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의 사건 추적] 금융 시장 짓밟은 ‘가장 못된 손’
  • 표창원│범죄심리학자 ()
  • 승인 2013.02.2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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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자·이철희 부부 어음 사기 사건

1982년 5월4일, 언론과 방송은 일제히 검찰이 장영자·이철희 부부를 구속했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시장은 발칵 뒤집혔다. 전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중앙정보부 차장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지낸 거물 이철희씨(당시 59세)와 그의 부인 장영자씨(당시 38세)가 가진 힘과 배경만 믿고 돈거래를 했던 수많은 기업인에게는 가히 ‘재앙’이나 다름없는 소식이었다.

장영자가 누구인가? 거물 남편을 제쳐둔다 해도, 당시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절대 권력자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씨의 처제였다.

1982년 10월18일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재판정으로 향하는 이철희(왼쪽)·장영자(오른쪽) 부부. ⓒ 연합뉴스
권력 등에 업은 부부의 치밀한 수법

그런 사람이 사채 시장을 휘저으며 큰돈을 굴리고 있으니 돈이 있는 사람은 믿고 맡기고, 당장 자금이 급한 기업인들은 달려가 우선 변통받고 어음을 써주었던 것이다. 당시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어음 유통 규모가 7천1백11억원, 이 중 어음 사기에 해당하는 액수만 6천4백억원이었다. 시장은 패닉(공황)에 빠졌다.

너도나도 어음을 은행으로 가져가 만기가 도래한 경우 환금을, 아직 기한이 남은 경우 할인을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지급 능력이 없는 회사들이 줄지어 부도를 내고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대통령의 친인척인 장영자와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국회의원 출신의 이철희, 이 두 사람의 신분과 이름이 사업 자본이고 기술이고 상품이었다. 이들은 이런 권력과 배경을 이용해 은행에서 거액의 편법 무담보 대출을 받아 그 돈을 자금 회전이 아쉬운 기업인들에게 빌려주면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결코 약속한 기일 내에는 유통시키지 않는다는 약속하에 대출액의 2~9배에 이르는 거액의 어음을 받았다.

그런데 장영자·이철희 부부는, 자신들의 권력과 배경을 믿는 자산가들에게 이 어음들을 할인해 파는 수법으로 총 1천4백여 억원을 앉은 자리에서 챙긴 것이다. 검찰 수사에서 이들은 “경제는 유통이다”라며,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음이 계속 유통되면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적정한 시기에 자신들이 회수하면 아무 문제없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수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어음 환금이 시도되면서 공영토건·일신제강 등 이름 있는 중견 기업들이 도산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문제가 불거져 수사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법정관리로 넘어간 공영토건 채권관계인들이 채무액 정리 계획안을 협의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지하경제가 집어삼킨 금융과 산업

장영자·이철희 부부 사기 사건은 당시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금융 사기 사건’으로 불렸다. 사기 액수도 천문학적이거니와 부부의 사기 행각의 결과로 공영토건과 일신제강 같은 건실한 상장 기업 2개가 망해버렸고, 라이프주택·삼익주택·해태제과 등 이름만 대도 다 아는 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이들 기업의 주거래 은행이었던 조흥은행과 상업은행의 행장들이 구속되는 등 금융권 역시 크게 흔들렸다. 가히 두 명의 ‘권력형 범죄자’들이 운용한 ‘지하경제’가 공개된 시장의 산업과 금융을 집어삼켜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파장은 주식시장의 교란 및 대량 실직 등 일반 서민 경제에까지 미쳤다. 당시 9천4백명의 소액주주가 전 재산을 들여 보유하고 있던 주식들이 모두 휴지 조각이 되는,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생계 수단과 삶의 터전을 잃고 길바닥으로 나앉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시민들의 분노와 의혹은 대통령 영부인 등 권력의 핵심부로 향했고, 서둘러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검찰의 초기 축소 수사 의혹에 대한 책임을 물어 연이어 법무부장관을 두 번이나 경질했고,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권정달 사무총장이 물러났으며,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씨를 비롯해 32명이 구속되었다.

장영자·이철희 부부는 모두 사기 범죄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씩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철희는 1991년, 장영자는 1992년에 형기를 각각 5년, 6년 남기고 가석방되었다.

