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이 사람을 뛰게 만든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3.0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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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올 때 뛸까, 걸을까…걸음걸이의 과학

‘비가 올 때 뛰는 것과 걷는 것 중 어느 쪽이 비를 덜 맞을까?’

이는 심심찮게 회자된 의문이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도 모르게 뛰게 된다. 왜 걷지 않고 뛸까. 아마도 오랜 경험을 통해 뛰어가는 것이 걷는 것보다 비를 덜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의문에 대해 미국 국립기상센터의 피터슨과 윌리스 박사는 평균 걸음 속도를 1.5m/초, 뛰는 속도를 4m/초로 잡고 계산해 ‘비 오는 날은 뛰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슬비를 맞으며 100m를 가는 경우 걷는 사람이 뛰는 사람보다 16%나 비를 더 맞고, 비가 많이 올 때는 걷는 사람이 23% 더 맞는다. 몸을 수그리고 가는 경우에는 걷는 사람이 뛰는 사람보다 36%나 비를 더 맞는다.

이러한 계산이 맞는지를 입증하기 위해 피터슨과 윌리스 박사는 실제로 체격이 비슷한 두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고 100m를 한쪽은 걷고 한쪽은 뛰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 후 비에 젖은 옷의 물의 무게를 잰 결과, 걸은 쪽에서는 2백20g, 뛴 쪽에서는 1백30g의 물이 나왔다. 두 박사의 계산이 옳았음이 입증된 셈이다.

ⓒ 일러스트 권오환
힘 적게 들이며 걷거나 뛴다

그렇다면 비가 오지 않는 보통 때, 사람들은 언제 걷고 언제 뛸까?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걷거나 뛰면서 생활한다. 이렇게 걷고 뛰는 상황을 오랫동안 관찰한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기계공학과의 마노 스리니바산(Manoj Srinivasan) 교수팀은 사람들의 걸음걸이 패턴을 알아내, 가장 효율적으로 걸을 때와 뛸 때를 선택한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신호등 거리를 건너야 하는 경우,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는 대부분 느긋하게 걷는다. 신호등 눈금 칸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건너야 할 거리가 2m 정도 남았다면 사람들은 그냥 걸어간다. 2m 거리는 성인의 경우 두세 걸음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3m 정도를 남겨두었을 때는 뛰기 시작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일정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는 속력을 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걸음 패턴은 교수팀의 러닝머신 실험을 통해서 밝혀졌다. 러닝머신 위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속도로 뛰거나 걷는다. 처음부터 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천천히 걷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뛰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평균적으로 1초에 2~3m 정도 이동해야 할 경우, 즉 제한된 시간 안에 일정한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는 걷기와 뛰기를 번갈아 사용하는 패턴을 나타냈다. 보통 속도가 초속 2.3m보다 빨라지면 뛰고, 2.3m보다 늦어지면 걷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뛸 때 교수팀은 산소 소모량과 심박수, 호흡수, 호흡량, 보폭 등을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1초에 2.3m라는 기준점에서 무의식적으로 걷고 뛰는 것이 우리 몸과 뇌의 에너지 소모량을 가장 적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즉, 뛰는 것과 걷는 것의 에너지 소비 패턴 차이 때문에 걷기와 뛰기를 번갈아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힘을 적게 들이고 이동하기 위한 걸음걸이 패턴이며, 이러한 수치는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라고 스리니바산 교수는 밝혔다.

그러면 러닝머신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도 사람들은 똑같은 걸음걸이 패턴을 보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교수팀은 36명의 학생 참가자를 선발해, 2백50m의 거리를 정해진 시간 안에 딱 맞게 들어오도록 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참가자들에게는 스톱워치가 제공되었다. 물론 걷거나 뛰거나 하는 것은 참가자들 마음대로이고,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조건만 만족시키면 되는 실험이다.

교수팀은 실험 참가자들의 걷는 패턴을 측정했다. 그 결과 러닝머신에서의 실험 때와 거의 같은 패턴을 나타냈다. 정해진 시간에 딱 맞게 들어오기 위해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1초에 2m보다 느리게 이동해야 할 때는 걷고, 1초에 3m보다 빨리 움직여야 할 때는 뛰고, 이 중간 속도에서는 걷기와 뛰기를 번갈아 사용했다. 처음부터 막 달리다가 느릿느릿 걸을 수 있고, 시간을 계산해 일정한 보폭으로 빠르게 걸을 수도 있고, 다양하게 패턴을 정해 여러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학생들의 걸음걸이 패턴은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스리니바산 교수는 “사람들의 보폭이나 빠르기, 걷는 걸음의 각도 등은 항상 에너지 소비를 적게 하기 위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도 모르게 힘을 가장 적게 들이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는 사람이 좋아하는 보행 습관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 이동 패턴, 로봇이나 의족에 응용 가능

한편 스리니바산 교수는 시간이 미리 정해져 있는 신호등이나 러닝머신이 아닌 일상의 상황에서 뛰는 것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출근 시간에 늦어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뛰기 시작하는 것은 집에서부터 게으름을 피워 늦게 출발했기 때문이라는 것. 출근 시각 안에 도착하기 위해 뛰는 쪽이 유리한 것은 맞지만, 보통 때의 걸음걸이 패턴이 아닌 방식으로 냅다 뛰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크므로 우리 몸과 뇌가 가장 적은 에너지를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빠르게 걷거나 달릴 때는 몸뿐만 아니라 뇌가 튼튼해진다. 다리의 근육으로부터 시작된 자극을 뇌가 가장 잘 감지하기 때문이다. 다리가 움직이고 있으면 뇌도 주기적으로 ‘깨어’난다. 따라서 달리기를 하면 뇌도 따라서 뛰는 셈이다. 걷는 것과 뛰는 것은 건강적인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올바르게 걷는 것은 건강함과 직결되고, 올바르게 뛰는 것은 건강 증진과 직결된다.

달리기를 할 때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오래 달려야 뇌를 단련시키는 효과가 커진다. 보통 달리기는 30분, 빨리 걷기는 1시간 이상을 넘기는 것이 좋다. 이 경우 일주일에 소모하는 열량은 약 3천5백 칼로리 정도가 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 정도 열량을 소비한 사람은 3백 칼로리를 소비한 사람보다 인지 기능이 떨어질 확률이 26% 정도 낮다. 이런 강도의 운동이 힘들다면 보통 걸음으로 매일 1시간 반 정도 걷는 것이 좋다. 매일 3km 이상을 걷는 사람은 치매에 걸릴 위험이 70% 낮아진다. 오래 걸을수록 뇌 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이렇듯 어떤 특정 상황에서 걸음걸이의 속도를 조절해 힘을 가장 적게 쓰는 방법으로 이동한다. 그 적당한 속도를 알아낸 스리니바산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로봇의 걸음걸이나 에너지 소모량을 가장 적게 하는 의족(義足)을 만드는 데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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