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깜짝 방북으로 면죄부 얻은 구글
  • 김원식 I 미국 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1.1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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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슈미트 일행 평양행에 깔린 복잡한 이해관계

1월3일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북한을 방문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슈미트 회장이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를 방문 단장으로 한 방북단의 일원으로 방북한다는 내용이었다. 1월7일 이들은 평양 순안공항에 모습을 드러냈고 2박 3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쳤다.

이들의 북한 방문을 단독 보도한 AP통신의 첫 방북 기사에서는 방문단과 친숙한 두 명의 소식통이 익명을 요구하며 이들의 방북 소식을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유는 “이 방문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세계적 통신사를 활용한 일종의 언론 플레이였다. AP통신을 통해 이들의 방문은 세계 주요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북한 도착 때부터 미국으로 출국할 때까지 세세하게 주요 기사로 다루어졌다. 출발 전부터 미국 국무부는 이들의 방북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들의 방북이 북한을 포함해 동맹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이유에서다. 국무부는 “북한을 압박해야 하는 시점에 이들의 방북은 역효과만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평양의 인민대학습당을 찾았다. 그의 뒤로 김일성 동상이 보인다. 슈미트 회장의 이번 방북은 구글의 반독점 위반과 관련이 깊다. ⓒ AP 연합
“구글의 반독점 위반, 혐의 없다”

이미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리처드슨은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에릭 슈미트가 포함된 것은 의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북한 방문이 보도된 다음 날, 미국 공정거래위원회(FTC)는 수년 동안 조사해온 ‘구글의 반독점 문제’에 관해서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글 회장의 방북 발표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FTC의 발표는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 시기가 너무 절묘했다.

구글은 이번 FTC의 반독점 문제 해결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었다. 미국의 비영리 책임정치센터(CRP)는 이번 반독점 조사와 관련해 “구글이 2012년 미국에서 로비를 위해 다섯 번째로 돈을 많이 쓴 기업이 되었고, 반독점 조사 등과 관련해 지출한 비용만 1천4백만 달러가 넘었다”고 폭로했다.

미국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은 구글은 또 다른 중요한 시장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반독점 위반에 관한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구글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미국보다 훨씬 높다. 유럽 검색엔진 시장의 90%를 넘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EU 집행위원회가 FTC보다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EU에서도 ‘혐의 없음’을 받기 위해 구글이 선택한 방법 중 하나는 이미지 개선 작업이다. 구글이 ‘독점을 통해 이익만을 탐하는 기업이 아니다’라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시점이었다.

제프리 페퍼 미국 스탠퍼드 대학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에릭 슈미트는 이번에 미국의 반독점 혐의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정부와 관련된 독특한 일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회사가 국내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을 때 CEO들이 해외와의 교류를 추진해 이를 모면하려는 것은 전형적 해결 방법이다. 이번 슈미트의 방북도 구글 입장에서는 굉장히 잘된 일일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번 방북단의 단장인 빌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북한을 방문하기 전 미국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에릭 슈미트는 내가 초청해 개인 자격으로 함께 가는 것이며, 구글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라고 밝혔다. 반면 슈미트는 북한의 대학교 전산실 등 인터넷 환경을 모두 둘러보며 “북한이 인터넷을 더욱 개방해 주민 누구나 접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촉구하면서 구글 회장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빌 리처드슨 일행의 방북이 언론을 통해 먼저 보도되어 나오자 미국 국무부는 즉각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 “경솔하다”라며 비난 브리핑을 연속해 내보냈다. 방북 후 평가를 묻는 자리에서도 “부적절했다”라며 이들의 방북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미국 국무부의 입장은 이렇게 정리된다. ‘개인적인 차원으로 가는 것이다’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의 신병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미국 정부의 메시지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 심지어 ‘이번 방북이 미국 정부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방북이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방북단을 이끄는 리처드슨 전 주지사의 이력이다. 그는 최소 6번 이상 북한을 방문했고, 그중 두 번은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찾았다.

‘제재’와 ‘협상’ 사이 딜레마 빠진 미국 국무부

북한이 지난해 12월 로켓 발사를 감행하자 미국은 이를 강하게 비난했고 유엔 안보리 등을 통해 ‘대북 제재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시기에 북한이 간첩 활동을 해서 체포했다고 주장하는 ‘배준호 억류 문제’가 생겼다. 그가 정확히 어떠한 범죄나 잘못으로 억류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AP통신은 ‘일종의 적대 행위(hostile)로 체포되었으며, 재판이 진행된다면 최소 10년형 징역 이상에 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번 억류가 개인적인 차원의 범죄 행위 문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미국인이 북한에서 억류될 경우 신속하게 특사를 파견해 문제를 해결했다. 2009년 체포된 미국의 두 여기자 석방을 위해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특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이번 배씨의 억류 문제도 개인적인 범죄가 아닌 이상 미국 정부가 시급히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강력한 대북 제재를 천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특사 파견은 고려하는 것조차 어렵다. 제재 대상과 테이블에 앉아 협상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 셈이다.

미국 국무부가 이번 방북단과 무관하다는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는 상황은 여러 차례 연출되었다. 북한을 방문한 후 리처드슨은 인터뷰에서 “리용호 외무성 부상 등을 만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중지를 촉구했으며 억류된 미국인에 대해 공평하고 인도적으로 대해 달라고 요구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이번 방북 목적 중 하나가 미국 정부의 의사를 전달하고 억류된 미국인의 문제를 협의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리처드슨-슈미트 회장 일행의 방북은 ‘반독점 무혐의 판결과 이미지 전환이 필요한 거대 기업 구글’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서야 하지만 체면을 차려야 하는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가 묘하게 맞아떨어진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의 이번 방북이 씁쓰레한 뒷맛을 남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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