장영자·이철희 부부는 출소한 지 2년 만인 1994년, 다시 1백40억원대의 어음 사기 사건으로 구속되어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98년 8·15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왔다. 이번에는 장영자에게 놀아난 서울은행장과 동화은행장 및 두 은행의 상무이사 3명이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장영자·이철희 부부의 사기 행각 때문에 김영삼 대통령이 도입한 ‘금융실명제’의 그룹망에 걸린 것이다. 그 이후, 다시 출소한 지 2년 만인 2000년 5월에도 2백20억원대의 이른바 ‘구권 화폐’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됨으로써 세 번째로 복역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까지 범행에 끌어들였다.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받자 장영자는 ‘억울하다’며 항소했고, 항소심을 담당한 서울고법 민일영 부장판사는 선고 전에 이례적으로 ‘장씨는 이미 사기죄로 실형을 살고도, 가석방이나 형 집행정지로 잠시 자유의 몸이 된 틈을 타 범죄를 저질렀다. 80평 호화 빌라에서 6~7명의 비서를 두고 캐딜락 등 고급 차를 타고 다니며 사기를 일삼은 장씨에게, 죄를 짓지 않고 올바로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과연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내용이 담긴 장문의 당부의 글을 읽어주었다.

장영자는 다시 판결에 불복하고 상고를 제기했지만 대법원에서는 이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들 부부에게 ‘처벌의 범죄 억제 효과’는 딱 2년간만 작용하는 듯했다.

장영자는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재학 시절 ‘미모와 재능, 언변 등이 가장 뛰어난 학생’인 ‘5월의 여왕, 메이퀸’에 선발된 재원이었다. 너무 일찍 유명해진 탓이었을까? 1966년 1월, 졸업을 한 달 앞두고 결혼한 장영자는 채 몇 년을 함께 살지 못하고 이혼한 뒤 1977년 돈 많은 사업가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 생활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파경에 이르렀다. 이 두 번의 이혼에서 얻은 5억원의 위자료를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해 큰돈을 번 장영자는 사채 시장에 뛰어들어 ‘큰손’이 된다.

장영자는 1981년에 자신보다 스물한 살이 많은 아버지뻘인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과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시 경력 10년의 교사 월급이 50만원이었는데, 두 사람의 결혼식에 1억원이 들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의 인연은 사실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뛰어난 미모와 언변 덕에 사교계를 휘어잡던 장영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였다는 소문까지 돌던 사람이었는데, 돌연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던 것이다.

2000년 6월2일 구권 화폐 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장영자씨를 구속 기소한 후 검찰 직원이 압수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권력형 가족 사기단’의 최후

그런데 당시 막강한 권력자였던 중앙정보부 차장 이철희가 장영자를 도와줘 4개월 만에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야망과 욕심에 사로잡힌 미모의 젊은 이혼녀와 권력의 주변부로 물러나 앉은 늙은 남자 사이의 ‘로맨스’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금융과 산업에는 장차 ‘재앙’이 될 만남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추악한 부부’ 사이의 정은 애틋했다. 주로 이철희가 먼저 가석방으로 나오고, 주범인 장영자가 뒤늦게 출소하는 일이 반복되었는데, 그때마다 먼저 출소한 이철희가 장영자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 인근에 방을 구해 묵으며 옥바라지를 하면서 장영자의 조기 출소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곤 했던 것이다.

장영자·이철희는 수많은 서민의 삶과 가정을 파괴하고 짓밟았으며, 기업들을 도산하게 하고 은행과 금융권을 뒤흔든 초대형 금융 사기범들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제대로 참회하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 적이 없다.

늘 자신들이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고, 처벌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더라면 부도를 막고 경제를 활성화시켰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사기 친 돈으로 하루에 수천만 원(당시 화폐 가치)을 물 쓰듯 쓰는 초호화판 생활을 했고, 가석방으로 출소하자마자 또 다른 사기 범죄 계획을 세우고 저질렀다.

부산 범일동에 있는 속칭 ‘장영자 건물’이 15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최근 공사를 재개했다. ⓒ 연합뉴스
현대판 ‘장영자 사건’들

그들의 범죄 행각에는 늘 대통령 등 ‘권력’과의 관계가 수단으로 내세워졌다. 결국 진정한 벌은 ‘하늘’이 내리는 것일까? 말년에 이철희는 노환에 시달리고, 그들이 자랑하던 유명 탤런트 사위는 암으로 사망했다. 한때 사기 범죄에 끌어들이기는 했지만, 두 부부가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던 아들은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 뒤 해외를 전전하다 ‘대뇌수축증’이라는 희귀병을 얻어 오랜 투병 생활을 해야 했다.

아들 이씨 역시 유명 여성 연예인과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가 아들까지 낳았지만, 결국 ‘범죄자 집안’의 며느리가 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여성 연예인이 결별을 선언하고 아이를 데리고 사라져버렸다. 나중에 이 아이는 부친과 조부모에게 돌아오게 된다.

20여 년간 권력을 내세운 초대형 금융 사기 사건을 반복해서 저지르며 여러 차례 세상을 뒤흔든 장영자·이철희 부부는 대한민국 금융 사기범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이들의 수법을 모방한 사기 범죄들이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독재 정권이 숨겨둔 ‘비자금’을 세탁한다며 거액을 편취한 사건, 금융기관의 대출 알선을 빙자한 사기, 수조 원을 편취한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범’ 조희팔 등 다단계 사기범들 역시 장영자·이철희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또, 2011년에 발생한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현대판 장영자 사건’이라고 불리는 등 대형 금융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장영자·이철희라는 이름은 유행가 가사처럼 반복 재생된다.

