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좋은 커피 만들라”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3.0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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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대북·외교 소식통 “북한 권력층, 귀족 생활 탐닉”

김정은 체제의 북한 상류층이 예전보다 더 호화로운 사치 생활을 누리고 있는 정황들이 포착되었다. <시사저널>이 최근 접촉한 정부의 대북 및 외교 소식통, 해외 주재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도 북한 최고 권력층은 이른바 ‘사회주의 귀족 생활’을 탐닉하고 있다.

정부의 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최근 해외 주재원들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달했다. 바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커피를 만들어라”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북한에서 커피는 단순한 기호 식품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맛’으로 인식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없다. 함부로 마시기도 힘들지만, 구하기도 힘든 식품인 것이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핵심 고위층과 외교관, 해외 파견자들 사이에서는 1990년대 이후부터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아침 식사 때 우유와 버터, 빵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부인 리설주씨와 함께 지난 2012년 5월 평양 창전거리에서 개업을 앞둔 해맞이식당을 돌아보고 있다. ⓒ 연합뉴스
해외 바리스타·목욕 전문가 기술 전수

정부의 한 외교 당국자는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 커피업계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유명한 커피 바리스타(커피 제조 전문가)와 고급 커피 제조용품 등을 수소문하러 다닌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북한 사람들은 상부의 지시라면서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커피와 가장 유명한 커피 바리스타를 찾아야 한다’며 동분서주했다. 실제로도 몇 명을 방북시켜 수만 달러를 주면서 며칠 동안 북한 사람들에게 커피 제조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북한 상류층에 ‘커피 열풍’이 불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지난해 5월24일 평양 창전거리에 개업한 슈퍼마켓 ‘해맞이식당’을 방문해, 매장에 진열된 커피 제품을 둘러보면서 “커피점(제품 매장)을 특성에 맞게 잘 꾸렸다”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평양에 커피숍 ‘비엔나커피점’을 개장하는 등 부유층 내에서 커피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한 대북 소식통은 “평양 주민의 월급은 3천~8천원 정도 되는데, 커피 한 잔 값은 3천원에 달한다. 이에 평양 주민들 사이에서 ‘커피를 사서 마실 수 없는 현실을 (당국이) 너무 모른다’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 핵심 권력층의 이발과 미용, 양복, 목욕, 애완견 등 일상생활 전반에도 ‘자본주의 문화’가 스며들고 있다는 전언이다. 북한 당국은 유럽 주재원들을 통해 ‘세계 제일의 커피 바리스타’ 모시기에 열을 올리는 한편, ‘이발사 모셔가기’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남아 지역으로 자주 출장을 가는 우리나라 미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1월 싱가포르 미용업계 관계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들이 했던 말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무렵 북한 사람들이 ‘최고위층의 지시’라면서 고위 간부 및 부유층들만을 상대하는 해외의 초일류급 이발사를 북한으로 불러들였다. 그 이발사는 북한의 이발사들에게 최신 기술을 전수해주는 대가로 수만 달러를 받았다.” 북한은 또 프랑스, 독일, 일본 등지에서 샴푸·린스·비누·염색약·헤어드라이기·미용 가위·화장솜 등 고급 미용 용품을 수천 달러어치 사들여갔다고 한다.

김정은 제1비서가 2012년 11월경 준공을 앞둔 유경원을 시찰했다. ⓒ 연합뉴스아래 사진은 평양 창전거리의 커피점. ⓒ 연합뉴스
애완견·승마용 말 수입도 추진

지난해 10월 말에는 세계적인 패션의 고장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홍콩 등지에서 ‘명품 수제(手製) 양복 장인’을 초청하려고 열을 올렸다고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양복 전문가 초청을 위해 간부들을 파견하는가 하면, 현지 북한 외교관까지 동원하는 바람에 해외 패션계에 북한의 행태에 대한 소문이 쫙 퍼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특명’을 받은 북한 간부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양복사를 방북시키고, 고급 양복지와 재단 기구들을 사들이는 데 혈안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중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의 등밀이·발 손질 등 ‘목욕 기술 전문가’를 일주일 동안 초청해 목욕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와 관련해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지난해 11월 평양에 개장한 종합 위생·문화 시설인 ‘유경원’에서 서비스하게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평양 부유층들이 이곳에서 목욕, 사우나, 마사지 등을 즐긴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유경원에는 목욕탕, 식당, 체육 시설 등이 설치되어 있다. 지난해 5월24일, 김정은 제1비서는 유경원 건설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관계자들에게 “목욕탕 안에 소나무 사우나와 초음파 욕조 공사를 잘 마무리 지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최근에 유경원 목욕탕을 다녀온 한 외국인 관광객은 “유경원의 목욕비가 5달러60센트 정도 되는데, 목욕탕 안에 텔레비전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놀랐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은 김정은과 특권층용으로 추정되는 고급 애완견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김정은 비서가 선호하는 애완견 ‘시추’ 등을 지속적으로 들여가고 있다. 또한 중국·러시아 등지에서는 수십만 달러를 주고 우수 종자의 승마용 말을 구입하려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지난해 11월19일자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비서는 지난해 11월 평양에 있는 기마 중대를 방문해 직접 말을 타보고 “주민들과 청소년들의 체력 단련을 위해 승마 운동을 장려하고 시설을 잘 보장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김정은 비서가 ‘북한의 황태자’로 성장하면서 자본주의 문화를 향유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내에 서구식 기호 식품과 서비스, 취미 물자를 도입하고 있다. 겉으로는 ‘민생 정치’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평양 주민과 당 간부 등 기득권층이 호화·사치 생활을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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