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국의 숨 막히는 빚잔치 1초에 5,400만원 늘어난다
  • 김원식 I 미국 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1.2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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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절벽 피했지만 이내 ‘천장(ceiling)’과 만나

“미국에 대한 신용과 강한 믿음은 협상 대상(bargaining chip)이 아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월15일, 1기 임기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공화당을 향해 강공 발언을 날렸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미국이 직면한 국가 부채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되리라 전망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절벽(cliff)은 일단 피하자.’ 이 명제 앞에 미국 의회는 지난 연말을 갓 넘긴 시점에 겨우 재정 절벽(fiscal cliff)을 회피할 방안을 상·하원 모두에서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절벽은 피했지만 오바마를 포함한 누구의 얼굴에서도 웃음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번 타협안은 미봉책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자 증세안’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반대하는 바람에 일부 소득세율을 인상하는 선에서 그쳤다. 10년 동안 지출 2조4천억 달러가량을 줄이는 법안은 건드리지 못했다. 지출 감축 법안은 재정 적자를 줄이는 데 핵심 조처이다. 또, 당초 지난해 말까지 삭감 내역을 지정하지 않으면 1월2일부터 전체 예산에서 1천100억 달러를 자동 삭감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사안은 두 달 후 다시 합의하는 것으로 시행을 유예했다.

이 사이 미국이 빌릴 수 있는 부채 한도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을 기준으로 국가 채무는 법정 한도인 16조3천9백40억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재무부가 특별 조치를 취한 덕에 두 달가량 시간을 벌었다. 두 달 안에 미국 의회가 부채 한도를 늘리지 못한다면 미국은 지급 불능(default) 사태에 빠지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선 국가 채무 한도를 신속하게 상향 조정하는 동시에 연방정부 예산 자동 삭감(sequester) 등에 따른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누라엘 루비니 뉴욕 대학 교수도 “장기적인 전망은 아직도 어둡다. 미국의 현실은 광범위한 재정 악몽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2개월 안에 재정 협상에 따른 논란이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부채 두 배로 늘린 테러와의 전쟁

“우리 국가 안보의 가장 심각한 위협은 빚이다.” 경제학자가 내뱉을 만한 말을 꺼낸 사람은 2년 전 미국 합참의장이던 마이크 물런 제독이었다. 그는 미국이 알카에다 제거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실제 가장 큰 적은 바로 미국 내부에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경제학자가 아닌 미국 장군이 왜 이런 말을 했을까? 2000년 미국의 국가 부채는 약 5조6천억 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전개된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에 막대한 달러를 쏟아부었다. 부시 정권이 끝나고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 뒤 집계된 2009년 부채는 10조6천억 달러로, 5조 달러 이상이 급증했다. 때마침 거듭된 세계 경제의 침체는 오바마 취임 이후에도 부채를 손쓸 틈 없이 늘어나게 했다. 현재 16조 달러가 넘는 미국의 국가 부채는 1초에 우리 돈으로 5천4백만원씩 증가하고 있다. 미국 국민 1인당 약 6천1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2013년 새해에 들어서자 미국의 국가 부채와 관련한 비관론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비관론이 확산되자 민주당 강경파는 “국가 부채 문제는 공화당과 합의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관계자들은 수정 헌법 14조의 규정을 근거로 의회의 승인 없이도 얼마든지 대통령이 채무 한도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더해 ‘화폐금융법’에는 금·은·동 이외의 백금 동전에 대한 발행 한도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며 1조 달러(1천60조원)짜리 백금 동전을 발행해 채무 한도를 해결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곧 몰락할 만큼 상황이 심각할까? 답은 ‘그렇지만은 않다’이다. 미국 경제의 몰락은 세계 경제의 몰락을 의미하기에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더 현실적인 이유는 미국 국가 부채의 가장 큰 채권자가 바로 미국이라는 점이다. 16조 달러가 넘어가는 미국 총 부채에서 6조 달러가 넘는 금액의 주채권자는 미국 연방은행(Federal Reserve)과 사회보장기금 등 미국 자산이다. 즉, 미래를 대비해 축적한 연금 등에서 돈을 빌려 쓰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중국은 1조 달러가 넘는 막대한 돈을 미국 채권을 사들이는 데 사용했다. 국제 관계에서 치열한 이해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지만, 중국 입장에서 미국은 채무국이며 동시에 가장 큰 시장이다. 미국의 몰락은 자신들의 몰락을 의미하기에 ‘미국 위기론’이 대두하는 와중에도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국제적인 사태에 더는 개입 못 할 상황”

미국의 위기가 세계 경제의 위기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지만 위상의 변화는 어쩔 수 없다. ‘세계 경찰’을 자부하던 위상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발리 나사르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는 “이제 미국의 개입을 촉구하는 국제적인 사태가 벌어진다 하더라도 미국이 대처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현실적인 핑계가 먹힐 만큼 미국의 파워가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선에 성공해 첫 번째 임기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오바마 입장에서는 더는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이미 ‘의회와의 타협은 없다’고 말한 그는 “부채 상한선이 합의되지 않으면 세계 경제에 재앙이 올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강공책을 펼 뜻을 밝힌 상태이다. 이런 오바마의 강경책에 대해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형국이다.

점점 증가하는 국가 부채는 미국으로 하여금 제자리걸음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국방비 등에서 대폭적인 예산 삭감을 시도하면 경기 침체 위험성을 염려해야 하고, 메디케어 등 국가의 복지 비용을 줄이자니 서민의 반발을 사게 된다. 그렇다고 증세를 시도하면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친다. 한 발짝만 내딛으려 해도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은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세계 최강의 국가에서 국내 경제 문제에 발목이 잡혀가는 미국, 2013년 초에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의회가 어떤 합의나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뉴욕 거리에 걸린 미국 부채 시계에 가득 찬 숫자들. 미국 부채를 환산하면 미국 국민 1인당 빚이 약 6천만원에 달한다. ⓒ E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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