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공룡 3인방 ‘영토 전쟁’ 2라운드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1.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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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복합쇼핑몰로 전선 확대

유통 공룡인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새해 벽두부터 치열한 ‘영토 전쟁’을 벌이고 있다. 목 좋은 부지를 차지하기 위해 소송까지도 불사하는 분위기이다. 검찰이나 감사원 등에는 특정 기업을 음해하는 괴문서가 수시로 전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백화점이나 마트 영업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뺏고 빼앗기는 치킨 게임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지나친 경쟁이 자칫 ‘제 살 깎아먹기’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세 그룹은 현재 후계 구도가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일찍부터 경영 전면에 나서 M&A(인수·합병)나 신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역시 정용진 부회장 체제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이미 지난 연말 인사에서 구학서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경영 전면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정용진 부회장 체제 구축을 위한 정지 작업 차원으로 보고 있다.

경쟁사 음해 괴문서 사정기관에 나돌기도

유통 공룡들의 진흙탕 싸움 이면에 2·3세들의 자존심 싸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결국에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다. 이들 사업에 2·3세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싸움이 가장 치열한 전선은 롯데와 신세계이다. 두 그룹은 최근 프리미엄아웃렛과 드러그스토어, 복합쇼핑몰 사업 등에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충돌도 잦아지고 있다. “상도의가 바닥에 떨어졌다”라는 거친 말이 나올 정도이다. 전략은 ‘극과 극’이다. 신세계의 경우 시장 선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유통업계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평가받는 프리미엄아웃렛과 드러그스토어 사업도 신세계가 가장 먼저 시작했다. 반면, 롯데는  일정 기간 지켜보는 단계를 거친다. 그러다 일단 시장이 검증되었다고 판단되면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물량 공세’를 펼친다.

신세계는 2007년 6월 경기도 여주에 프리미엄아웃렛을 국내 최초로 개점했다. 여주 아웃렛이 성공적으로 안착하자 롯데도 프리미엄아웃렛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신세계 매장과 불과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이천점을 열었다. 이후 롯데와 신세계는 파주와 부산 등으로 점차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신세계와 롯데가 최근 공을 들이는 복합쇼핑몰 사업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하남유니온스퀘어 사업 선포식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복합쇼핑몰 사업에 관심이 많다. 정부회장은 미국 출장 중에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회장 역시 김창권 롯데자산개발 대표를 통해 복합쇼핑몰 사업을 세세히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세계는 최근 대전 관저구에 대규모 복합쇼핑몰 개발을 추진 중이다. 그러자 롯데는 대전 엑스포과학공원에 대형 테마파크 조성 계획을 밝혔다. 지역 시민단체에서 중복 투자 논란이 제기될 정도로 경쟁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두 그룹의 해묵은 갈등은 결국 인천종합터미널 부지 확보 과정에서 폭발했다. 이곳에서는 그동안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가 15년 이상 영업을 해오고 있었다. 지난해 9월 롯데가 터미널 건물과 부지의 매입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롯데는 이 일대를 복합쇼핑몰로 개발할 예정이었다. 신세계는 부지 매각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신세계측은 “롯데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고 있다”라고 성토했다. 롯데측은 “수익성이 나면 투자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반박한다.

과열 경쟁 따른 ‘제 살 깎아먹기’ 우려

법원은 최근 신세계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이다. 최근 신세계가 강남점이 들어서 있는 센트럴시티를 1조2천여 억원에 인수한 것도 이 때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롯데가 공격할 수 있는 싹을 미리 잘라버리겠다는 심산이다. 광주신세계가 입주해 있는 광주터미널 부지의 경우 정용진 부회장이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을 만나 매각을 타진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신세계측은 “사실무근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신세계는 역사나 터미널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하는 전략을 써왔다. 하지만 최근 영업 안정을 위해 매장을 인수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그룹 관계자는 “센트럴시티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3년 6개월간 공들였다. 시기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 것이지, 롯데를 의식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롯데측도 “신세계는 경쟁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룹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는 어디에 점을 찍어도 부지가 겹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상권이 중복되면 시너지 효과가 나기 때문에 과열 경쟁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의 판단은 달랐다. 신세계 주가는 이날 하루에만 5% 이상 하락했다. 롯데의 위협에서는 벗어났지만, 향후 차입금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지영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센트럴시티 인수 목적 자체가 최근 롯데쇼핑의 신세계 인천점 부지 인수 시도에 따른 선제 대응이라고 판단된다. 향후 출점 계획을 감안할 때 차입금 부담이 있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유통업계가 지금과 같이 과열 경쟁으로 치달을 경우 ‘약보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상대적으로 롯데의 현금 창출 능력이 우수하지만 안심할 수준은 못 된다. 최근 하이마트 등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채무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 보상 배율이 나빠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역시 경쟁에 뛰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그동안 매장 확대를 자제해왔다. 정지선 회장 역시 그동안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외부 노출도 꺼리면서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하지만 최근 외부 노출이 부쩍 잦아지면서 현대백화점의 전략 변화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은 최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점을 증축하면서 아웃렛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근래에는 신세계가 현재 건립을 준비 중인 복합쇼핑몰 하남유니온스퀘어의 지분 인수 작업에도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당초 하남시와 홍콩 유통 기업 킹파워가 물류단지 조성을 위해 개발한 곳이었다. 하남시는 57만m²(17만여 평)의 땅을 그린벨트에서 해제했다. 하지만 킹파워그룹의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지분이 신세계에 넘어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특혜 논란이 일자 감사원뿐 아니라 검찰에서도 유심히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그룹에서는 그 배경으로 현대백화점을 지목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측은 “사실무근이다”라고 강변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하남 유니온스퀘어가 천호점과 가까워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현대백화점이 경쟁사에 태클을 걸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신동빈 ⓒ 시사저널 임준선, 정용진 ⓒ뉴시스, 정지선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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