 

컴퓨터 악성코드를 유포한 뒤 개인정보를 빼내는 ‘파밍 수법’에 사용된 대포통장과 압수물. ⓒ 연합뉴스
‘도대체 왜 그 빤한 사기 수법에 당할까?’ 피해를 겪어보지 못한 분들의 궁금증이다. 다단계, 보이스피싱, 금융 사이트 파밍(farming) 등 끊이지 않고 모습을 달리하며 계속되는 사기 범죄. 그 피해자 중에는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도 있다.

‘피해자가 멍청해서’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사기 범죄에 피해를 입게 되는 데는 매우 고전적인 심리적 장치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기대 심리, 자기 확신, 경쟁 심리, 신뢰의 근거 그리고 급박성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혹시’ ‘행운’ ‘남다른 기회’에 대한 기대 심리가 있다. 범죄만 생각하는 사기범들은 그 당시 언론 보도나 사회 상황 등을 살핀 후 사람들이 ‘기대 심리’를 가질 만한 대상과 이야기를 준비한다.

사기 범죄자들이 공격하는 두 번째 대상은 ‘난 똑똑해서 바보처럼 당하지 않아’라는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이다. 그들을 대할 때는 ‘확인해봐’ ‘싫으면 말고’ ‘자신이 없군요’ 등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자기 확신에 빠진 사람들은 주변 지인에게 묻고 확인하는 과정을 생략해버리게 된다. 세 번째 사기 범죄의 기제는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갑니다’라며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다. 특히, 경쟁자나 업체가 있는 대상은 더욱 당하기 쉽다. 이쯤 되었을 때 피해자가 믿을 수밖에 없는 ‘신뢰의 근거’를 들이댄다. 국가 기관, 언론이나 방송, 유명 학자의 말, 혹은 초기에 이자나 수익을 제때 약속대로 주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빨리 결정해야 해’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큰 이익을 놓치거나 손해를 보게 돼’라며 재촉하면 상당수의 피해자가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걸려들게 된다. 그중에서도 대통령 등 권력자의 친인척을 빙자하거나, 실제 친인척을 내세운 ‘권력형 사기’는 이 모든 ‘사기 범죄의 심리’ 기제들의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러다 보니 피해액도 크고 피해자 수도 많아 한 번 발생하면 국가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가 된다. 권력형 사기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통제, 민주주의 확산을 통한 투명화로 사람들의 ‘기대 심리’를 없애야 한다. 여전히 발생하는 권력형 사기, 박근혜 대통령 정부에서는 뿌리 뽑히기를 기대한다.


 

Series) 표창원 교수의 사건 추적


1. 악마가 된 외톨이의 빗나간 분노의 돌진
- 1991년 10월 여의도 광장 차량 폭주 사건

2. 미군에 희생된 꽃다운 청춘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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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자친구의 환심 사려 끔찍한 범행
- 1990년 유치원생 곽재은양 유괴·살해 사건

4. 만삭의 여인이 벌인 잔혹한 범죄
- 1997년 8월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사건

5. 자녀 학대가 부른 끔찍한 패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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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희 되도록 못 버린 ‘그놈의 도벽’
- 권력자 울리고 서민 웃겼던 대도 조세형 사건

7. 악마로 변한 살인자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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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살인자' 꿈꾼 소년의 잔혹한 범행
-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다 잠자던 동생 도끼로 내리쳐

9.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
- 아홉 살 때 성폭행당한 여성이 20년 후 가해자 살해 ‘아동 성폭력’ 심각성 알린 김부남 사건

10. '짐승' 의붓아버지 죽인 비운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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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유전 무죄, 무전 유죄" 탈주범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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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법대 여대생 꿈 짓밟은 판사 장모의 편집증
- 미행과 감시, 위협하다 킬러 고용해 살해

13. 기막힌 살인 누명 쓴 '억울한 3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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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무고한 인명 앗아간 '지옥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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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탐욕스런 선수들의 썩은 스포츠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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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무참하게 행복 짓밟힌 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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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조폭들의 객기가 부른 '희대의 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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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시신 없는 살인' 노린 파렴치 교수의 범죄
- 2011년 부산 대학교수 부인 살해 사건 / 내연녀와 치밀하게 공모한 후 바다에 시신 유기

19. 정치 조폭 ‘용팔이’의 각목 난동
-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 / 전두환 정권 사주받은 장세동 개입

20. 금융 시장 짓밟은 ‘가장 못된 손’
- 1982년 장영자·이철희 부부 어음 사기 사건

21. 살인자와 안기부의 더러운 공모
- 1987년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아내 목 졸라 죽인 범인이 ‘반공 투사’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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