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을 이긴 동네 빵집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1.2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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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상권 챔피언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해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대형 마트와 빵집이다. 대형 마트는 자본의 크기에 따라 전선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만, 빵집은 대기업 자본이 프랜차이즈 형태로 수많은 자영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전선이 복잡하다. 최근 중소기업 적합 업종 선정 문제를 놓고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대기업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프랜차이즈협회나 가맹점주 등이 나서서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안의 미묘성을 보여준다. <시사저널>이 동네 빵집으로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을 이겨낸 사례를 통해 작은 빵집 문제를 들여다보았다.

지난해 하반기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빵 표절’ 문제가 화제가 되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인 S사가 홍대 앞 ‘브레드05’라는 작은 빵집의 히트 상품인 ‘앙버터’ 빵을 흉내 낸 제품을 똑같은 이름으로 팔기 시작한 것이 네티즌들 의 입길에 오른 것.

“나는 그들이 그런 걸 만들어 파는 줄도 몰랐다”라고 브레드05 오너 쉐프인 강원재 사장은 말했다. 강사장은 직원들이 “그쪽에서 상표 등록까지 했으면 우리가 앙버터 빵을 못 팔게 된다”고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S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대기업들은 보통 신제품을 낼 때 상표 등록까지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는 S사에 항의했다. 트위터에서는 연일 대기업 빵집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트윗이 이어졌다. 이 소동은 S사가 그 빵 이름을 접고 다른 이름을 내거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브레드05 오너 쉐프인 강원재 사장. ⓒ 시사저널 임준선
대기업 빵 표절 적발한 네티즌 수사대

한바탕 소동을 겪은 강원재 사장은 지난해 12월 S사가 맹주로 군림하고 있는 서울 이촌동에 입성해 브레드05 이촌점을 냈다. S사의 이촌점은 하루 매출액이 1천5백만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사장은 “동네 빵집이 못 하니까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가 클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골리앗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들이 비슷한 제조법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나만의 것을 그대로 흉내 낼 수는 없다. 그들이 전국에서 공장 빵을 팔 때 나는 여기서 내 빵을 원하는 손님에게 하루에 100만원어치만 팔아도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도쿄제과학교를 졸업하고 군산 이성당에서 3년, 서울의 한 제과점에서 1년을 일한 뒤 독립했다. 13년 전 그는 창업을 결심하고 이촌동에 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때 S사의 매장 건너편에 가게 자리가 났다. 일주일간 거리에 나와 행인 흐름을 분석하던 그는 사람들이 S사 매장으로만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촌동을 포기하고 여의도로 들어갔다. 여의도에서 르와르라는 이름의 빵집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그는 다른 콘셉트의 빵집에 도전했다. 3년 전 ‘브레드05’라는 빵집을 홍대 앞 외진 골목에 열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결코 찾을 수 없는 자리였다.

“13년 전에 브레드05가 등장했다면 망했을 것이다. 일본을 자주 오가면서 느낀 것이 일본은 빵과 과자, 초콜릿 가게가 세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도 전문점으로 가는 시대가 온 것이다. 빵을 간식이 아닌 주식으로 소비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어서 빵 전문점으로 갔다.” 그는 브레드05에서 막걸리종 등 천연효모 5가지를 쓴 빵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일본 스승에게서 앙버터 빵의 포뮬라(제조법)를 전수받아 그만의 방식으로 리뉴얼해서 내놓았다. 9평짜리 작은 빵집 브레드05가 자리를 잡는 데는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트위터와 인터넷을 타고 브레드05의 입소문이 번지면서 2011년 가을 브레드05는 ‘빵 하고 터졌다’. 대기업 빵집 S사의 표절 논란은 오히려 브레드05의 유명세를 부추긴 면도 있었다.

트위터에서 ‘빵당’을 운영 중인 김혜준 교수(인천문예직업전문학교 디저트제과제빵학과)는 “윈도 베이커리는 당일 생산-당일 소비가 원칙으로, 다량 생산을 하지 않고 질을 중시한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밋밋한 맛의 빵에도 맛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맛을 찾아다닌다”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성공이 고용률 유지의 원동력

강사장은 대기업 빵집과 작은 빵집(윈도 베이커리)이 가는 길은 다르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르와르가 유명세를 타면서 롯데백화점 본점에 들어갔다가 1년 만에 철수하기도 했다. “나는 자영업자이고 그들은 대기업이라 그들만의 틀이 있다. 그게 안 맞았다. 철수한 뒤 다른 백화점에서도 입점 제의가 들어오지만 다 거절했다.”

그는 대형 프랜차이즈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내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8천개가 넘던 개인 빵집이 15년 만에 4천개로 줄어들었다. 다 대기업 빵집이 잠식한 결과이다. 8천개의 빵집이 그대로 있었다면 식자재 공급상도, 종류도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했을 것이다. 대기업 빵은 반은 공장에서 큰 기계가 만든다. 인력 고용 효과도 작은 가게가 훨씬 크다. 귀국 초기 제빵 관련 유료 세미나에 수강생이 넘쳤다. 지금은 무료 세미나에도 점주들이 안 온다. ‘배우면 뭐 하나, 제과점이 안 되는데…’라는 반응이 나온다. 작은 가게가 잘되면 거기에 납품하는 계란 가게, 우유집, 밀가루 납품상까지 잘되던 구조가, 재료상까지 계열사 신규 사업으로 편입시킨 대기업만 잘사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국내 빵 수준을 높인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 그 8천개의 빵집이 그대로 남아서 경쟁을 벌였다면 훨씬 더 다양하고 수준 높은 경쟁이 이뤄졌을 것이다.”

‘한 자리에서 20~30년간 나만의 개성으로 빵집을 하고 싶다’라는 그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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