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 도미노’에 ‘식물 정부’까지
  • 안성모·이승욱·조해수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2.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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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3명은 더 낙마한다”…‘청문회 정국’ 대파란 예고

지난 2월21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대한민국 군을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별’들이 모였다. 이날 참석자는 백선엽·이상훈 예비역 대장 등 재향군인회 원로자문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원로급 예비역 장성들이었다. 군 원로들은 북한의 제3차 핵실험에 대한 결의문을 채택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했다. 그런데 이날 회의에서 주된 논의는 박근혜 대통령이 인선한 차기 국방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평가로 옮겨졌다. 현 정권과 이른바 코드가 맞는 보수 성향의 군 원로들이었지만, 이날 참가자들의 국방부장관 인선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는 것이 한 참석자의 전언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인사는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과연 국방부장관으로서 적합한가에 대한 비판이 계속 이어졌다. 군 원로들은 대한민국 국군을 대표하는 국방부장관이 도덕성 시비에 오르내리고, 특히 돈 문제와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데 대해 불쾌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였다”라고 격앙된 분위기를 전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국방부장관 인사에 군 원로들 이례적 반발

군은 사실상 상명하복의 명령 체계가 확고한 조직이다. 거기다 군 원로에 대한 예우도 깍듯하다. 역대 정권이 국방부장관 인선과 국방 정책 수립 등 주요 국방 현안과 관련해 군 원로들의 의견을 청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국방부장관 인선을 놓고 군 원로들이 사실상 ‘반기’를 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박대통령의 첫 조각 인사 중 하나인 김후보자의 낙마 가능성을 크게 점치는 군 안팎의 분위기는 이런 군 원로들의 반응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후보자는 각종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채 정치권과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현재 언론에 공개된 의혹만 10여 개에 달한다. 대표적인 논란거리는 김후보자의 퇴임 후 행적 중 무기중개업체 고문으로 활동한 전력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김후보자의 경력증명서 자료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08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후인 2010년 7월부터 2012년 6월까지 무기 거래업체인 ㈜유비엠텍(이하 유비엠텍)에서 경영관리본부 소속의 고문으로 활동해왔다. 수입 무기의 국내 중개를 맡고 있는 이 회사는 무기중개업계의 ‘큰손’으로 통하는 정의승씨(74)가 만든 회사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이 김후보자의 원천징수 영수증을 확인해본 결과, 그는 유비엠텍에서 고문으로 일한 24개월 동안 1억9천7백90여 만원을 지급받은 것으로 나온다. 근로소득 지급 흔적이 마지막으로 남은 지난해 6월, 김후보자는 유비엠텍으로부터 기본 급여 외에도 7천만원을 일시불로 지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육군 대장으로 국방부 최고위층을 지낸 그가 무기 중개업체의 고문으로 일하면서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논란을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특히 독일 군수기업의 중개를 맡고 있는 유비엠텍은 K-2 전차의 부품인 파워팩의 독일제 도입을 성사시킨 회사로, 그동안 각종 로비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후보자는 “독일 회사와의 합작회사 설립에 한정한 자문만 했을 뿐”이라면서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 밖에도 부동산 투기 의혹과 편법 증여 의혹 등 각종 의혹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의 부적절한 처신을 두고 군 출신 인사들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육사(26기) 출신의 한 예비역 인사는 “언론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같은 육사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지경”이라면서 “어떻게 이런 사람이 군의 최고 수장이 되겠다고 하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고, 이런 사람을 인선하는 박대통령의 의중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 출신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또 다른 사실을 귀띔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가 있었는데, 여기에 김병관 후보자도 입후보했다. 그런데 그가 얻은 득표는 전체 3백77표 가운데 단 9표에 불과했다. 1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까지 지낸 4성 장군이 고작 2.4%의 득표율로 꼴찌에서 두 번째 지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 꼴찌가 6표를 얻은 병장 출신의 일반 사병 전역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는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는 셈이다.” 김후보자를 바라보는 군 안팎의 냉소적인 시선을 반영해주는 대목이다.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2월14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임시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브로커 병관’에 ‘전관예우 교안’까지

