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완화’ 바람 잡는 아베의 멘토들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3.02.0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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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노믹스’ 뒤에 버티고 선 통화 정책 지지자 3인방

아베 총리는 2006년 고이즈미 정권 시절 관방장관이었다. “당시 일본은행을 제대로 압박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최근의 아베 총리 모습에서는 두 번 다시 당시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지난 1월28일 아베 총리는 당선 이후 처음으로 중의원과 참의원 합동 의회에서 소신 표명 연설을 했다. 핵심은 경제 살리기였고, 내용도 간단했다. 강한 경제를 통해서 국민 소득을 증대시키고 사회보장 제도의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이다. 금융 정책과 재정 정책이다. 금융 정책은 2% 인플레이션을 상한으로 무한정 돈을 찍어내겠다는 것이다. 재정 정책은 사회간접시설 확충을 통한 경기 부양이다.

아베의 정책을 언론에서는 ‘아베노믹스’라고 부른다. 지난 정부들도 양적 완화 정책을 실행했고, 일본은행도 지난 10여 년간 양적 완화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정책을 아베노믹스라고 부르는 이유는, 확신을 가진 채 과감하고 신속하며 충격적인 방법으로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인플레이션 위험, 실질임금 하락, 재정 파탄 등 여러 위험성이 있는데도 양적 완화를 강행하는 자신감과 확신의 배경에는 경제 멘토들의 조언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세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하마다 고우이치 미국 예일 대학 명예교수이다. 아베 총리에게 금융 정책의 이론적 틀을 제공해주는 인물이다. 하마다 교수는 “엔고 문제와 경기 침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과감한 양적 완화를 통해 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라며 경기 침체가 금융 정책의 잘못에 있다고 지적했다.

시라가와 일본은행 총재의 스승이기도 한 하마다 교수는 일본은행의 금융 정책에 비판적이다. 공개적으로 “1달러 대비 95~100엔까지 가도 문제가 없다”며 아베 총리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지난 1월18일 일본외국특파원협회 강연에서도 “1달러에 1백10엔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95~100엔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엔저 정책을 거듭 강조했다. 하마다 교수에 대한 아베 총리의 신뢰는 각별하다. 총리에 오른 후 미국에 있는 하마다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하마다 교수는 오는 4월18일 임기가 끝나는 현 시라가와 일본은행 총재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건강상의 문제를 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금융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은 아베 총리의 30년 지기인 혼다 에츠로우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이다. 국제금융을 전공했고 대장성 출신이다. “투자가나 소비자에게 2%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일관적으로 금융 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대장성 출신이지만 ‘재정 건전성’을 주장하는 대장성의 가치관과는 사뭇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단고 야스타케 전 재무차관도 빼놓을 수 없다. 하마다·혼다 교수가 국제금융 방면에서 지원하고 있다면, 단고는 재정 경제와 사회보장 분야에서 조언한다. 아베는 일본은행법을 개정하거나 재무성 관료들을 컨트롤하려면 관료 세계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단고를 자문역으로 활용하고 있다.

“1달러 대비 95~100엔까지 가도 문제 없다”며 아베 총리(오른쪽)의 양적 완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는 하마다 고우이치 예일 대학 명예교수(왼쪽). ⓒ EPA 연합
경제계, 임금 상승에는 소극적 자세 보여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도 아베에게 공개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지금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과거 어느 때보다 크게 가지고 있다. 수출 기업, 특히 자동차업계는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닛산 자동차의 카를로스 콘 회장은 “그간 엔이 너무 강하게 평가되었다. 1달러 대비 100엔 정도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기업의 실적이 상승하더라도 그것이 임금 상승으로 나타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요네쿠라 히로마사 경단련 회장은 노조와의 회담에서 고용 유지라는 명분을 내걸며 임금 인상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에스피오의 모리오카 씨는 “임금 인상이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임금 인상에 보수적인 기업들의 태도가 계속된다면 인플레이션 상태에서  실질임금이 하락하게 되면서 아베 정책은 역풍을 맞게 된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당장 수입 물가가 상승해 소비자 물가 상승을 견인할 조짐도 보인다. 당장 장바구니 물가가 올랐다. 일본은 한 해 농산물 수입액이 5백39억 달러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식품 수입을 하는 구시다 미츠히코 사장은 “축산·유제품·소맥분 등의 식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입 화물 가격도 오르고 있어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원유 및 천연가스 수입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기요금 상승도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실질 임금이 하락하고 소비자 물가가 오르면 궁핍해지는 것은 가정 경제이다. 소비 위축이 불가피해진다. 일본 경기가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20여 년간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좀처럼 소비를 하지 않는 국민 때문이었다. 개인 자산 1천5백조 엔 정도가 움직이지 않으니 결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재정을 유지해올 수밖에 없었다. 국채 발행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배에 달해 국채 원리금을 상환하는 일에 전체 예산의 22%를 지출하고 있다.

소비가 얼어붙게 되면 국가 재정은 국채 발행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국채 가치가 떨어지면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는 은행이 타격을 입게 되고 개인 자산이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내년 4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까지 단행하게 된다면 소비는 더욱 꽁꽁 얼어붙게 된다. 아베노믹스가 자칫하면 일본발 불황을 현실화할 수도 있는 셈이다.

여전히 아베 총리는 현재의 금융·재정 정책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오는 7월 열리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분위기를 이어가야 한다. 과거 아베처럼 경제 변화를 시도했던 사례가 있었다. 고이즈미 정부 시절 자민당과 공명당은 고이즈미 개혁에 의해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진 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고용률과 임금이 동반 하락했고, 경기 침체는 지속되었다. 아베노믹스가 앞으로 어떤 경험을 남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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