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둔갑한 투캅스 ‘살인의 추억’
  • 유호 인턴기자 ()
  • 승인 2013.01.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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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금고 털이 사건’ 통해 두 경찰 포함된 3인조의 지난 10년 행각 줄줄이 드러나

박 아무개 전 경위(46·현재 파면되어 구속 상태)는 1992년 경찰에 입문한 이후 전남 여수경찰서에서 줄곧 근무했다. 이 지역에서 여러 영세 사업을 해오던 박 아무개씨(45)와는 고교 선후배 사이였다. 박 전 경위는 2006년 후배 박씨를 여수 시내 한 폐기물업체 회사 대표의 운전기사로 취업하도록 알선해주기도 하는 등 남다른 친분 관계를 유지해왔다. 박씨에게는 여수 지역 내 경찰 지인이 한 명 더 있었다. 김 아무개 전 경사(45·현재 파면되어 구속 상태)였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1998년부터 친분을 쌓아왔고, 박씨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김 전 경사가 소소한 도움을 주었다. 김 전 경사와 박 전 경위는 2002년부터 여수경찰서 형사과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동료 선후배로 더욱 돈독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같은 나이 또래의 세 사람은 이렇게 서로 끈끈한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들은 만나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다.

이 세 사람이 지금 여수 지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박씨가 벌인 범죄 행각에 김 전 경사가 공모자로 드러나고, 박 전 경위가 관련된 범죄에 박씨가 개입된 정황이 새롭게 밝혀지는 등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최근 10년 동안 여수 지역 내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미제 사건들이 마치 고구마 줄기가 엮여 나오듯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사건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조차 하지 못할 상황 속에서 지금 여수는 신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또래 세 명, 오래전부터 친분 관계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8일 여수 월하동에 위치한 한 우체국에서 5천2백여 만원이 털리면서 일어났다. 주범인 박씨는 우체국 금고가 식당 벽면과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범행을 쉽게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일반인인 박씨가 보안을 뚫고 금고의 위치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수상히 여겼다.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이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수사 끝에 밝혀진 공모자는 놀랍게도 현직 경찰관 신분이었던 김 전 경사였다. 그는 지난해 11월29일 우체국의 방범 진단을 가장해 자신의 휴대전화로 우체국 금고 위치를 촬영했고, 이 자료를 박씨에게 전달했다. 박씨가 12월8일 새벽, 식당 안에서 벽을 뚫고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김 전 경사는 밖에서 망을 봐주기도 했다.

이번 우체국 금고 털이 사건 수사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유사한 수법의 지난 미제 사건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2005년 6월22일 미평동의 한 은행 현금지급기에서 8백79만원이 털렸다. 당시 경찰은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를 현장에서 채취했으나, 이에 맞는 범인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붙잡힌 김 전 경사의 DNA가 당시 사건 현장의 DNA와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8년 2월 학동 금은방 금고에서 귀금속과 현금 6천5백여 만원이 도난당한 사건 역시 이들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범행은 단순 절도에 그치지 않았다. 미궁에 빠질 뻔했던 한 여성의 실종 사건에도 이들의 연관성이 거론되고 있다. 성인오락실 바지사장이었던 황 아무개씨(45·여)는 관할 담당이었던 김 전 경사와 유착 상태를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황씨에게는 게임산업진흥법 위반 혐의로 지명수배가 내려진 상태였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김 전 경사가 황씨에게 뇌물을 받은 의혹이 포착되었다. 위기감을 느낀 김 전 경사는 지난해 3월 황씨와 은밀히 접촉했고, 이후 황씨는 종적을 감추었다. 경찰은 사건 조사 과정에서 김 전 경사가 공범자 박씨 등을 시켜 지난해 3월 황씨를 살해했다는 참고인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련의 경찰 수사 과정에서 나온 진술과 정황을 종합해볼 때, 황씨 실종 사건에 김 전 경사와 박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폐기물처리업체 횡령 사건 주목

지난 10여 년간 여수 지역 내 미제 사건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김 전 경사와 박씨를 뛰어넘는 각종 악질 범죄의 중심에는 이들 두 사람의 선배이자 직장 동료로 친분을 유지해온 박 전 경위가 있다. 이로써 ‘여수 미제 범죄 사건 시리즈’는 이들 세 인물과의 연관성으로 확대된다.

여수 지역 내 한 폐기물처리업체의 김 아무개 대표(51·여)가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지난 2007년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김대표의 운전기사는 박 전 경위의 소개로 2006년부터 일한 박씨였다. 김대표는 박 전 경위를 의심했고, 그를 향해 횡령 공모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여수경찰서가 박 전 경위와 이 업체의 경리 직원 ㅂ씨(48·여) 사이에 수십억 원대의 금전 거래가 있었다는 점을 새롭게 확인하면서 이 사건 역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ㅂ씨의 애인이 거액의 생명보험을 ㅂ씨 명의로 가입한 뒤, 2006년 9월 돌연 숨진 채 발견된 사실도 드러났다. 이때 받은 보험금 2억원을 박 전 경위와 ㅂ씨가 나누어 가졌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박 전 경위를 둘러싸고 여교사 성폭행 및 갈취, 사채업자를 통한 부당 이득 취득 등의 사건들이 속속 드러났고, 추가 의혹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박 전 경위의 범죄 행각 뒤에는 어김없이 박씨가 있었다. 박씨는 자신이 범죄자라는 약점을 잡힌 탓에 박 전 경위의 범죄 가담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온갖 험한 일들을 대신 해왔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경위와 김 전 경사 그리고 박씨를 둘러싼 사건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진실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복마전처럼 얽힌 사건들의 연결 고리에서 핵심 열쇠는 폐기물처리업체의 공금 횡령 사건과 실종된 황씨 사건에 들어 있다. 폐기물처리업체 경리 여직원 ㅂ씨와 박 전 경위가 차명 계좌 등을 통해 수십억 원의 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파장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ㅂ씨의 거래 내역을 정밀 조사하기 위한 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이 최근 세 차례나 기각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두고 지역 내에서는 경찰에 이어 검찰까지 이번 복마전에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또한 성인오락실 바지사장 황씨 역시 지난해 3월 실종된 이후 현재까지 10개월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여서 수사 관계자들은 타살로 추정하고 있는 상태이다. 만약 수사기관이 황씨 실종에 연루된 김 전 경사와 금고 털이범 박씨의 관련성을 입증하게 된다면, 그리고 ㅂ씨 애인의 석연찮은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진다면, 이 세 사람이 연루된 범죄 행각이 돈뿐만 아니라 살인 등 강력 범죄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지금 여수는 그야말로 폭풍 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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