2월25일 18대 대통령 취임식과 함께 정식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드높다. 역대 정부 가운데 정상적인 출범이 가장 늦어질 것은 이미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총리를 비롯한 내각 인사가 발목을 잡았다. 시작부터 꼬일 대로 꼬였다. 고심 끝에 꺼내 놓은 ‘김용준 총리 카드’는 일찌감치 무산되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마저 여야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정부 출범 이후로 밀렸다. 박근혜 대통령 밑의 각 부처 수장은 여전히 이명박 정부의 사람들이다. 과거 정부에도 이런 ‘어색한 동거’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상당히 길어질 전망이다. 말 그대로 ‘뒤죽박죽 정부’라는 비아냥 섞인 반응이 나온다. 대선 기간에 내세웠던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구호가 무색해진다.

문제는 뒤늦게 내놓은 인사의 면면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데에 있다. 정홍원 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장관 후보자 대다수가 갖가지 의혹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장고 끝에 악수’인 셈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몇몇 후보자의 경우 낙마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내에서는 “최소한 3명은 낙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 앞서 언급한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후보자 등이다. 이들의 이름 앞에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김후보자는 ‘브로커 병관’, 황후보자는 ‘전관예우 교안’, 김종훈 후보자는 ‘CIA 종훈’으로 불리고 있다.

황교안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및 증여세 탈루 의혹, 과도한 전관예우 논란 등 돈 문제와 함께 병역 면제, 종교적 편향성 논란 등 개인 문제가 검증의 도마에 올라 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은 황후보자의 부인 최 아무개씨와 관련되어 있다. 최씨는 은행 대출까지 받으면서 1999년 투기 열풍이 거셌던 경기 용인시 수지 지역의 대형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측은 “황후보자가 실제 거주할 목적으로 아파트를 구입했으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이사를 못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황후보자 부부는 지금까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소재 아파트에서 살아왔고, 문제의 아파트는 전세를 준 상황이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황후보자 장남의 증여세 탈루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황후보자의 장남은 지난해 8월30일 76.3㎡ 규모의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10차아파트 전세를 3억원에 계약했다. 2011년 7월 군 제대 후 KT에서 근무를 시작해 2012년 연봉이 3천5백만원인 장남이 연봉의 10배에 가까운 전세를 얻었지만, 이와 관련된 증여세 납부나 채무 관계는 인사 청문 요청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전세 자금을 불법 증여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황후보자는 2011년 8월 부산고검장 퇴임 직후 9월부터 2013년 1월까지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7개월간 근무하면서 16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한 달에 약 1억원의 고액을 받은 셈이다. 정상적인 수임료라기보다 전관예우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병역 면제는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이다. 황후보자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80년 신체검사에서 피부가 몹시 가려운 ‘만성담마진’이라는 질환으로 면제(5급) 판정을 받았다. 이와 함께 불교계에서는 황후보자가 종교적으로 편향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일례로 황후보자는 지난 2004년 부산지검 동부지청 차장검사 재직 시절, 개신교 단체인 아가페 소식지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교도소 재소자들의 재입소율은 30%가 넘는다. 기독교 교정 프로그램(IFI)을 거친 (다른 나라) 재소자의 재입소율은 5%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소자들을 기독교 정신으로 교화해야만 확실한 갱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종훈 후보자는 CIA에서 키워준 인물?”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후보자도 야당의 집중 사정권 내에 있다. 김후보자에게 제기되는 각종 의혹들 가운데는 여태까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다룬 적이 없는 새로운 사안이 많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으로 떠오른 부처답게 그 수장도 전무후무한 후보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김후보자는 최근까지 미국에서 생활했다. 장관 인선 발표 직전 한국 국적을 회복한 그는 그동안 미국인으로서 벤처 기업의 신화를 일구어낸 인물이다.

