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우산’ 꺼내들고 고민 거듭하는 미국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2.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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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불량 국가지만 협상 나서라”

북한은 미국 동부 시각으로 지난 2월11일 오후 10시, 전격적으로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미국과 중국에 조만간 핵실험을 시행하겠다고 통보한 바로 다음 날 실행에 옮긴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연설이 있기 하루 전날 실행하면서 미국의 반응도 보고, 핵실험을 국제 문제로 만들겠다는 치밀한 시간 계산이 뒤따랐다.

북한의 의도는 적중했다. 2월12일 새벽 2시 오바마 행정부는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의 핵실험은 지역 안정을 해치는 심각한 도발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더 나아가 국제 평화와 안보에 위협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도발을 감시하고 동맹 지역에 대해 확고한 방어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대응했다.

공교롭게도 “북한이라면 밤잠을 설친다”라고 하소연했던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의 퇴임식이 핵실험 직후 국방부 청사에서 열렸다. 그 역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우리는 지난 몇 주 사이에 북한이 미사일 실험과 새로운 핵실험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미국에 심각한 위협이며, 우리는 이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불량 국가(rouge state)’와도 계속해서 협상을 해야 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2월12일은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 첫 국정 연설이 예정된 날이었다. 국내 현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설 내용이 미리 언론에 배포되었으므로 북한의 핵실험에 관한 내용이 추가될 수밖에 없었다. 오바마는 국정 연설에서 “지난밤 우리가 목도했던 도발은 단지 북한을 더욱 고립시킬 뿐이며, 우리는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미사일 방어’(MD)를 강화해 이러한 위협에 대해 단호한 행동을 취할 것이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지난 2월12일 집권 2기 첫 국정 연설을 하기 위해 백악관을 나서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 ‘대북 협상’ 카드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 AP연합
MD 체제 구축 통한 안전 도모 꾀해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절묘한 타이밍에 시행되면서 미국 정부와 국제 사회의 이목을 끄는 데 크게 성공했다. 핵보유국임을 과시하면서 미국과 상대할 수 있다는 이른바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펼쳤다. 제재를 주도해야 하는 미국과 한반도에서 불안정을 바라지 않는 중국을 난처하게 만드는 데 일단 성공을 거둔 모양새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사이의 전화 통화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나왔다. ‘핵우산’이다. “미국은 핵우산을 통한 억지력을 포함해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을 변함없이 지켜나갈 것이며, 유엔 제재와는 별도로 대량살상무기 저지를 위한 미국 자체의 제재 조치를 검토할 것이다”라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전화 내용이었다. 과거 냉전 시대 이후 거의 언급되지 않던 핵우산(nuclear umbrella) 정책을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 전략에서 다시 언급한 것이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동맹 지역인 일본과 한국에 미사일 방어(MD) 체제 구축을 통해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계획을 분명히 했다.

2011년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 기고를 통해 “미국은 태평양 시대를 열겠다. 외교·군사 정책의 중심축을 중동에서 다시 아시아로 이동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클린턴 장관은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라고 명명된 정책을 통해 “미국의 정치·군사적 힘을 아시아 지역으로 재분배(rebalancing)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이 내세우는 키워드는 ‘MD 체제’이다. 호주·일본·한국 등 동아시아 일대에 MD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이러한 구상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군비 확장을 통한 패권주의라는 비판을 받았고, 중국과 북한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MD 체제는 추진력이 떨어졌고, 민감한 사안으로만 남았다.

역설적으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실험과 3차 핵실험은 미국의 동아시아 진출 전략에 명분을 강화시켜주는 기회가 되고 있다. 미국의 핵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성공적인 3차 핵실험과 그에 따른 미사일 탄두 보유 위협은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 탄도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해야 할 좋은 명분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1, 2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할 때마다 유엔 등 국제 사회는 제재를 가했다. 강대국들이 북한에 대한 외교 정책을 재검토하는 사이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기 기술의 진보를 이룩하고 있다는 점을 이번 3차 핵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제재에 대항하며 다시 도발을 감행해 협상을 유도하는 과거의 패턴은 이번에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탄도미사일에 탑재가 가능한 핵무기 보유를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체제 안정을 노리고 대외적으로는 대미 협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이다.

스티븐 보즈워스 전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대북 제재 선언이 우리를 기분 좋게 할지는 모르지만, 북한에는 어떠한 실질적인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북한은 관심을 끌기를 원하고 있으며, 핵무기 보유 국가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미국은 비핵화에 따르지 않으려고 하는 북한에 더욱 광범위한 협상안(agenda)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란 때문에 핵보유국 인정도 어려워

익명을 요구한 미국 행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핵무기 경쟁자가 될 수 있느냐는 뉴욕타임스의 질문에 “만약(if)이라는 가능성에서 이제는 언제(when)라는 현실성으로 바뀌었다”라고 실토했다. 그는 “그 언제라는 시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제는 눈앞에 보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국장을 역임하며 대북 강경책을 주도했던 빅터 차 조지타운 대학 교수도 “오바마 행정부는 불쾌할 수 있겠지만, 조만간에 다시 북한과 얼굴을 맞대고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북한의 핵 야망을 동결시키는 유일한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두고 복잡하고도 미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더욱 강화된 제재 조치가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핵무기 개발 능력을 후퇴시킬 리 없으며, 오히려 북한 엘리트들은 미국에 대항하는 모습을 내부 체제를 결속하는 데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원하는 대로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슷한 길을 걸으려고 발버둥치는 이란이 북한을 답습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안에 중국이 동참해줄지도 의문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서 한반도의 안정이 위태로워지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이를 빌미로 미국이 동아시아 정책을 활발히 펼치는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중국 정부이다. ‘협상’이라는 방울을 달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북한에 미국이 어떤 카드를 내놓아야 할지, 그 고민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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