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대부’들의 쓸쓸한 하류 인생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1.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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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붕괴 후 김태촌 사망·조양은 도피·이동재 은퇴

우리나라 ‘조직폭력(조폭) 3대 패밀리’ 중 하나인 서방파의 두목 김태촌씨가 1월5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김씨의 장례식장은 연일 조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최소 2천여 명이 다녀갔다. 우리 속담에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많아도, 정승이 죽으면 조문객이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조폭 두목’의 죽음 앞에 이런 말은 무색해졌다.

지난 11월5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고 김태촌 씨의 발인이 8일 오전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서 진행된 가운데 영정 차가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조폭 두목의 화려한 인맥

김씨가 사망하면서 평소 그가 관리하던 화려한 인맥도 드러났다. 그의 빈소는 종교인, 프로스포츠 감독, 연예인, 경제인 등이 보낸 조화 2백여 개로 가득 찼다. 신상사파 신상현씨, 칠성파 이강환씨, 부산 영도파 천달남씨 등 주먹계 대부들도 조화를 보내거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야구해설가 하일성씨도 김씨와 오랫동안 친분을 맺어왔다고 스스로 밝혔다. 하씨는 전·현직 주먹계 인사들과도 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기자는 약 2년 전 어느 날 저녁에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전직 조폭을 취재하고 있었다. 그때 하일성씨도 다른 일행과 함께 있었는데 두 사람은 상당한 친분이 있었다. 전직 조폭은 기자에게 “일성이형과는 자주 만나서 식사하는 사이”라고 귀띔했다.

김태촌은 이처럼 죽어서도 대단한 인맥을 과시했다.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골고루 연관되어 있었다. 물론 개인 신상이 드러나는 것을 꺼린 유명 인사들은 다른 방법으로 조문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 중에는 정치인, 군인, 법조인, 관료 등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폭 두목들의 거미줄 같은 유착망은 오래전부터 유명하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김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유명 인사들의 조화는 안으로 들여놓은 후 문상객들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이에 대해 원로 조폭인 김 아무개씨는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의리’를 최고로 친다. 김태촌씨와 잘 알고 지내면서도 아무런 성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의리 없는 사람으로 찍히게 된다. 자신의 신분을 의식한 사람들은 지인을 보내거나 부의금으로 대신했을 것이다. 이렇게 눈도장을 찍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송교도소 수감 중 공문서 위조 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된 김태촌(왼쪽)ⓒ 연합뉴스 사기 및 폭력 행위 혐의로 구속된 조양은(오른쪽)ⓒ 연합뉴스
밤의 황제들의 비참한 말로

밤의 황제로 불렸던 ‘3대 패밀리’ 즉 김태촌의 ‘서방파’,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들은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서울을 장악하기 위해 피 튀기는 ‘3년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하고 노태우 정권 시절에 ‘범죄와의 전쟁’을 겪으면서 강제 해체되는 수순을 밟아야 했다. 조직 보스의 말로도 평탄치 않았다.

가장 먼저 공권력에 무너진 것은 조양은의 양은이파이다. 조양은은 10대 후반부터 주먹 세계에 몸담았다. 광주 대호파에서 활동하다가 18세 때 ‘화신 8인조’를 결성한 후 1970년에 서울로 상경했다. 그는 5년 후인 1975년 당시 조폭 대부로 군림하던 신상사파를 사보이호텔에서 급습했다. 그 후 자신의 이름을 딴 ‘양은이파’를 결성하며 일약 전국구 조폭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황금 시절은 길지 않았다. 1980년 신군부는 ‘사회악 일소’ 차원에서 대대적인 조폭 검거령을 내렸다. 조양은은 핵심 타깃이 되었고, 구속되어 15년형을 선고받았다.

1995년에 만기 출소한 조양은은 1996년과 2001년에 다시 구속되는 등 범죄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다가 폐업했고, 외제차 구입 과정에서 30대 의사에게 억대의 사기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현재 조양은은 금융권 대출 사기에 연루되어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이다. 조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지난해 해외로 도피했고, 현재 필리핀에 머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씨는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감옥에 있었고, 다시 수감될 처지에 놓여 있다.

