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소극 대응이 악순환 키웠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3.0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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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거래한 기업이 ‘공정 기업’ 선정되기도

정계와 관계의 ‘재계 때리기’에도 일감 몰아주기 관행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 거래 물량은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공정위의 ‘솜방망이 처벌’을 우선적으로 지적한다. 2011년 말을 기준으로 13대 대기업 MRO(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 업체의 내부 거래 비중은 총 매출액의 72.9%인 4조3천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부당 지원 행위로 적발되어 부과된 과징금은 33억원에 불과했다. SI(시스템 통합) 분야 20개 업체의 내부 거래 규모도 8조원을 넘어섰지만, 과징금은 3백억원대에 머물렀다. 부당 이익에 비해 과징금이 터무니없이 적다 보니 규제를 해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정위는 입찰 담합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기업들을 ‘공정 기업’으로 선정하면서 시민단체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최인숙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은 “공정 기업에 선정되면 과징금을 최대 20% 감면해주고, 공정위 직권 조사도 최대 2년간 면제해주게 된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가 재벌의 부당 거래를 부추기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 등이 재벌그룹의 부당 내부 거래와 편법 증여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에 대해 재계의 생각은 달랐다. 한 대기업의 임원은 “기존의 사업 부서를 분사하는 과정에서 내부 거래가 증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물량까지 일감 몰아주기로 치부하면 사업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일부 학자들 역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 제재는 일정 부분 위헌 소지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2011년 1월 SK종합화학과 SK에너지로 물적 분할되었다. 이 과정에서 13조원의 사내 거래가 자회사 간 내부 거래로 둔갑했다. 현대중공업 계열인 현대코스모 역시 최근 현대오일뱅크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수조 원 규모의 거래 물량이 내부 거래로 바뀌었다. 공정위 역시 100% 모·자 관계에 있는 계열사 간 거래는 묵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재벌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상당수 재벌 기업이 오너 일가 소유 회사에 편법으로 물량을 몰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총수 일가의 회사나 친족 기업과의 거래를 규제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 회사는 계열사의 집중 지원을 받아 급성장하게 된다. 이후 상장을 통해 얻은 시세 차익을 승계 자금에 활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가 최근 잇달아 ‘재계 때리기’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정위는 현재 친족 기업과의 거래 현황까지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정위측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라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공정위 주변에서는 재벌 전담 부서를 부활하는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동수 공정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벌 전담 조직이 없으면 경제 민주화의 핵심인 일감 몰아주기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대기업의 내부 거래가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그에 따라 공정위가 본격적인 제재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폐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일률적인 규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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