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누출 직후 병원만 갔어도…
  • 이윤근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
  • 승인 2013.02.0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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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유해물질 사고, ‘은폐’ 급급하는 것이 더 큰 문제

지난해 9월27일 구미 불산 누출 사고와 올해 1월12일 상주 염산 누출, 1월15일 청주 불산 누출 그리고 지난 1월27일 경기 화성의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고 등 최근 들어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구미 불산 누출 사고는 가히 재앙 수준이었다. 5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고, 18명이 입원 치료를 받았다. 또한 1만여 명의 지역 주민과 노동자들이 검진을 받았으며, 농작물 및 가축 등 지역 주민들의 보상금으로만 3백64억2천여 만원이 확정되었다. 피해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염된 토양으로 인해 내년 농사가 불투명하며, 향후 이 지역에서 생산된 농작물의 판로는 장담할 수 없다.

1월29일 불산 가스 누출 사고 현장인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반도체 사업장에서 관계자들이 합동 현장 감식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불산 누출 피해자는 즉시 병원 후송해야

지난 1월12일 발생한 상주 염산 누출 사고는 어떤가. 비록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똑같은 실수와 허술한 대응이 반복되고 있었다. 오전 7시30분쯤 2백t의 염산이 대량 누출되어 수증기와 같은 흄을 대량으로 발생시키면서 공장 주변을 뒤덮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난 후 직원 10명이 염산을 빼내는 등 수습에 나섰으나, 경찰이나 소방서에 사고 발생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10시40분쯤 먼 곳에 있는 지역 주민들이 화재가 난 것으로 오인해 면사무소에 신고한 것이 전부라는 점이다. 이 역시 자체적으로 수습하기에 급급하다 염산 누출량이 많아지면서 수습 시간과 인력 등이 더 소요될 수밖에 없었던 ‘인재’였다.

1월15일 상주 염산 사고에 이어 3일 만에 터진 청주 불산 누출 사고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확인된 것이지만, 지역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이번 사고뿐만이 아니라 이미 여러 차례 누출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공장 주변에 있는 가로수 잎의 불소 이온 농도를 측정해봤더니 약 1천5백mg/kg 정도였다고 한다(자연 상태의 식물 배경 농도는 5~15mg/kg에 불과함). 이 농도는 사고가 나고 어느 정도 시일이 경과된 후의 농도(불소에어로졸의 반감기는 12일 정도로 추정함)이기 때문에 사고 당시는 이보다 훨씬 심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청주 불산 누출 사고는 적어도 수차례 이상 발생했었지만 그동안 행정 당국에 보고되지 않았고, 지역 주민들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발생한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고를 보면 허술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 정도이다. 상주 염산 사고와 마찬가지로 사고 발생 후 25시간 가까이 은폐하기에 급급했으며, 급기야 노동자가 사망하고서야 어쩔 수 없이 신고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더욱더 기가 막힌 것은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을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1월30일 화성의 사고 현장을 방문해 공동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사망자는 1월27일 오후 11시38분에 사고 현장에 투입되어 불산에 1차 노출된 후 어느 정도 사고가 수습되었다고 판단되어 28일 새벽 3시32분에 귀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불산 노출 여부를 테스트한 결과 계속적인 노출이 확인되었고, 이미 귀가한 고인에게 연락해 다시 회사에 출근시켰다. 고인은 이날 새벽 4시38분부터 4시59분까지 작업을 계속했고, 작업이 정리된 후 보호복을 벗어보니까 목 주위에 반점이 확인되어 사내 구급차를 타고 오전 7시30분에 인근 대형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한다. 병원에 도착하기 직전 심장 쇼크가 왔고, 심폐소생술을 거쳐 오전 10시께 화상 전문 병원인 한강성심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오후 1시5분 사망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왜 처음 불산에 1차 노출된 후 곧바로 병원 후송이 이루어지지 않고, 귀가 조치 후 다시 작업 현장에 투입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불산 누출에 대한 응급구조정보(Right to know Hazardous Substance Fact Sheet)를 보면 누출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즉시 흐르는 물로 몸을 씻어낸 후 중화연고를 바르고, 병원으로 후송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병원에 후송되면 24~48시간 동안 관찰한 후 문제가 없을 경우에 퇴원 조치를 밟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불산의 독특한 독성학적 특성 때문이다. 즉, 불산이 피부를 통해 흡수되거나 혹은 불화가스가 호흡기를 통해 흡입되면 수분에 녹은 불소 이온이 혈액 내 칼슘과 결합해 칼슘 농도가 낮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낮아진 칼슘 농도를 보상하기 위해 세포 내 칼륨이 세포 밖으로 이동해 혈액 내 칼륨 농도가 높아져 ‘고칼륨혈증’이 발생할 수 있다. 혈액 내 칼륨 농도가 높아지면 심방 세동이 와서 사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농도가 높지 않을 때는 일정한 시간적 경과가 필요하고, 그 기간 동안에는 화상에 의한 반점이 생기거나 목 통증과 같은 증상 외에는 별다른 특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삼성은 불산의 이러한 독성학적 특성을 무시하고 (혹은 알지 못하고), 1차 노출 후 눈에 보이는 뚜렷한 징후가 보이지 않자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한 채 즉각적인 후송 조치를 취하지 않은 오류를 범한 것이다. 더군다나 1차 노출 후 귀가한 사람을 다시 불러 추가 노출을 시킴으로써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결정적 원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모든 단계에 개입하는 통합 기구 필요

이와 같은 일련의 사고들을 보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눈앞이 캄캄할 정도이다. 또 이런 사고들이 언제 어디에서 터져 나올지 두렵기도 하다. 왜 이렇게 원시적인 사고가 반복되고 있을까?

많은 전문가가 유해 화학물질 관리 법·제도 미비, 사고 발생 시 화학물질별 수습 관리 체계의 미비, 재난 구조 시스템의 미비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향후 대규모 재난의 경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대응 기구를 중앙사고수습본부 체제로 일원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수습만 일원화할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부처별 대상 물질과 관리 기준이 통합되어야 한다. 미국의 ‘연방재난관리청(FEMA)’ 사례처럼 준비-대응-회복-경감의 모든 단계에 개입하고 조절하는 통합된 기구가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지역 사회의 알 권리 문제이다. 집 근처에 있는 공장에서 어떤 유해물질을 취급하고, 그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이 제대로 전달되어야 하고, 바로 그런 정보를 요구할 때만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각종 규제와 감독 기능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루빨리 이러한 문제를 포함해서 제도적 문제가 보완되기를 바란다. 소는 잃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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