김태촌은 1975년 서울로 상경해 ‘서방파’를 결성한 후 1980년대 초반에 투옥되었다. 1986년 1월에 출소한 후에는 3백여 명의 추종자들을 규합해 전국 규모인 ‘범서방파’를 결성했다. 1987년 인천 뉴송도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을 살인 교사한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2년 후 폐암 진단을 받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 후 기도원에 들어가 소두목급 15명을 모은 후 신우회를 결성했다.

여기에는 조폭 3백여 명이 모였고, 당국을 속이기 위해 ‘축복기도대성회’를 가장했다. 하지만 사법 당국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검찰은 이를 범서방파 재건으로 간주해 김씨를 재구속하고 대대적인 조폭 소탕 작전을 벌였다. 결국 범서방파도 강제 해체 수순을 밟는다.

김태촌은 63년의 인생을 살았으나, 절반이 넘는 3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교도소를 제 집처럼 들락거린 셈이다. 실제로 거리를 활보하며 ‘밤의 황제’로 군림한 것은 10년이 채 안 된다.

그에게는 살인교사·폭력·사기·협박 등의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평생 범죄 전과를 훈장처럼 달고 다닌 것이다. 그는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도 끊임없이 조직 재건을 노렸지만 그때마다 사법 당국의 정보망에 걸려 철퇴를 맞았다.

인생 절반을 감옥에서 보낸 김태촌

김태촌과 조양은은 구속과 출소를 반복하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신앙인으로 변신했다. 교회를 다니며 간증 행사에 참여하는 등 종교인으로 거듭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정성에 의문이 갔다. 겉으로는 종교인 행사를 했으나 다시 범죄에 연루되면서 ‘제 버릇’을 고치지는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원로 조폭 김 아무개씨는 “조폭이 신앙을 갖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자기가 지은 죄를 참회하려는 생각에서다. 또 교도소에서 나오면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종교를 도피처로 삼기도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개과천선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어서다. 그래서 이래저래 ‘종교’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이 어디 가겠는가. 결국은 범죄에 연루되어 말로가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3대 패밀리 중 하나였던 이동재의 ‘OB파’는 공권력이 아닌 조직 간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공중분해된 경우이다. 1987년 11월에 OB파 조직원들이 양은이파의 조직원 두 명을 공격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보복에 나선 양은이파는 약 1년 후 서울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이동재의 다리를 난자했다.

이 사건으로 이동재는 회복 불능의 중상을 입었고,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주먹계를 은퇴했다. 이씨는 미국의 한 지역에 은둔하면서 세탁소 등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2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까지 은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이씨는 조기 은퇴하면서 조양은·김태촌처럼 교도소를 들락거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끝이 비참한 것은 그들과 다르지 않다. 기자가 이씨를 알 만한 사람들에게 미국 행적을 수소문했으나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조직 와해되고 부하들 독자 행보

암흑가의 대부였던 김태촌의 죽음 이후 조폭 사회의 변화도 주목된다. 경찰도 조폭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조폭 3대 패밀리는 이미 조직이 와해되거나 사실상 붕괴되었다. 두목들이 오랜 수감 생활이나 해외 도피를 하면서 조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 간부들은 독자 행보에 나서거나 사업가로 변신했다. 이들이 맹활약했던 시절도 20년이 넘었다. 지금은 명목상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 김태촌의 죽음으로 인해 조직 간 전쟁이 일어나거나 후계를 차지하기 위해 내분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다.

또 김태촌의 사망으로 전국구 주먹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 근·현대 조폭계에는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활동하던 ‘낭만파 주먹 시대’가 있었다. 그 후 3대 패밀리가 서울을 장악하기 위해 회칼 등 ‘연장’을 사용하면서 ‘전국구 폭력조직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우두머리들이 구속되고 조직이 해체되면서 이들의 시대도 끝이 났다. 부산의 칠성파, 광주 무등산파 등은 전국구에 준하는 조직을 갖추고 있으나 서울 진출을 모색하지 않고 있다. 공권력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조폭들은 ‘조직’으로 엮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범죄 단체 가입’으로 분류되면 형량이 무거워진다. 또 관리 대상 명단에 한 번 오르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야 한다. 행동 지침을 만들고 ‘○○파’라고 하면서 세를 형성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태촌의 죽음과 함께 전국구 폭력 시대는 가고, 대신 ‘기업형 조폭 시대’가 본격 도래한 것이다.


