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만한 ‘음악 차트’ 한국에는 왜 없나
  • 허미선│객원기자 ()
  • 승인 2013.02.2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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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판매 순위도, 디지털 음원 순위도 ‘제각각’

지난 1월14일 발간한 씨엔블루의 네 번째 미니앨범 <리:블루>가 빌보드차트의 월드앨범 2월2일자 주간 차트 1위에 오르며 눈길을 끌었다. 소녀시대 4집 <I Got a Boy>(1월19일자 주간 차트), 슈퍼주니어-M 2집 <Break Down)(1월26일자 주간 차트)에 이어 2013년 들어서만 세 번째이다.

빌보드차트는 미국·캐나다·푸에르토리코 등 미국령의 오프라인 소매점에 깔린 포스 시스템(POS System: 판매시점 관리 시스템, 매상이 발생하는 시점에서 바코드나 OCR 문자 등 기계가 판독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된 상품명이나 가격 등에 관한 데이터를 기계에 판독시켜 데이터 처리를 수행하는 시스템)인 닐슨 사운드 스캔을 통해 수집된 음반 판매 데이터와 방송 횟수 등을 종합해 만들어진다. 1894년 창간한 <빌보드> 잡지가 지면에 1936년 ‘히트 퍼레이드(Hit Parade)’를 게재한 이래 꾸준히 차트 정교화 작업을 해오다 1958년부터 본격 발표하기 시작한 세계 음악 시장의 지표이기도 하다.

노래 과 말춤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가수 싸이의 서울광장 공연. ⓒ 시사저널 최준필
음원으로 재편된 한국 음악 시장

빌보드의 월드앨범 차트는 빌보드가 만들어내는 수십 가지 차트 중 하나로,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앨범의 판매 순위이다. 사실, 싱글 차트 ‘Hot 100’이나 앨범 차트 ‘Hot 200’ 등에 비하면 파급력이 다소 떨어지는 차트이기는 하다. 하지만 <빌보드>가 만든다는 이유만으로도 공신력을 인정받는 차트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빌보드’라는 이름만으로도 권위를 인정받는 ‘공신력’이다.

반면, 한국의 음악 차트는 늘 논란의 불씨가 되곤 한다. 각 차트마다 집계 방식,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새 음반을 발매한 가수의 팬들은 각 차트의 꼭대기에 자신이 지지하는 가수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수학 공식을 방불케 하는 작전(?)을 펼치는 진풍경을 자아내곤 한다. 이에 팬덤들은 진정한 1위를 가리기 위해 결론 없는 갑론을박을 펼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은 발표되는 수많은 차트에 대한 불신감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음악계에는 분명히 다양한 차트가 존재한다. 가장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것은 ㈜한터정보시스템(이하 한터)의 ‘한터 차트(hanteo.com)’이다. 전국의 크고 작은 소매상에 한터가 1994년 자체 개발한 포스 시스템을 제공해 음반이 팔리는 동시에 차트에 반영되는 음반 순위이다. 한터 차트에 대해 한터의 구자각 대표는 “한터 가맹점이 전국 매장의 50%에 이르고, 자체 전산망을 갖춘 국내외 대형 매장과 인터넷 쇼핑몰에서 제공하는 데이터까지 합쳐 전체 판매량의 90% 정도가 집계된다. 나머지 10%는 20여 년간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각종 변수를 고려한 추정치”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일본·베트남 등 해외 가맹점의 판매량까지 반영되고 있다. 한터 차트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인 KBS2 <뮤직뱅크> 순위에 반영되고 있고, 각종 미디어에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한국의 음악 시장이 ‘음반’이 아닌 ‘음원’으로 재편되었다는 데 있다. 2009년 6월 법인을 설립하고 빌보드의 하부 카테고리에 ‘K팝 차트’를 제공하고 있는 빌보드코리아(billboardk.com)의 이희석 이사는 “한국의 오프라인 시장은 이미 무너졌다. 빌보드 본사와 K팝 차트를 처음 논의하던 2009년 음반 판매량은 전체 음악 시장의 7~8%였고, 현재는 3%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오프라인 음반 판매량은 실제 차트에 반영할 집계 자료로서 효용성이 떨어진다”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팬이나 기획사가 한꺼번에 음반을 사들이곤 하니 음반 판매량을 차트에 반영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고 한국 음악 차트 산정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판단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는 허수는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차트의 딜레마이다.

빌보드코리아의 K팝 차트는 디지털 음원만으로 집계된다. 멜론부터 몽키3까지, 합법적으로 저작권 계약을 체결해 디지털 음원을 판매하고 있는 13개 사업자의 판매 데이터로 톱 100을 발표한다. 트래픽에 따라 배점을 차등 적용하며 점유율은 매달 갱신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실제 판매 데이터가 아닌 각 음원 사이트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순위를 근간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멜론·벅스·소리바다·엠넷·KT뮤직 등 디지털 음원 사이트도 각자의 차트를 발표하고 있다. 이들의 순위 역시 제각각이다. 유통뿐 아니라 자체 음원 제작, 가수 매니지먼트 등을 함께하다 보니 자사의 이익을 배제하기란 쉽지 않다. 앨범을 내자마자 바로 차트에 진입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배너 광고 형태의 ‘추천곡’ 등이 순위 차트와 연동되고 있으니 디지털 차트에도 역시 허수가 존재하는 셈이다.

박진 지니웍스 대표(전 SM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총괄이사)는 “몇 시간만 추천곡에 걸려도 순간적으로 30위 안에 진입할 수 있다. 추천곡 제도가 아니면 신인은 100위 안에 들기도 어렵다”라고 전했다. 마케팅 혹은 홍보 활동이 차트에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3사를 통틀어봐야 일주일에 5시간도 안 되는 지상파 음악 관련 프로그램의 진입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음악 시장 구조적 문제 돌아봐야

지상파 중에서는 유일하게 KBS가 음악 순위 프로그램 <뮤직뱅크>를 통해 ‘K차트’를 발표하고 있다. 한터의 음반 판매 차트(5%)와 멜론·벅스·엠넷·올레·소리바다의 스트리밍 및 다운로드·모바일 점수를 통합한 디지털 음원 차트(65%)에 방송 횟수(20%)와 시청자 선호도(10%)를 통합해 산출한다.

이 중에서 방송 횟수는 음악 프로그램을 비롯해 드라마, 예능, 뉴스 등 자사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횟수에 따른 점수로 배율이 20%나 된다. 이 때문에 방송 점수만으로도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의 김명수 부장은 차트의 공신력 논란에 대해 “미디어나 유통사, 영업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에서 자체 발간하는 차트는 자사에 이롭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공신력 확보보다는 사업자의 이익을 목적으로 차트가 이용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음악 유통 기간이 짧다 보니 소비자도, 제작자도 매출 및 인기도와 직결되는 차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전 세계에 불어닥친 K팝 열풍과 ‘싸이’의 성공으로 전 세계적으로 한국 음악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차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K팝의 파이를 더 키우기 위해서라도 공신력 있는 차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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