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감, ‘무서운 변종’ 아니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1.2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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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으로 예방, 항바이러스제로 치료 거뜬…대유행 가능성 희박

미국에서 돌고 있는 독감 바이러스가 한국에 상륙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1월15일 “독감 바이러스 58건을 검사한 결과 19건이 H3N2v인 것으로 나왔다”라고 밝혔다. H3N2v는 현재 미국에서 확산된 독감 바이러스 유형이다. 미국 47개 주에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면서 ‘살인 독감’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국민들은 2009년에 유행한 독감 바이러스를 떠올리며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독감 예방 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은 주부 박이림씨는 “과거 신종플루 생각이 나서 무섭다. 게다가 변종 바이러스라는 소문도 돌고 있어서 불안하다. 특히 아이들이 독감에 걸릴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에 있는 한 병원이 최근 대유행(팬데믹)설과 변종 바이러스설을 퍼뜨렸다. 그러나 이번 독감은 2009년 때처럼 세계적으로 대유행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환종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바이러스는 매년 변하는데, 크게 변하면 문제이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에서 발생한 독감은 작게 변한 바이러스이므로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번 미국 독감 바이러스도 일반 독감 정도이므로 대유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질병관리본부는 1월17일 독감 주의보를 발령했다. 외래 환자 1천명당 독감 의심 환자가 4.8명으로, 독감 유행 기준인 1천명당 4명을 넘어선 데 따른 것이다. 국내에서 돌고 있는 바이러스는 대부분 H1N1으로 미국에서 발생한 것과 다른 유형이다. 이 바이러스는 2009년 신종플루로 불렸지만 지금은 일반 인플루엔자로 분류되어 있다.

변종 바이러스는,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바이러스를 말한다. 이 바이러스가 항바이러스제에 내성을 띠고 있으면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에서 퍼진 독감은 이미 세계보건기구(WHO)가 예견했던 바이러스이다.

또, 이 인플루엔자 유형은 2011년 국내에서 유행했다. 한마디로 미국과 한국에서 생긴 독감 바이러스 두 유형은 변종이 아니라 일반 계절성 인플루엔자인 것이다. 즉, 현재의 백신으로 두 독감의 예방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WHO는 지난해 세계 각국에 백신 준비를 권고했으며, 한국도 이미 백신을 생산해서 2천3백 도즈(1회 접종량)를 확보했고 지난해 10월부터 접종했다.

이번 독감을 예방하는 첫걸음은 손 씻기 등 개인 위생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백신 접종하고 사람 많은 곳은 피하라

인플루엔자는 통상 4월까지 유행하는 만큼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지금이라도 예방 주사를 맞으면 독감을 예방할 수 있다. 고위험군(65세 이상 노인, 소아, 임신부 등)은 약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백신 접종을 미루거나 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감염되면 폐렴 등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큰 만큼 반드시 백신을 맞아야 한다.

일반인이 예방 접종을 할 때도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몸 상태이다. 37.8℃ 이상의 발열과 인후통·침·콧물·코막힘 등의 증상이 있는 경우, 최근 3개월 이내에 혈청 주사를 맞았거나 수혈을 받은 경우, 과거 예방 접종을 하고 알레르기 반응이나 과민 반응 또는 경련이 있었다면 예방 접종을 보류한다. 다른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의사와 상담해 적당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백신을 접종한 후 15~20분 정도 병원에 머무르며 이상 반응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만약 어지럼증과 호흡 곤란, 전신의 발진 또는 부종, 의식 변화 등이 나타나면 신속히 의료진에게 적절한 조치를 받는다. 이 밖에도 접종 당일에는 목욕을 삼가고 이튿날까지는 과격한 운동도 피한다. 접종 후 근육통이나 미열이 있으면 해열제를 먹고 갑작스러운 고열, 호흡 곤란, 경련, 의식 변화 등이 있을 때는 지체 없이 응급센터를 찾는다.

예방 접종을 했더라도 독감이 100% 예방되는 것은 아니므로 개인적인 위생 수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 독감에 걸린 환자의 침·콧물·물건을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는 만큼 인파가 몰리는 곳은 삼간다. 또 외출 후에는 손발을 씻고 양치질을 해서 감염을 막는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는 손수건이나 휴지 등으로 입을 가리고, 발열과 호흡기 증상(기침, 목 아픔, 콧물 등)이 있으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편이 좋다.

1월9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학생들이 약국 앞에 세워진 ‘지금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세요’라고 적힌 표지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 EPA 연합
미국 감염자·사망자 수, 예년 수준

이번 독감의 증상은 열, 기침, 인후통, 콧물, 근육통, 몸살, 두통 피로감 등으로 계절성 독감과 비슷하다. 이런 증상이 생기면 전문의의 진단과 처방을 받아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 등)를 복용하면 된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6백건의 실험을 통해 이번 바이러스에 내성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치료제가 효과가 있다는 의미이다. 독감에 걸렸더라도 치료제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으므로 당황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독감이 빠른 시간에 확산된 배경은 무엇일까? 전병률 질병관리본부장은 “미국이 지난해 상대적으로 독감 발생이 많지 않아 올해 예방 접종 준비 등 대비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의료 빈곤층이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한 이유도 있다.

또 다른 원인은 이번 독감이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주로 퍼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미국에서 예년보다 독감 바이러스가 빨리 돌기 시작했다. 또 보스턴·뉴욕과 같은 인구 밀집 지역에서 발생해 많은 사람이 동시에 많이 걸린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가장 크게 우려한 점은 사망자가 100명이 넘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신종플루가 대유행했던 2009년을 제외하고 10년 동안 미국에서 발생한 독감 유행 시기와 비교할 때 감염자나 사망자 수가 현저하게 많은 것은 아니다. 어린이 사망자가 약 20명으로 지난 독감 유행 시즌(23명)과 비교해도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자국 전역의 80% 정도가 독감 바이러스에 전염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독감 바이러스는 한 나라 전역을 거의 뒤덮는 특징이 있으므로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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