2009년 9월1일 베트남 폭력조직 ‘하노이파’ 조직원들이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경찰청은 2011년 상반기에 전국에서 일제히 ‘외국 조폭’ 소탕전을 벌였다. 이때 경기도 시흥과 안산 등 수도권 외국인 밀집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베트남·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태국 등의 신흥 조폭들을 상당수 적발했다. 베트남 조폭들의 경우 공장과 기숙사 등에서 정글도 등 사제 무기를 대량으로 제조해 숨겨놓고 있었다. 기숙사 내 창고나 캐비닛에서 정글도, 쇠파이프, 목검 등이 나왔다.

외국 신흥 조폭들은 아직은 ‘패거리’ 정도의 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원과 자금을 불려가며 점차 조직 형태를 띠어 가고 있어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은 ‘외국 조폭과의 전쟁’ 이후 이들의 세력 확장에 바짝 경계하고 있다. 향후 세력이 커지거나 조직으로 바뀔 수 있는 외국인 폭력배 100여 명을 가려내 집중 관리에 들어갔다.

경찰은 안산 원곡동에서 조직된 상인회가 언제든지 이익단체로 바뀔 수 있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서울 대림동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있는 한 체육 친목단체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폭력조직이 ‘체육 친목단체’를 가장한 후 세력을 규합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 조폭들은 마약 밀매, 보이스 피싱, 도박장 운영, 성매매 알선 등으로 운영 자금을 확보한다. 국내에서 외국 조폭들의 영향력이 커질 경우 언제든 국내 조폭들과 영토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가장 경계되는 상황이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지난해 8월30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황홍락 경감이 조폭들에게서 압수한 현금 IC카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조폭들이 기업형으로 진화하면서 조직 운영도 체계적으로 바뀌었다. 로펌이나 법조인을 법률 고문이나 자문으로 두면서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간다. 사업 영역이 넓어지면서 경제적인 여건도 훨씬 좋아졌다.

기존에는 폭력 갈취, 룸살롱이나 오락실 운영 등이 주요 수입원이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재개발·재건축·지역주택조합, 리조트 개발 등 건설 이권은 기본이고, 사채업, 인터넷 도박, 다단계업체 운영, 벤처기업 운영, 프로스포츠 도박, 상장 회사 인수 등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경찰의 단속을 비켜가기도 쉬워졌다. 영락없이 ‘양의 탈을 쓴 늑대’ 모습을 하고 있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에서 활동 중인 폭력조직은 2백17개 조직, 5천3백84명이다. 최근 5년간을 비교해 보면 약간씩 편차가 있으나 일정한 수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관리 조폭’은 조직 체계를 갖추고 조직 강령이 있으며 자금 능력이 있는 조직을 말한다.

경찰은 관리 대상 명단에 오르면 상시적인 감시 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허점이 있다. 신흥 조직이나 소규모 조직원들은 명단에서 빠져 있는 경우가 있다. 또, 기업형 조폭들은 조직폭력단체로 규정하기가 애매해 ‘폭력조직’으로 분류되지 않을 수도 있다. ‘관리 조폭’ 명단에 빠져 있다고 해서 암흑가를 떠난 것은 아니다. 상당수는 조직과 끊임없는 유대 관계를 맺으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여전히 서민들의 피를 빨고 있다.

인구 대비 조폭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전북이다. 도민 1인당 조폭 수로 계산하면 지난 5년 동안 ‘부동의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전국 평균보다 두 배가 많다. 전주의 나이트파·월드컵파, 익산의 배차장파, 군산의 백악관파 등이 여전히 활보하고 있다. 기타 지역으로는 서울 장안동파, 부산 칠성파·영도파·유태파, 대구 동성로파·향촌동파, 인천 꼴망파, 광주 무등산파·국제PJ파·충장OB파, 경기 남문파·역전파, 등도 굳건하다. 이들도 기업형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강기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새누리당 의원)은 “폭력조직이 법망을 피해 지능적으로 활동하고 있어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 경찰의 수사 역량을 높여 폭력조직의 감춰진 범죄에 효과적으로 단속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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