 비즈니스호텔은 출장을 간 직장인이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과 시설을 확보한 중소형급 호텔이다. 특급 호텔보다 요금이 저렴해 직장인뿐 아니라 자유 여행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서울은 지금 ‘숙소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 현재 갖추고 있는 숙박 인프라로는 그 숫자를 다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점을 간파한 호텔업계에서는 너도나도 비즈니스호텔을 짓는 데 여념이 없다.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펼쳐지는 전초전도 볼만하다. 그중에서도 호텔신라와 조선호텔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국내 호텔업계의 대표 주자들이 각자 다른 스타일로 비즈니스호텔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 연합뉴스, (오른쪽)ⓒ 신세계 제공
 

호텔신라, 공격적으로 몸만들기 나서

가장 공격적으로 몸만들기에 나선 곳은 호텔신라이다. 호텔신라는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에만 6개의 비즈니스호텔 운영 계약을 체결했다. 벌써 2천명의 방문객을 받을 수 있는 객실을 확보한 셈이다. 특히 강남 노른자위 지역에 객실을 확보한 것이 관전 포인트이다. 강남 지역은 서울 시내에서도 특히 한국 방문객들이 묵을 만한 숙소가 부족한 것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몇몇 소수의 고급 호텔을 제외하면 대부분 모텔뿐이다. 이렇게 숙소가 부족하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도 일어난다. 역삼역 인근에 위치한 한 모텔은 ‘MOTEL’의 ‘M’자를 ‘H’로 바꿔 단 후 중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게 되었다. 인근 직장에 근무하는 이한복씨(30·가명)는 “언제부터인가 회사 근처 모텔에서 중국인들이 몰려나오는 경우가 많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기존 모텔이 호텔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라고 전했다.

호텔신라는 최근 서초동 뱅뱅사거리 인근의 비즈니스호텔 위탁 운영 계약을 체결했다. 벽은산업과 코람코자산신탁이 프로젝트 금융회사를 만들어 호텔 건물을 개발하고 호텔신라가 운영권을 맡는 형태이다. 지하 3층, 지상 23층 규모로 내년 6월에 착공해 2015년 문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호텔은 관광 수요뿐 아니라 비즈니스 목적으로 한국을 찾아온 방문객들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남역에 위치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 사옥과 불과 1㎞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호텔신라는 그 밖에 역삼동 KT 영동지사 부지, 서대문구 미근동 옛 화양극장 부지, 마포구 도화동 한마음병원 인근 부지, 구로디지털단지역 옛 JW중외제약 부지 등에서도 비즈니스호텔 운영 계약을 체결했다. 호텔신라의 행보는 서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에서도 비즈니스호텔 운영 계약을 완료했고, 울산과 해운대 등의 비즈니스호텔 운영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호텔신라의 이같은 공격적 행보는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의 경영 스타일을 반영한다.

이부진 대표는 ‘얌전한 부잣집 딸’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일을 맡으면 추진력을 갖고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 호텔신라 사장 취임식에서 이부진 대표는 “혁신 없는 성장은 불가능하고, 성장 없는 혁신은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스스로 안주하지 않는 인물임을 공표한 것이다. 그는 사장으로 승진하자마자 파격적 인사를 펼치는 행보를 보였다. 일부 반대를 무릅쓰고 호텔 지하에 있던 에르메스 부티크(고급스러운 물건을 판매하는 소규모 점포)를 지상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에르메스 부티크는 국내는 물론 해외 방문객들 사이에서도 화제를 낳았다. 그는 호텔 사업을 넘어 면세 유통 사업, 레저 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2010년에는 인천공항에 루이비통을 입점시키며 함께 경쟁을 펼쳤던 라이벌 롯데면세점에 승리를 거두었다. 이부진 대표의 이러한 추진력은 비즈니스호텔 사업 전략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조선호텔 “4대문 안 중심으로 확장해나갈 것”

조선호텔의 전략은 호텔신라와 약간 다르다. 초기 입지 선점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무작정 입지를 늘리기보다는 비즈니스 고객 확보가 보장된 ‘확실한’ 곳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친다는 구상이다. 조선호텔 관계자는 “아직 계약을 추진하고 있는 곳들이 있어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사대문 안쪽을 중심으로 해서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 대다수 대기업 및 금융사의 본사가 집결해 있어 관광 수요뿐 아니라 비즈니스 수요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조선호텔의 전략은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호텔은 단순한 관광 수요뿐 아니라 비즈니스 수요 흡수에 관심이 많다. 조선호텔 관계자는 “비즈니스호텔은 말 그대로 ‘비즈니스’를 위한 호텔이다. 웨스턴조선호텔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고급스러운 비즈니스호텔’이다. 임원 등 고위급은 웨스틴조선호텔을, 일반 사원이나 대리급들은 비즈니스호텔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호텔은 서울역 인근에 세워지는 ‘용산 쌍용 플래티넘 콤플렉스’를 20년 장기 임차해 비즈니스호텔로 운영할 계획이다. 건물의 지상 19층부터 30층까지로 약 3백50실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호텔 개관 100주년을 맞는 2014년 하반기에 문을 열 예정이다. 요금 및 운영 방침은 정해지지 않았다. 아직 이를 대비하는 팀이나 조직도 채 꾸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구체적 계획이 수립되기 전에 입지부터 선점해야 할 정도로 비즈니스호텔 시장 경쟁은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다. 조선호텔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그동안의 브랜드 이미지 등을 고려했을 때 일반 비즈니스호텔보다는 좀 더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가지 않을까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고급화된 상품을 만들던 곳이 대중적인 상품을 만들게 되면 기존 브랜드 이미지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 조선호텔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투 트랙’(양립)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대중화와 고급화 전략을 동시 추진하는 것이다. 비즈니스호텔을 지으면서 기존의 웨스틴조선호텔은 더욱 고급화시켜 차별화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1월1일부터 시작한 피톡(PTOP) 서비스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서비스이다. 고객이 객실 예약을 하면 컵, 수건, 슬리퍼, 목욕 가운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비품을 비치해주는 서비스이다. 최상위 등급 객실의 개인 용품 가격은 2백30만원에 달한다.

조선호텔은 신세계 계열로 불리운다. 조선호텔의 지분은 이마트가 100% 갖고 있는데, 이마트의 지분을 신세계가(家)에서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을 보면 이명희 신세계 회장(17.3%),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7.32%),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2.52%) 순이다. 이 중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직접적으로 호텔 운영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경영에 참여하진 않지만 1996년 상무보로 입사해 2009년까지 몸담았다. 객실 리노베이션이나 인테리어 작업을 통해 호텔의 품격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업계의 파워게임이 펼쳐질 무대가 생겼다. 대한전선 옛 사옥인 인송빌딩이 4백여 객실 규모의 비즈니스호텔로 리모델링되는데, 여기에 유수의 호텔 대기업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호텔신라와 조선호텔도 포함된다. 결정권자인 베스타스운용은 극도로 말을 아끼며 대상 기업을 물색 중이다. 베스타스운용의 한 관계자는 “해당 건에 대해서는 더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해해달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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