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상에 올라야 하는 것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3.02.0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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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젊고 수완 좋은 장사꾼입니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은 무척 밝았습니다. ‘천당 바로 밑 동네’라는 경기도 분당에서 지금은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요즘 경기도 좋지 않은데 장사하기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그래서 더 잘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분당 사람들은 소득이 비교적 높은 편인지라 예전에는 외식도 곧잘 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풍속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외식을 줄이는 대신 고기를 직접 사다가 집에서 구워 먹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 덕에 정육점 장사가 호황이라는 자가 분석도 곁들였습니다. 이른바 부자 동네로 꼽히는 지역에서마저 소비를 줄이는 것은 그만큼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불황의 그림자가 걷히기는커녕 갈수록 세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민족의 큰 명절인 설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기쁘게 맞이해야 할 명절이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어둡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날씨만큼이나 혹독한 마음의 한파 탓일 것입니다. 지갑이 가벼워지면 마음은 그 반대로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하우스 푸어에 에너지 푸어, 메디컬 푸어, 에듀 푸어까지 온갖 ‘푸어’들도 넘쳐납니다. 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고난의 터널이고, 절망의 낭떠러지입니다.

고정 소득이 있는 월급쟁이라고 다를 것이 없습니다. 치솟은 물가 탓에 시름을 떨칠 날이 없습니다. 체감 소득은 기대 이하이고, 이것저것 소비를 줄여도 생활은 늘 쪼들립니다.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들대로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것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릅니다. 영하로 곤두박질친 경제 온도가 언제쯤 영상으로 올라갈지 애만 탈 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때부터 민생 정치와 복지를 줄곧 외쳐왔습니다. 유권자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데는 그같은 공약의 힘도 적지 않게 작용했습니다. 그런 만큼 민생이나 복지가 몸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민심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습니다. 박당선인에 대한 지지율이 역대 당선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도 당장 손에 만져지는 민생·복지가 없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대기업의 수익을 늘려서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하겠다던 MB 정부의 ‘낙수(落水) 이론’은 이미 거대한 실패담만 남기고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답은 하나입니다. ‘내수 시장 살리기’가 그것입니다. 수출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팔리지 않은 상품을 보며 혹은 빈 테이블을 보며 애간장을 끓이는 영세 상인들의 호주머니부터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살아나야 경제의 모세혈관이 뚫리고 돈이 제대로 돌 수 있습니다. 박당선인이 맨 먼저 팔을 걷고 나서야 하는 복지는 바로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판에 박힌 계량적 복지가 아니라 따뜻한 복지, 찾아가는 복지로 얼어붙은 국민의 마음을 녹여주어야 합니다.

최근 미국 한 대학의 과학자들이 흥미로운 논문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경제 불황과 음식 섭취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것인데, 그 내용에 따르면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더 높은 열량의 음식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처럼 이번 설에 명절 음식으로 폭식하는 사람이 늘어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도 듭니다. 부디 이번 설에는 그런 걱정 대신 봄날 햇살 같은 웃음이 넘쳐야 합니다. 차례상마다 희망의 덕담이 그득 올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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