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프로 샐러리맨이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1.1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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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교육 전문가 강창희 대표가 말하는 ‘나의 은퇴 계획’

‘미래와 금융 연구포럼’의 강창희 대표(65)는 아주 오랫동안 샐러리맨 생활을 했던 여의도의 대표적인 금융맨이다. 지난해 말까지 미래에셋 부회장으로 일하다가 사표를 내고 ‘독립’했다. “내 꿈은 프로 샐러리맨이었다. 1973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입사해 시작된 샐러리맨 생활 40년 중 20년은 직원으로 일하고 20년은 임원 생활을 했다”는 그는, 최근 10여 년간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와 투자자교육연구소 대표로 수많은 강연을 통해 대중에게도 익숙한 금융 전문가이기도 하다.

베이비붐 세대로 한국 산업 성장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65세 청년’ 강창희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베이비붐 세대의 지혜와 고민을 들어보았다.

그는 직장 생활을 남들보다 10년 더 했다. ‘프로 샐러리맨’의 꿈을 이룬 것이다. 그는 “내 동기는 대부분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서 명퇴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는 그때그때마다 늘 성장하는 분야에 있었다”라고 자신의 ‘관운’을 설명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미래 보는 눈 없지만 늘 배운다는 자세로”

1980년대 대우증권에 다니면서 ‘증시 선진국’ 일본에 유학을 가 닭곱창만 사다 먹는 가난한 삶을 이겨내고 석사 학위를 땄다. 1998년 바이코리아 붐이 일면서 자산운용 시장이 커질 때 현대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를 지내고, 적립식 펀드 붐이 일던 시기인 2004년 미래에셋으로 옮겨 투자교육연구소장을 지내는 등 그의 샐러리맨 시절은 모두 한국 증시의 성장 곡선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취업 초기에는 증시 제도를 연구하다가 일본 연수를 계기로 일본에서 공부하고, 그러다가 국제 비즈니스를 하고, 그 다음엔 자산운용, 이어 투자 교육과 은퇴 교육까지 했다. 이게 다 그 전에 하던 일을 바탕으로 연구하다 보니 이어진 것이다. 일본에서 8년쯤 있었는데 그때 우리보다 20년 선행하고 있는 일본의 고령화 사회를 먼저 경험했다. 그게 은퇴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미래를 보는 눈’을 가졌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대우증권 국제본부장 시절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을 유치해서 우리나라 주식에 투자하게 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운용사가 운용을 잘못해서 고객이 피해를 많이 보았다. 그래서 선진국의 자산운용사 사례를 놓고 공부를 많이 했다. 그랬더니 현대투신운용에서 와서 해보라고 해 갔고, 굿모닝투신운용도 해보고…. 자산운용업을 해보니 성공하려면 투자자를 잘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 분산 투자를 해야 성공하는데 투자자가 단기 전망이나 시황만 보고 투자하려고 했다.

2004년 1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을 만나 미래에셋이 투자 교육 활동을 하면 향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2월에 미래에셋에 투자교육연구소가 생기면서 계속 이쪽에서 활동했다. 2005년에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면서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는 “투자 교육을 하다 보니까 필연적으로 은퇴 교육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투자를 왜 하느냐’라고 물으면 ‘노후 대비’로 한다는 답이 많은데,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돈 벌기 위해 한다’는 답이 많다고 한다. 그는 이런 게 ‘무목적 충동 투자’라고 규정했다. “성공하는 투자는 노후 대비를 위해 장기적으로 하는 투자”라는 것이다.

늘 남을 위한 ‘100세 시대 은퇴 교육’을 해온 그는 자신의 남은 생 35년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을까.

강대표는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는 평생 현역”이라고 강조했다. “폐지를 주워서라도 월 50만원의 현금 유입원을 만들면 2억원의 정기예금을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은퇴 이후를 대비해 무엇을 준비했을까. 그는 최저생활비에 대해서는 “1988년에 가입한 국민연금을 60세까지 넣었다. 또 2005년에 퇴직연금에 들었고 금융사의 개인연금 상품도 가입했다. 이렇게 해서도 모자라면 살고 있는 집으로 주택 모기지를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의 ‘3중 안전장치’를 한 셈이다. 그는 전업주부인 부인도 국민연금에 가입시켰다.

선진국형 은퇴 세대의 길 닦아

100세 시대에 가장 큰 리스크인 건강 문제에 대해 그는 “언제 아플지, 치료비가 얼마나 들지 모르기에 보험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암보험, 종합상해보험 등 3종류의 보험에 들어 있다. 실손보험도 10년 전에 가입했다. 집사람이 직장암, 내가 신장암에 걸렸는데 보험 덕에 치료비를 해결했다. 100세까지 살려면 언제 아플지, 치료비가 얼마나 들지 알 수가 없다.

미국 일본에서 퇴직자를 대상으로 ‘생활비가 줄었나’라는 조사를 해보니 ‘안 줄었다’는 답변이 30~40%가 나왔다. 병원비나 간병비 때문이다. 이는 보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강의에서 ‘노후 자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는 대답을 안 한다. 돈이야 많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준비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100세 시대의 건강 리스크는 보험으로 대비해야 한다. 최저생활비는 연금으로 대응하고, 그보다 더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서는 재테크를 하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는 평생 현역이다. 나는 80까지는 종이를 주워서라도 현금 수입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 그래서 걱정이 없다.”

그는 동년배들에게도 조언했다. “50~60대에게는 크게 할 말이 없다. 이들은 노후 준비라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살 수 밖에 없다. 일본 경제지의 한국 특파원을 4년간 했던 일본 언론인이 한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는 ‘한국인들이 돈을 버는 방법(입구 관리)에는 쌍불을 켜고 열심이다. 그런데 나이가 60이 되어서도 벌어놓은 돈이 모자란다고 하면 그 사람은 부자 될 확률이 없다. 맞춰서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50대 중반까지는 입구 관리가 중요하지만, 퇴직 이후부터는 출구 관리가 중요하다. 또 소일거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한국인이 직면한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로 ‘노부모 봉양’을 들었다. 여든 살이 넘은 부모를 60세 넘은 은퇴자가 봉양하는 문제이다. 1960년대에는 노부모 봉양 기간이 평균 5년이었지만, 100세 시대에는 노부모 봉양 기간이 25~30년이나 된다. 그의 노모도 현재 88세로 서울 인근에서 그의 친척들과 확장된 가족 개념으로 살고 있다.

그는 요즘 40~60대 가장들이 교육비나 결혼비로 재산을 탕진하는 것에 대해 “본인의 노후도 망치고 자식의 미래도 망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자식 세대를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 잘하고 좋은 데 다닌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다. 잘난 놈이 더 걱정이다. 내가 아들에게 ‘돈 아껴 써라’ 그러면 아들이 ‘나는 사장 아들이잖아’라며 웃는다. 부모로서는 그런 것이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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