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의원 의사들에게 뒷돈 줬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1.2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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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제일제당, 약 처방 대가 2년 동안 2백여 명에 45억원 건네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CJ제일제당 제약사업본부(CJ제약)가 의사들에게 리베이트(사례비)를 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상황에 대한 한 제약사 직원의 말이다. 리베이트는 자사의 의약품을 처방해주는 대가로 제약사가 병·의원 의사들에게 주는 뒷돈이다. 또, 제약사 직원은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현장에 있으니까 어느 제약사가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주는지 알고 있다. 리베이트를 주는 제약사 중에 그 제약사(CJ제약)는 몇 년 동안 항상 끼어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CJ제약은 거의 매년 리베이트 문제에 휩싸였다. 2010년 1월 이 업체는 리베이트 문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2011년 리베이트로 20억원을 제공한 혐의가 적발되어 공정위의 압수수색까지 받았다. 병·의원뿐만 아니라 보건소에도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지난해 초 충남 지역의 한 보건소장에게 신용카드를 주고 사용하도록 했다. 그 의사가 신용카드를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적립한 포인트를 자신의 카드로 옮긴 것이 경찰 수사망에 걸렸다. 경찰은 당시 이 업체 영업직원 수백 명의 카드 발급과 사용명세 등을 분석했다. 당시 CJ제약측은 “영업 실적에 욕심을 낸 일부 사원들의 행위이다”라며 회사 차원의 리베이트 제공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를 진행할수록 리베이트의 범위와 규모가 늘어났다. 최근까지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밝혀낸 리베이트 액수만 45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드러난 제약업계 1위 동아제약의 리베이트 규모(48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액수이다. CJ제약은 2010년부터 2012년 2월까지 이 돈을 2백10여 명의 의사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인당 많게는 수천만 원의 리베이트를 준 혐의로 이 업체는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 업체는 자사의 법인카드를 의사들에게 주고 쓰게 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현재 수사하고 있으며, 결과가 나오면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
강석희 제약사업부문장 때 리베이트 늘어

경찰은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을 선별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1천만원 이상의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 수십 명을 우선 수사 대상으로 분류해 조사하고 있다. CJ제약의 임직원 10여 명도 소환 조사했다. 이 중에는 CJ제일제당의 제약 사업을 담당해온 강석희 전 CJ제일제당 제약사업부문장(사장급)도 있다. 강 전 부문장은 2010년부터 CJ제일제당 제약 사업을 맡아오다 지난해 11월 엔터테인먼트업체인 CJ E&M 사장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 전 부문장의 제약사업부문장 재직 기간은 CJ제약의 리베이트 문제가 불거진 시기와 일치한다. 이 때문에 강 전 부문장이 자리를 옮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업계에 떠돌고 있다. 1988년 제일제당 영업부에 입사한 강 전 부문장은 2000년 이후 CJ 제약마케팅팀 상무, CJ미디어 영업본부장 등을 거친 영업통이다.

1984년 설립한 CJ제일제당 제약사업본부는 종합감기약(화이투벤)과 숙취 해소 음료(컨디션)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업체이다. 의료계에서는 수액과 복제약 등 처방 의약품에 강세를 보이는 회사로 인식되어 있다. 2000년 들어 외형적인 규모를 키웠다. 미국에 사무실을 내고, 미얀마 등지에 수출 길을 열었고, 2004년에는 한일약품을 인수했다. 항생제, 빈혈 치료제, 조루증 치료제, 고지혈증 치료제 등을 선보이며 연 6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리베이트를 준 것이 100건이라면 98건은 쌍벌제가 시행된 2010년 11월 이전의 일이다. 리베이트는 주로 개원의들에게 주었다”라고 밝혔다. 쌍벌제는 리베이트를 주는 사람과 받은 사람을 모두 처벌하기 위한 보건법이다.

입원 환자들에게 사용하는 수액은 CJ제약의 대표적인 의약품이다. ⓒ 시사저널 자료사진
“리베이트는 국민에게 피해 주는 행위”

동네 병·의원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경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환자들도 대학병원을 선호하기 때문에 동네 병·의원들의 돈벌이는 예전만 못하다. 비싼 임대료에 고가의 장비를 갖춘 병·의원들은 수익을 보전할 방법, 즉 리베이트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몇 년 전 한 개원의는 제약사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형사 소송까지 당했고, 보건복지부는 그를 상대로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위한 행정소송까지 냈다. 그는 제약사로부터 8차례에 걸쳐 4백여 만원의 카드 상품권(기프트카드)을 받았다.

그는 의사면허 자격정지 취소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은 판결문에서 ‘공공 병원 과장일 때부터 개인병원을 차린 이후까지 그 제약사의 의약품을 처방한 배경에 제약사의 리베이트를 받은 것이 맞다. 의료법에서는 부당한 금품 수수로 자격정지 2개월인데, 양심에 따른 진료와 부당한 의약품 선택을 막아야 할 의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적정한 수준이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리베이트 문제는 법뿐만 아니라 국민 정서에도 어긋난다. 이제까지는 리베이트가 제약사와 의사 사이의 문제로 치부되었지만, 앞으로는 의료 소비자(환자)의 문제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리베이트가 직접 약값을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보험공단에 부담을 주는 만큼 국민의 세금을 축낸다는 것이다.

현재 6명의 환자가 리베이트 환수를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준비 중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소비자시민모임으로 구성된 의약품 리베이트 감시운동본부는 지난해 12월부터 불법 리베이트로 환자가 입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단을 모집하고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6명의 환자가 소송에 참여했고 오늘(1월23일)도 한 명 더 신청한 것으로 안다. 이들로부터 위임받아 불법 리베이트라는 법원 판결을 받은 한 제약사를 상대로 환자 개인의 부당한 약값 인상분과 정신적 피해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낼 것이다. 환자 몇 명이 배상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료 소비자가 리베이트 근절에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CJ제약과 동아제약은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지만, 나중에 법정 판결로 불법이 밝혀지면 역시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제약사의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를 보건의료 사기로 간주하고 엄하게 벌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손해도 적극 환수한다. 미국은 보건부 내에 감찰부를 두고 법무부 및 검찰 등과 공조해 보건의료 사기에 손해배상 등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며, 최근 5년간 환수액만 무려 83억 달러에 이른다. 국내에서는 의약품 리베이트 환수 소송을 제기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최근 굵직한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문제가 연일 터지면서 업계는 뒤숭숭한 분위기에 빠져 있다. 서울중앙지검(정부 합동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은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동아제약의 전무 등 2명을 기소하고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제약업계 1위 기업인 동아제약은 2009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천4백여 개 병·의원에 48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검찰은 동아제약으로부터 받은 의사 100여 명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동아제약과 CJ제약 등 굵직한 업체들의 잇단 불법 리베이트 문제는 쌍벌제 이후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제약사의 자정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는 사안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나중에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겠지만, CJ제약이 2백여 명의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주었다면 개원의뿐만 아니라 대학병원 의사들도 몇몇 있을 것 같다. (리베이트 문제가) 잊을 만하면 터져서 업계의 한 사람으로서 곤혹스럽다. 이런 문제는 리베이트 비용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려는 제약업계 전체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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