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카지노 사업까지 손대나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2.27 09:2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원랜드 슬롯머신 납품 사업자 선정돼 논란

KT 컨소시엄이, 강원랜드가 발주한 카지노 슬롯머신 납품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강원랜드는 2012년 증축한 신규 객장에서 사용할 슬롯머신 4백대가 필요했고, 지난 1월16일 입찰 설명회를 가졌다. 2월13일까지 입찰 제안서를 제출한 곳은, KT 등 5개 업체가 참여한 컨소시엄과 중소기업인 아큐픽스 등 4개사의 컨소시엄 등 두 곳이었다. 그리고 2월15일 KT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강원랜드가 책정했던 사업 비용은 1백88억원. KT 컨소시엄은 이보다 적은 1백69억원에 낙찰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KT 컨소시엄과 아큐픽스 컨소시엄의 점수 차이는 불과 0.29점이었다. KT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되기는 했지만, 2월22일 현재까지 강원랜드와 본 계약이 체결되지는 않았다. 향후 본 계약이 체결될 경우, KT는 해외 업체에서 제작된 슬롯머신을 수입해 강원랜드에 납품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입찰 과정에서 여러 석연치 않은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입찰에서 탈락한 아큐픽스 컨소시엄측은 2월19일 최흥집 강원랜드 대표이사에게 ‘신규 머신 기기 구매 입찰 관련 사실 관계 확인 요청’ 공문을 보냈다. 강원랜드의 제안 요청서에는 ‘작성 기준을 위반한 제안서에 대해서는 제안서 평가 시 1점 감점 처리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아큐픽스측은 공문을 통해 ‘제안서는 박스 포장 그대로 접수되어야 하고, 1백50페이지가 초과될 경우 감점 처리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원랜드가 KT 컨소시엄의 제안서를 접수하면서 페이지 확인 절차를 가졌고, KT 컨소시엄이 제출한 제안서가 1백50페이지를 초과한 사실을 발견하고서 초과된 페이지를 바로 삭제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라고 밝혔다.

강원랜드 카지노 영업장 ⓒ 연합뉴스
심사위원·공정성도 입길에 올라

아큐픽스측 관계자는 “이는 엄연히 제안서 작성 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1점 감점 처리했어야 한다. 하지만 강원랜드는 이를 무시한 채 그냥 넘어가면서 KT에 특혜를 주었다. KT와 우리가 0.29점 차이였던 점을 감안하면, 낙찰 여부에 결정적인 부분이다”라고 주장했다.

강원랜드측은 이 공문에 대해 2월22일까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강원랜드의 한 관계자는 “제안서를 접수하기 전에 KT의 제안서를 보니 1백58페이지 정도 되었다. 8페이지 정도 초과했기 때문에 제안서에 포함되어 있던 간지 등을 빼고서 접수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안서를 접수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감점 요인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입찰 심사위원의 자격도 입길에 오르고 있다. 비전문가들에게 슬롯머신 분야는 용어도 생소하고, 단기간 동안 기술 사항을 습득하기도 쉽지 않다. 심사위원이라면 최소한 슬롯머신에 대해 기초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번에 참여한 전체 심사위원이 강원도 소재 대학교의 비전공 교수로 구성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아큐픽스 컨소시엄측은 “이번 심사에 참가한 심사위원 대다수는 슬롯머신 용어 자체도 모르는 대학 교수들이었다. 따라서 KT라는 대기업의 무늬만 보고 이루어진 비객관적인 심사였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원랜드측은 “심사위원으로 정보통신 및 관광업계 전문가 등이 참여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심사의 공정성에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심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 통상적으로는 입찰 제안서에서 업체 이름이나 제품, 로고 등을 삭제한다. 심사위원들이 제안서 내용만 보고 심사할 수 있도록 한 조치이다.

하지만 이번 입찰에서는 제안 업체 이름뿐 아니라 로고까지 그대로 표기되었다는 것이다. 지명도가 낮은 중소기업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강원랜드측은 “제안서에 업체 이름이 표기된 것은 사실이다. 제안서에 해당 업체의 신용평가 등급 등이 게재되어 있어서 누구나 어느 회사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업체 이름을 가리지는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KT 본사.
강원랜드·KT, “문제 될 것 없다” 해명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동안 슬롯머신은 국내 중소기업들이 슬롯머신 제조업체와 계약한 후 완성품을 구매해 강원랜드 등에 납품해왔다. 그런데 공공사업 분야에 대한 대기업의 사업을 제한하는 요즘 추세와 달리, 강원랜드의 슬롯머신 공급 사업은 대기업이 수월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그 조건이 완화되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강원랜드와 우선협상대상자가 본 계약을 체결할 경우, 그 대상자에 최대 30%의 선금을 지급하기로 되어 있다. 때문에 자금 여력이 많은 대기업이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입찰에서 탈락한 아큐픽스 컨소시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입찰 사업은 3개월 동안, 즉 단기간에 걸쳐 납품하는 단순 사업이다. 또한 이번 사업은 SI(시스템 통합) 작업이 전혀 필요하지도 않고, 설치할 때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 업무이다. 중소기업이 맡아도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KT가 자신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회사들에게 슬롯머신 구입 대금을 대출해주고 연 7%의 이자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는 관측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KT가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큐픽스 컨소시엄은 2월20일 감사원에 ‘강원랜드 ‘신규 머신기기 구매’ 입찰 민원 내용’이라는 민원 신청서를 제출했다. 아큐픽스 컨소시엄은 신청서에서 ‘강원랜드 입찰 과정에서 강원랜드가 마치 특정 업체(KT 컨소시엄)를 밀어주기 위해 판을 짜놓은 듯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부당하게 업무 처리를 했다. 이에 강원랜드에 시정 요구를 했으나 계속 경쟁사(KT 컨소시엄)에 유리한 의견만을 보내와 민원을 접수하게 되었다’라고 민원을 제기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강원랜드가 KT에 유리하도록 입찰 도중에 입찰 조건을 변경했다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공기업 성격이 강한 KT가 사행성 사업인 슬롯머신 납품 사업에까지 손을 댄 것은 사회적 책임 기업으로 부적절하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KT의 한 임원은 2월21일 전화 통화에서 “이번 사업과 관련해서는 강원랜드의 입장이 중요한 것 같다. 다만, 이번 사업은 단순히 슬롯머신 기기를 납품하는 것인데, 이를 놓고 우리가 사행 사업을 한다거나,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침해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입찰에서 떨어진 아큐픽스 컨소시엄은 지난 2월22일 춘천지검 영월지청에 강원랜드를 상대로 ‘임시지위확인 및 계약체결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시시비비는 이제 법정 공방을 통해 판가름 나게 되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