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를 다음 대통령으로!”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2.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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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벌써부터 차기 대권 레이스 ‘후끈’

2월1일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국무부 청사 로비에 섰다. 직원 1천여 명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퇴임식이 진행되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임명되었던 국무장관 4년을 마감하는 자리였다. 단상에 선 힐러리는 “정말 국무장관으로서 자랑스러웠다. 여러분들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내 진풍경이 펼쳐졌다. 클린턴 장관을 배웅하러 나온 국무부 직원들은 떠나는 힐러리를 향해 “2016! 2016!” “우리 모두가 당신을 그리워할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2016’은 미국에서 다음 대선이 열리는 해이다. 국무부 직원들은 힐러리가 다음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강력하게 내비친 셈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퍼스트레이디로서 백악관에서 8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남편의 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또다시 백악관에 입성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016년 대선 출마에 관한 질문에는 공식적인 반응을 유보하며 “휴식을 취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는 미국인들은 없다. 대선 출마에 가장 중요한 밑천인 자금 모집은 벌써 시작되었다. 힐러리를 지지하는 슈퍼팩(SUPER PAC·슈퍼 정치행동위원회)은 ‘힐러리를 위한 준비(Ready for Hillary)’라는 이름으로 지난 1월25일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등록을 마쳤다. 힐러리가 출마 신호만 주면 자금을 모집하겠다고 나설 태세이다.

지난 2월1일 고별식을 가진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떠나는 장관을 배웅하기 위해 1천여 명의 직원이 국무부 로비를 가득 메웠다. ⓒ EPA연합
민주당 지지자 82%, “차기 후보는 힐러리”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들의 67% 이상은 차기 대통령 후보로 힐러리를 지목하고 있다. 이미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올라선 상태이다.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지원 사격에 적극적이다. 힐러리가 최근 뇌진탕으로 쓰러진 뒤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자 그는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했다. “힐러리는 아마 1백20세까지 장수할 것이고, 남편 세 명은 더 둘 수 있을 것이다.”

언론들은 민주당 경선의 가장 큰 변수로 ‘힐러리의 출마 여부’가 아닌 ‘힐러리가 언제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것인가’를 꼽고 있다. 힐러리 외에 민주당 내에서는 조 바이든 부통령,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 마틴 오말리 메릴랜드 주지사 등이 차기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힐러리가 먼저 출마 의사를 표명해야 움직일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82%라는 어마어마한 당내 지지도를 업고 있는 힐러리가 출마에 관한 입장을 밝히기 전까지 자금을 쥔 큰손들이 다른 주자들에게 선거 자금을 내놓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확실한 차기 대권 주자가 있는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의 앞날은 어둡다. 경합 주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치다 결과적으로 전패한 2012년의 대선 결과는 공화당이 되돌아보기 싫은 과거이다. 하지만 더 깊은 고민은 따로 있다. 과거의 실패를 만회할 차기 대선 주자 후보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월21일 시사주간지 <타임>은 표지 모델로 건장한 체구의 남성 사진을 올렸다. 커버 카피는 ‘보스(The Boss)’였다. 얼핏 보면 마피아 두목을 다룬 기사 같지만 보스의 주인공은 뉴저지 주의 크리스 크리스티 주지사였다. 그가 힐러리에 대적할 수 있는 차기 공화당 대선 주자 반열에 올라서 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실제로 크리스티는 ‘퍼블릭폴리시폴링(PPP)’이 미국 유권자 1천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4%를 얻어 힐러리(44%)와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후보가 될지도 모를 크리스티의 인기 상승은 역설적으로 오바마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한때 오바마 대통령을 “시카고의 어느 시골 보안관감도 안 된다”고 비판했던 그였다.

그러나 대선 직전 자신이 지사로 있는 뉴저지 주가 허리케인 ‘샌디’로 초토화된 뒤 이곳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의 위기 대처 능력을 극찬하면서 공화당 지도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발언과 피해를 극복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그의 인기는 오히려 급상승했다. 크리스티는 워싱턴의 정치권이 복구 지원법을 늑장 처리하자 “보기에도 역겹다”고 정면으로 날을 세울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크리스티, ‘오바마 조력자’로 인기 상승

크리스티 주지사가 전국구 스타가 된 것은 ‘오바마 저격수’였던 그가 대통령과 초당적 협력을 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체중이 대통령감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나는 누구보다 건강한 뚱보”라고 말하며 자신을 둘러싼 비난에 거침없이 반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참패한 공화당 지도부는 크리스티가 오바마 대통령을 두둔한 발언들을 두고 비난의 화살을 쏟아냈다.

크리스티의 급부상을 공화당 내부에서는 아직 꺼림칙하게 보고 있다. 공화당을 대표해 연두 연설을 한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이나 밥 맥도널 버지니아 주지사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던 폴 라이언 하원의원 등 쟁쟁한 인물들이 호시탐탐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다. 최근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뉴저지 주민들은 크리스티에게 74%라는 ‘주지사 지지율’을 선물했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크리스티가 내부 경선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힐러리는 최강의 2016년 민주당 대선 카드이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는 2차 대전 이후 최고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지도를 빼더라도 공화당을 포함해 어떤 후보보다 경력과 자금 모금 능력, 지지자와 참모진 등에서 막강한 진용을 갖추고 있다. 여전히 인기가 식지 않은 전직 대통령이 남편이라는 것도 장점이다. 첫 여성 대통령의 출현을 바라는 여성 유권자들의 지원도 있고, 오바마 당선의 디딤돌이 된 소수계 표밭에다 백인 표의 상당한 부분도 끌어올 수 있는 인물이다. 백인 남성 표 또한 오바마 대통령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016년 대선마저 놓친다면 영영 집권의 기회를 상실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새어나오고 있다. 힐러리라는 강적에 대적할 만한 인물이 2~3년 내에 떠오를 가능성도 극히 작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힐러리에게 장밋빛 미래가 완벽히 보장된 것은 아니다.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순간부터 거품이 빠지면서 지지율은 내려갈 것이며, 2016년이면 69세가 되는 나이 그리고 건강 악화설 등은 여전히 약점으로 남아 있다. 아직 갈 길이 먼 대선 레이스 동안 공직에서 벗어난 그로서는 여론의 관심을 꾸준히 받아야 한다는 숙제도 안고 있다. 오바마 2기에 대한 미국민의 평가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시점에서는, 모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2016년 공화당의 대권 탈환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바마의 집권 2기가 막 시작된 지금,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는 이미 미래 권력을 향한 레이스가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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