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에 파묻힌 중국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3.02.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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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2억명 먹을 수 있는 5천만t 버려져

중국 내륙 충칭(重慶) 시에서 은행원으로 근무 중인 정이 씨(여·27)는 끔찍한 춘제(春節) 연휴를 보냈다. 지지난해 결혼 후 처음으로 하이난다오(海南島)에 사는 친정 부모님이 방문하셔서 어느 때보다 기뻤지만, 생활 쓰레기로 인해 큰 곤혹을 치렀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춘제 연휴를 맞아 아파트관리소 직원 대부분이 고향에 돌아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주민들은 평소처럼 쓰레기를 문 앞이나 1층 복도 내 대형 쓰레기통에 넣었다. 문제는 새벽과 저녁마다 돌아다니며 이를 수거하고 처리하던 환경미화원과 경비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춘제 기간 중 평소보다 늘어난 음식물 쓰레기가 심각했다. 낮 기온이 15℃까지 올라가자 쓰레기 냄새가 2층에 사는 정 씨가족을 괴롭혔다. 정 씨는 “일부 이웃은 쓰레기를 남의 집 문 앞에 몰래 버려놓고 가기도 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중국 산둥 성 칭다오 시의 쓰레기장 모습. ⓒ EPA연합
“대접받는 음식은 남겨야 미덕”인 식습관 탓

수년 전부터 중국은 매일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생활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충칭·쑤저우(蘇州)·원저우(溫州) 등 일부 도시에서는 이미 처리 능력이 한계점에 다다랐다. 특히 생활 쓰레기 중 음식물 쓰레기의 양이 폭증하고 있다.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단지 지난 2월12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중국에서 1년 동안 버려지는 음식물이 5천만t으로 추산된다. 이는 2억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며, 돈으로 환산하면 1백95억 위안(약 34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을 뿐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중국인의 식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약 중국에 살면서 중국인을 집으로 초대할 경우 한국처럼 준비했다가는 큰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대접받는 음식은 다양하고 풍성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인의 생각이다.

만약 몇몇 고기 요리에 다양한 채소 위주의 밑반찬을 내놓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잘 먹었다는 인사는 고사하고 너무 야박한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기 십상이다. 심지어 “쩨쩨하다”는 험담까지 들을 수 있다. 이는 손님을 대접할 때 절반가량 남길 만큼 요리를 넉넉히 준비하는 중국인의 풍속에서 비롯되었다. 대접받는 음식을 눈에 띌 정도로 남겨야 예의이고 미덕이다. 만약 손님이 준비한 음식을 모두 깨끗이 먹어치우면, 자리를 마련한 중국인은 안절부절못한다. 준비와 정성이 부족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이런 허례허식이 통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1950년대 사회주의 정권 수립 후 ‘인민공사화(人民公社化)’가 진행되고 대약진운동이 시작되자, 중국은 극심한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1966년부터 촉발된 문화대혁명은 중국 경제를 빈사 상태로 내몰았다. 대약진운동 시기에는 2천만~4천만명,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수백만 명이 아사(餓死)할 정도였다. 개혁·개방 정책 시행 후 10여 년간 식량 공급 상황은 개선되었지만, 물자가 풍족한 편은 아니었다. 1996년 필자가 처음 중국에 왔을 때만 해도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깨끗이 싸가는 일이 관행이자 습관이었다. 손님을 청해 다 먹지 못한 음식도 냉장고에 보관한 뒤 가족끼리 두고두고 먹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농산물 가격 상승을 지속적으로 억제하고,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정식 가입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전 세계에서 각종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경제가 급성장해 주머니가 넉넉해지자 체면과 위신을 앞세우는 중국인의 습성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특히 접대 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중국에서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국영기업과 민영기업 가릴 것 없이 접대할 때 손님 등급과 인원수에 맞추어 얼마나 좋은 식당에서 많은 음식 수와 비싼 술을 내놓을지 내부적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음식은 고기류·채소류·탕류 등 종류별로 세세히 나눈다. 술도 유명 주류회사에서 특별 주문해 구입하는 이른바 ‘터궁주(特供酒)’만을 엄선해 내놓는다.

후난(湖南) 성의 한 부(副)현장은 “한 해 손님 접대로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50만 위안(약 8천7백만원)이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공금으로 쓰는 회식이나 비즈니스를 위한 접대에서 생기는 음식물 낭비가 특히 심하다. 올 초 중국요리협회가 100대 식당을 대상으로 낭비 실태를 조사해 보니 도를 넘게 주문해 음식을 낭비하는 테이블의 80%는 기관이나 회사의 회식이나 사업상 접대 차원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특히 고급 식당일수록 음식물 낭비가 심했는데, 고급 호텔 식당과 특급 식당에서는 주문한 음식의 20% 이상이 버려졌다.

‘쓰레기 줄이기’ 지도 나선 시진핑

지난해 10월 중추절과 국경절 연휴 8일간 중국은 한 차례 쓰레기 대란을 맞은 바 있다. 베이징의 상징인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는 하루 8t의 쓰레기가 발생했다. 전년 대비 25% 증가한 양으로, 4백60명의 환경미화원이 이를 처리하느라 애를 먹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하이난다오 싼야(三亞)의 다둥하이(大東海) 해변에서는 하루 저녁에만 50t의 쓰레기를 치웠다. 불과 3㎞ 길이의 백사장과 개펄에서 쏟아져 나온 양이다. 쓰레기 대부분은 해변을 찾은 관광객들이 버린 음료수 병과 술병, 음식물 등 각종 폐기물로, 해변 관리직원 6백여 명이 밤새도록 수거작업을 벌어야 했다. 

올해 춘제 연휴도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연초라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이슈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중국 당국도 중국인의 일그러진 쓰레기 투기 행태나 음식 문화를 바꾸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인민일보는 사설에서 ‘관광지에서는 찬미와 감동은 남겨두고 가되 쓰레기는 가져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근검절약을 강조하면서, 낭비 풍조를 없애기 위해 접대 경비를 줄이거나 사용처 관리를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식당 음식 1인분의 분량을 줄이거나 음식물 포장을 간소화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쓰레기가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라는 인식이 중국인들 사이에 조금씩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음식 낭비가 중국인의 습성과 연관 있고 다른 생활 쓰레기와 분리수거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철저한 인식 변화와 강력한 제도 시행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조만간 중국에서 쓰레기 재앙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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