김후보자를 둘러싼 가장 큰 의혹은 CIA(미국 중앙정보국)와 어떤 관계에 있었느냐는 점이다. 야당에서는 그와 CIA 사이를 ‘특별한 관계’로 의심하고 있다. 김후보자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CIA의 외부자문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재임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런 과거 경력이 장관직 수행의 결격 사유라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김후보자와 CIA의 관계가 단순히 ‘외부 자문’ 수준에 그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김후보자의 내력을 살펴보면 CIA 차원에서 키워준 인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라고 밝혔다.

김후보자는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과 각별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미 해군 출신으로 김후보자가 유리시스템즈라는 회사를 설립하기 전 미 해군연구소에서 일할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한다. 그런데 울시 전 국장이 CIA 국장에서 물러난 다음 해인 1996년 유리시스템즈 이사로 영입되고 10만주의 주식까지 받은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온다. 이 시기를 전후해 유리시스템즈가 급성장을 이루었고, 1998년 회사를 매각하면서 김후보자는 5억1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거머쥐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김후보자는 CIA와 가깝게 지낸 것으로 나타났다. CIA가 미국 정부의 국방 연구·개발비의 일부를 투입해 운영한 ‘인큐텔’ 창립에 관여하고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야당은 이러한 김후보자의 경력을 근거로 “한국의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분야를 책임질 장관으로 적절하지 않은 인물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후보자가 미국의 안보 관련 정보를 접했을 수 있는 만큼 미국 정부가 시민권 포기를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이 경우 김후보자가 이중 국적 상태에서 장관직을 수행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미국 국무성 선임 외교통역관으로 오랫동안 몸담았다가 퇴직한 후 현재 미국과 한국의 학계에서 외교·통일 분야 강의와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김동현(미국명 통킴) 존스홉킨스 대학 연구교수는 “미국 시민권자로 CIA 자문위원으로까지 활동한 인사가 한국의 장관을 맡는다는 것은 상식적인 처신으로 보기 어렵다. 적절한 인사가 아닌 듯하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김후보자가 미래창조과학부 수장으로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전문가로서 그가 지닌 능력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이지만, 미국식 사고와 체계에 익숙한 그가 한국의 과학기술계를 아우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이다. 민주당 고위 인사는 “장관의 역량이라는 것은 단순히 전문 분야의 지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관료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또 국민과 언론, 국회를 설득하면서 자신의 구상과 정책을 실행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김후보자의 경우 벌써부터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버티기 힘들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20일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대통령과 야당 중재할 여당 정치력 실종”

야당은 인사 청문회를 통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2월21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자고 나면 또 새로운 의혹이 생긴다. 자질과 도덕성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후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판단은 국민이 할 것인 만큼 야당은 이를 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라고 밝혔다(32쪽 딸린 기사 참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누리당이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였다. 집권 여당으로서 새 정부 출범을 뒷받침해야 하지만, 내부적으로 박대통령의 인사 방식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박대통령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인수위원회 구성 때부터 논란은 계속되었지만, 나서서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박대통령 앞에서 무조건 “예”라고 답하는 ‘예스맨’만 수두룩하다는 비난이 이어진 이유이다. 당 지도부가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구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데는 여당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여전히 당 지도부는 원칙론만 내세우고 있다.

과거 김영삼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원로 인사는 “이럴 경우 여당이 대통령과 야당 사이에서 중재에 나서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 정부가 위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문제가 매우 심각한 후보자 한둘은 여당에서도 과감히 솎아내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야당에도 명분이 서는 것이다. 문제는 그럴 각오로 박대통령을 설득해야 하는데, 과연 지금 새누리당 내에 그럴 만한 정치력을 발휘할 인사가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칫 ‘식물 정부’에 ‘낙마 도미노’ 사태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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