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 금융 패권 누구 손에 들어가나
  • 정일환│뉴시스 기자 ()
  • 승인 2013.01.1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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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 자리 놓고 첨예한 대립…권혁세 원장 행보에도 큰 관심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무르익던 지난해 12월20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20층 구내식당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회가 열렸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고위 임원들과 출입기자단이 함께한 이날 송년회에서 조직의 수장답게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 기립 박수를 받으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런데 헤드테이블로 향하던 권원장은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송년회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다. 평소 활기차고 다부진 성격인 권원장이기는 했지만, 이날은 어쩐 일인지 몹시 들떠 있는 듯이 보였다.

이곳저곳에서 “왜 저러셔?”라는 수군거림이 들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과 다 악수를 나눈 뒤에야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마이크를 잡았다. 송년회를 시작하는 권원장의 첫마디는 이랬다.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금년처럼 2013년에도 많이들 도와주시고….”

언뜻 들으면 특별할 것도 없는 송년 덕담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어제’는 너무나 의미가 큰 날이었다. 2012년 12월19일은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1월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왼쪽)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금융감독기구 재편은 박근혜 당선인 공약

‘TK(대구·경북)’ 출신인 권원장에게 이번 선거 결과는 여느 대선과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신과 조직의 명운이 걸린 싸움에서 다소 밀리는 듯이 보였던 그로서는 이번 선거가 기울어진 무게 추를 되돌릴 절호의 기회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금융감독원(금감원)과 금융위원회 그리고 두 조직의 수장인 권혁세 원장과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금 ‘금융감독기구 재편’이라는 대의명분을 놓고 양보할 수 없는 일전을 벌이는 중이다. 두 조직은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급부상한 ‘쌍봉형(Twin Peaks) 감독 체계’ ‘금융부 신설’과 관련해 치열한 논리 싸움과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쌍봉형 구조는 금감원에서 소비자 보호 기능을 떼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방안이다. 금감원은 금융사에 대한 감독 기능만 갖고, 소비자 보호는 ‘금융소비자보호원’ 등에 맡긴다는 것이다.

이는 금감원이 저축은행의 불법 대출이나 부실 대출 행위에 대한 감시 등에 충실하지 못했고, 선제적 예방 역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출발한다. 금감원의 조사와 감독 권한은 무소불위의 권력에 가깝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묻기 어려운 조직이라는 것이다. 과거 은행과 보험, 증권으로 나뉘어 있던 감독 조직과 기능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그나마 내부의 선의의 경쟁 구조마저 사라진 것으로 금융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금융부 신설은 이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단순히 금융위원회 역할이 강화되는 것을 넘어 금감원의 일부 기능과 기획재정부의 국제금융국까지 통합해 국내·국제 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것은 물론, 금융감독권까지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우정사업본부가 갖고 있는 금융 기능까지 흡수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말 그대로 명실상부한 금융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되는 셈이다.

이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금감원은 금융회사 건전성이나 대주주 적격성 등에 대한 감독 기능만 남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게 된다. 금융부 신설을 사실상 금감원 해체로 보는 이유이다. ‘금융부 신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밝혀온 금융감독기구 개편 방향이다. 금감원 입장에서 본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이에 금감원과 권혁세 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쌍봉형 체계’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때로는 학자들이 동원되기도 했고, 언론을 통해서도 “쌍봉형 체계를 선택한 선진국은 거의 없다”거나 “신설 조직을 만드는 데 5천억원 이상이 소요된다”는 논리를 펴는 데 열을 올렸다.

반면, 금융위원회와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느긋했다. 특히 김위원장은 “환율 급변 등 위기 상황 시 정책적 대응을 위해서라도 금융 정책이 한 부처에서 이뤄져야 한다”라면서 금융부 신설 필요성에 은근히 힘을 실을 뿐 말을 아꼈다. 금융위 직원에게도 “공사를 떠나 어떤 자리에서도 조직 문제와 관련한 내용을 입에 올리지 마라”라고 함구령을 내렸다. 괜한 구설로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때만 해도 금융 감독 체계 개편의 주도권은 김석동 위원장에게 넘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1월10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김용준 인수위원장 주재로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김석동 위원장과 권혁세 원장 다른 행보

하지만 연말이 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승리로 선거가 끝난 지 10여 일, 2012년이 저물던 날인 12월31일 금감원은 권혁세 원장 명의의 ‘대국민 신년사’를 배포했다. 이 신년사에 권혁세 원장은 ‘가계 부채 연착륙 유도 방안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제안한 국민행복기금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적었다.

또 ‘박당선인의 공약인 보유 주택 지분 매각 제도와 주택연금 사전 가입 제도가 원활하게 도입되어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대학생을 상대로는 연체된 학자금 대출은 장기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나같이 박근혜 당선인의 금융 관련 공약을 그대로 옮겨 적어 놓은 것이었다. “너무하는 것 아니냐”라는 내부 불만이 나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면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1월2일 열렸던 신년 간담회에서 다소 위험 수위를 넘는 발언을 해 듣는 이들을 긴장시켰다. 그는 “국가 재정을 투입해 가계 부채를 해결하는 것에 반대한다. 특히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직 재정을 투입할 시기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부가 나서서 가계 부채 및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차기 대통령에게 대놓고 반기를 든 셈이다. 그는 대통령 당선인과 생각이 달라 보인다는 질문을 받자 “나는 이제 짐 쌀 사람인데 뭘…”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물론 그의 말은 진담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차기 금융 수장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 시점에, 더구나 부하 직원에게 함구령을 내린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농담치고는 뼈가 있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금융 당국의 두 수장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금융 감독 체계 개편은 1월7일 출범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있다. 개편 과정에서 또 다른 복병인 기획재정부와의 팽팽한 기 싸움도 예상된다.

결국 핵심은 박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금융 정책에 이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반영할 것인가이다. 이런 점에서 ‘TK’ 권혁세 원장이 유리한 고지에 섰다는 시각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박당선인이 ‘탕평 인사’를 내세운 만큼 권원장의 ‘출신 성분’은 되레 약점일 수 있다. 또 새로운 금융감독기구의 그림을 그리고 조직을 만드는 데 1년 이상이 소요되는 만큼, 내년 4월 만료되는 그의 임기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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