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마저 서러운 쪽방촌 사람들
  • 우연 인턴기자 ()
  • 승인 2013.01.2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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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찾지 않는 ‘나 홀로 사망’의 쓸쓸한 현장

외로운 인생을 살다가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고독사’라고 한다. 시신은 월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에 의해 발견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주변 사람과의 접촉이 없는 경우에는 수년이 지난 후에 발견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외로운 삶을 살다 간 고인의 시신은 어떻게 처리될까.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고인이 가는 길도 너무나 고독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자리한 일명 ‘동자동 쪽방촌’에서는 유독 고독사가 많다. 1천여 가구 이상이 사는 이곳은 대부분 1960년대에 지어진 낡은 건물, 낙후된 시설이라 보조금 없이 월세가 싼 방을 찾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1월22일 오후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거주지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 ⓒ 시사저널 임준선
만성 질환을 비롯해 건강이 좋지 않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많고, 가족과 단절되었거나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고립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조승화 동자동 사랑방 사무국장은 “한 달에 한 건 정도 고독사가 있다. 옆집에서 돌아가셔도 주민들은 죽음에 익숙해져 있어서 놀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6일 동자동의 한 쪽방에서 70대 김 아무개씨가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김씨는 동자동 쪽방촌에 10년 넘게 거주했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어 매달 48만원을 받아 생활했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김씨에 대해 물었더니 “조용하고 관계망이 좁은 사람이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이름도 죽은 후에 처음 알았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았던 김씨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복지관 도우미였다. 복지관 도우미는 “(김씨가) 평소에 감기 기운이 있다면서 항상 누워 있었고 밥을 지어 먹고 환기를 안 시켜 쪽방에는 늘 곰팡이가 가득했다”라고 전했다.

1월24일 오후, 지난해 12월 사망한 김 아무개씨의 쪽방촌 방에는 주인 없는 유품이 아직도 남아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노인 돌보미 사업의 일환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씩 김씨를 찾았다는 복지관 도우미는 숨져 있던 김씨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이다. 12월6일 오후 6시 김씨의 집을 방문한 복지관 도우미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바로 119에 연락했다. 119 구급대는 김씨가 사망한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연락했다. 이후 용산경찰서 형사과는 김씨에게 연고자가 있는지 한 달간 조사했다. 보통은 경찰이 연고자를 찾아 시신을 수습해 가도록 하지만 연고자가 없으면 관할 구청에서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한다.

김씨는 호적이 깨끗하고 연고가 한 사람도 없었다. 김씨의 시신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연고자를 찾느라 한 달여 동안 인근 순천향대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올해 1월19일 연고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김씨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연고도 없을뿐더러 주민들과 의사소통이 적었던 편이라 김씨를 알았던 사람 가운데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복지관 도우미 그리고 옆집 주민뿐이었다. 복지관 도우미는 “혹시나 빈소에 동네 주민이 찾아오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두 사람이 전부였다”라며 씁쓸해했다.

그렇게 김씨의 장례식은 이날 아침 7시에 시작해 12시쯤에 끝났고, 시신은 곧바로 화장되어 서울 시립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1월24일 김씨가 살던 방을 찾았더니 아직도 그가 사용하던 물건이 남아 있었다.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은 2012년 12월에 멈춰 있었다. 좁은 방 안에는 이불이 펼쳐져 있었고 밥통과 그릇, 옷가지 등이 널려 있었다. 주인은 죽었지만 방 안의 풍경을 보면 영락없이 누군가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방 안을 돌아보다가 한 곳에서 시선이 멈춰졌다. 한 구석에 오랫동안 먹지 않아 썩은 감이 눈에 띄었다. 김씨가 생전에 먹으려고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순간 가슴이 찡했다. 그제야 방 주인이던 김씨의 죽음이 실감되었다.

집주인은 “쪽방이 열악하고 주민들도 밥을 먹지 않고 술만 먹어서 많이 돌아가신다. 유품은 연고도 없고 찾아가는 사람도 없어서 버리거나 쓸 만한 것은 나눠 가진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방은 경찰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보존된다. 용산구청은 혹시나 나타날지 모르는 김씨의 연고자를 찾기 위해 ‘무연고 사망자 공고’를 구청에 한 달간 게시하고 있다.

화장 처리가 되어버린 김씨의 유골은 10년간 연고자를 기다리며 추모의 집에 안치된다. 살아서도 외로웠던 김씨는 죽어서도 찾아오는 사람 한 명 없어 고독하기는 마찬가지다.

장례 비용 때문에 ‘시신 포기 각서’ 쓰는 경우도 

지난해 12월3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한 고시원 방에서 50대 황 아무개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황씨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고시원을 운영하는 최 아무개씨(54)였다. 최씨는 밀린 방세를 받으러 갔다가 황씨가 숨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119에 신고했다. 가스총을 파는 일을 했던 황씨는 당뇨병을 앓아 발을 절뚝거렸고 몸이 아파서 3개월째 일을 못 나간 상태였다. 마르고 아픈 몸이었지만 냉면 그릇에 밥을 먹을 만큼 식사량이 많았다. 그는 “곧 일을 나가 밀린 월세를 내겠다”고 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119에서 황씨의 시신을 수습해 갔고 동대문경찰서에서 황씨의 가족·친인척 등 연고를 조사해 친형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고시원 주인인 최씨도 그에게 형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생전에 최씨는 황씨에게 형과 함께 살라고 설득했지만, 황씨는 “형 또한 나처럼 어려운 처지라 그럴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공무원인 황씨의 형은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 동생의 장례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며 시신 포기 각서를 썼다. 

황씨의 시신은 그렇게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한 코리아병원에 보관되어 있다가 올해 1월9일 화장되었다.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무연고 추모의 집에 안치된 상태이다. 

1월23일 황씨가 살았던 고시원 방을 찾아갔을 때 이미 황씨의 유품은 고시원 주인인 최씨가 처리한 뒤였다. 최씨는 “홀로 49제를 치르고 1월20일 유품을 모아 버렸더니 그 다음 날 쓰레기차가 수거해 가 바로 없어졌다”라고 전했다. 그는 또 “형에게 유품을 가져가라고 했더니 나에게 버리라고 했다. 가수가 꿈이었는지 방 안에 상패며 노래 테이프, 반짝반짝 빛나는 옷도 많았다”라며 씁쓸해했다. 황씨는 그렇게 유언도 유품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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