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에도 숨 쉬는 구멍이 있다
  • 김용택 | 시인 ()
  • 승인 2013.01.1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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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정말 춥다. 추워도 너무 춥다. 아침에 밖으로 나오면 머리카락 속을 파고드는 추위가 띵하다. 정신이 번쩍! 핑 돌 정도이다. 이렇게 강추위가 오니 앞 강이 꽝꽝 얼었다. 얼다 못해 얼음이 쩍쩍 금이 가면서 산천이 쩌렁쩌렁 울렸다. 언 강물이 금 가는 소리는 경쾌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강이 하얗게 얼어 있을 때도 있고, 맑게 얼어 있을 때도 있었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면 강바닥이 훤히 보이게 얼음이 얼었다. 강에 나가 보면 하얗게 금이 간 얼음 속으로 물고기 떼가 까맣게 몰려다녔다. 겨울 물고기는 먹을 것이 없어서 느릿느릿 헤엄쳐 다녔다. 아니, 헤엄을 친다기보다 느리게 움직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얼음에 등을 대고 느리게 움직이는 커다란 피라미 떼는 구름 그림자 같았다. 그렇게 고기들이 얼음 속에서 떼로 움직이면 우리들은 공책만 한 돌멩이를 가져다가 느리게 움직이는 고기 떼를 향해 힘껏 내려쳤다. 얼음이 깨지면서 고기가 얼음 속에서 배를 하얗게 뒤집고 죽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얼음을 깨고 고기를 건져냈다. 그렇게 여기저기 돌멩이를 내려쳐 얼음을 깨고 잡은 고기들을 강가 커다란 바위 뒤에서 구워 먹었다.

몇날 며칠 날씨가 계속 추우면 맑게 언 얼음은 두꺼워지면서 하얀색이 되어갔다. 그래도 고기 떼는 얼음에 등을 대고 느리게 움직였다.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우리의 물고기 사냥은 쉬지 않았다.

학교 가는 길에 운동장만 한 호수가 있었다. 물은 맑고 깨끗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 호수의 깊이를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절대 그 호수에는 발끝도 담그지 마라. 그 호수에는 용이 못 된 이무기가 살고 있고, 그 물의 깊이는 명주실 한 꾸리가 다 들어간다.” 우린 명주실 한 꾸리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했지만 절대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도, 또 듣지도 않았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나는 참으로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며 살까?

아무튼 그 호수에는 엄청나게 많은 고기와 조개가 살았다. 그 호수에도 얼음이 얼었다. 우리들은 그 호수의 살얼음을 좋아했다. 잔물결 그대로 잔잔하게 언 살얼음 위로 우리들은 돌멩이를 던지며 놀았다. 물결이 언 살얼음 위로 밤톨보다 작은 돌멩이들을 던지면, 잔주름 위로 굴러가는 돌멩이 소리는 참으로 경쾌하고 신비로웠다. ‘챙 챙 챙’ 소리를 내며 깨지던 살얼음의 그 경쾌한 음악 소리는 자연만이 만들어내는 최고 최상의 음악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며 온몸을 흔들어댄다. 그 아름다운 전율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동네 앞 강이 꽝꽝 얼었다. 꽝꽝 언 강에 가서 얼음 위를 미끄러져가다 보면 놀랍게도 얼음이 얇게 얼어 있는 곳이 있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도대체 그곳이 어떤 곳이기에 그렇게 얇은 얼음이 언다는 말인가. 강물의 모든 곳이 땅처럼 든든했지만, 강물의 그 어딘가에는 흐르는 물이 보이도록 살얼음이 낀 곳이 반드시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꽝꽝 언 강물로 달려가면 어른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숨구멍을 조심해라.” 얼음에도 숨을 쉴 곳이 있다.

자연은 위대하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숨 쉴 곳이 어디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자. 우리들이 다 얼지 않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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