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의 귀환이냐, 새 정치 바람이냐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3.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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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재·보선 지역구 세 곳 관전 포인트

3월3일 오전 국회 정론관. 민주통합당 핵심 당직자가 “4월 재·보선은 그냥 넘어가나 했더니…”라며 한숨을 쉬었다. 무소속 송호창 의원이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서울 노원 병 재·보선 출마 사실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끝낸 직후였다. 1백27석을 가진 제1 야당이면서도 대선 패배 이후 여전히 제자리를 못 찾고 있는 민주당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긴 한숨이었다.

아직 4월 재·보선 지역구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진 않았지만 10여 곳에 달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3~4곳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의 정치적 의미가 적잖이 줄어든 상황이지만, 안 전 교수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급반전되고 있다. 당장 안 전 교수의 출마는 ‘안철수 신당’의 현실화와 맞물릴 공산이 크다. 민주당에겐 존립 자체의 위협이다. 현재 진행 중인 당 쇄신 작업과 5·4 전당대회를 통해 유능한 민생 정당으로 재탄생하지 못할 경우 안철수 신당이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비주류 중진인 김영환 의원은 “민주당이 안철수 신당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안철수 신당 쪽에 마음이 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한 얘기다.

김무성 전 의원·김정길·정동영 전 장관·이완구 전 충남도지사(왼쪽부터)등 여야 거물급 인사가 4월 재·보선에서 귀환을 노리고 있다.
안철수 등장으로 ‘신예들’ 바람 예고

재·보선을 통해 정치 거물이 재등장할지, 아니면 새로운 정치 주체가 등장할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대체로 과거 재·보선은 신진 세력보다 정치 거물들의 귀환 통로로 활용됐던 적이 많다. 전국 단위로 치러지는 총선은 상대적으로 ‘새 피 수혈’을 통해 조직적인 세력 교체가 이뤄지는 기회가 되기 쉽지만, 재·보선은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낮아 조직력이 승부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기존에 다져놓은 기반이 어느 정도 있는 정치 거물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은 분위기가 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이면서 정국을 파행으로 몰고 가는 등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극심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리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특히 그 중심에 안 전 교수가 서면서 ‘새 정치 바람’이 확산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현재 노원 병에서는 안 전 교수의 대항마로 거론되는 인사가 여야를 합해 10여 명에 이른다. 우선 새누리당은 노원 병 선거 결과가 박근혜 정부의 초기 국정 운영 동력과 직결돼 있다는 판단에 따라 필승 카드를 찾고 있다. 안 전 교수가 새 정치를 내세운 만큼 새누리당 역시 새 정치 이미지와 부합하는 맞불 카드를 찾고 있다. 지금까지는 ‘박근혜 키즈’로 불리는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주로 거론됐던 것이 사실이다. ‘새롭고 젊고 참신함’을 무기로 새누리당의 노쇠한 이미지를 불식시키면서 젊은 층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안 전 교수의 출마 선언 이후에는 상황이 변했다. 안 전 교수와의 비교 우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에서는 “안 전 교수와 같은 거물급 신인이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대선 때 중앙선대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을 지낸 안대희 전 대법관의 이름이 부쩍 자주 거론되는 이유다. 내년 서울시장 자리를 노크할 것으로 점쳐지는 홍정욱 전 의원이나 현 당협위원장인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하마평에 오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민주당은 노원 병에 후보를 낼지 여부부터 고심하고 있다. “안풍(安風)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후보를 꼭 내야 한다”(수도권 3선 의원)는 의견과 “대선 때 안 전 교수가 양보했으니 이번엔 민주당 차례”(비주류 재선 의원)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그동안에는 정동영 상임고문과 천정배 상임고문 등 거물급 이름이 오르내렸고, 486그룹의 임종석 전 의원과 박용진 대변인 등도 자천타천으로 거명됐다. 하지만 안 전 교수의 등장 이후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사는 없다. 반면 19대 총선에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에게 야권 단일 후보를 양보했던 이동섭 지역위원장은 출마 의지가 강하다. 진보정의당은 노회찬 대표의 부인 김지선씨를 출마시킬지 고심 중이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신인이지만 실제 지역구 안에서는 인지도가 높고 노 대표에 대한 동정론이 작용할 경우 득표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합진보당에서는 정태흥 서울시당위원장의 출마가 유력한데, 그 역시 신진 인사로 분류할 수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안철수 전 교수·이준석 전 비대위원·소종섭 전 편집국장·안대희 전 대법관(왼쪽부터) 등이 새 정치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부여·청양에도 새 정치 바람 불까

부산 영도에서는 새누리당 핵심인 김무성 전 대선총괄선대본부장의 출마가 확실시된다. 김 전 본부장은 과거 친박계 좌장으로 통했지만, 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 대통령과 멀어졌다가 지난해 총선 때는 공천조차 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대선을 총지휘하며 다시 박근혜 정부의 실세로 자리 잡았다. 민주당에서는 거물과 신인이 모두 거론된다.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장관과 김비오 지역위원장이다. 통합진보당 민병렬 최고위원은 이미 출마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이들이 김무성 전 본부장의 대항마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오히려 정치권이 주목하는 인사는 안철수 사단의 일원인 김성식 전 의원이다.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김 전 의원은 정치 경력이 꽤 되지만 많은 국민은 소장 개혁파로 인식하고 있다. 그가 지난해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을 때 오히려 당연하다는 평이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만만찮은 정치 이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신진 인사 이미지까지 두루 갖춘 그가 안풍(安風)을 탈 경우 섣불리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에 대해 현재 손사래를 치고 있다.

서울은 야세(野勢)가 강하고, 부산은 여세(與勢)가 강하다는 점에서 이번 4월 재·보선의 승부처는 중원의 충남 부여·청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 지역이 보수 성향이 강한 곳이어서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의 수성이 오히려 부산보다 쉬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공천 경쟁 역시 새누리당만 사뭇 치열하다. 이곳 또한 정치 거물과 신진 세력 간 다툼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때 대선 후보 반열에 올랐던 이완구 전 충남도지사가 출사표를 던졌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이진삼 전 의원과 박종선 전 육사 교장, 이영애 전 새누리당 의원도 도전장을 냈다. 부여군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6.2%에 이를 정도로 초고령 자치단체여서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곳에도 새 정치 바람을 예고하며 도전장을 내민 신진 인사가 있다. 대표적인 이가 소종섭 전 <시사저널> 편집국장으로, 출마를 위해 지난해 12월 언론계를 떠나 고향 부여에 정착했다. 소 전 국장처럼 40대 후보가 나선 경우는 이 지역에서도 흔치 않은 일로 꼽힌다. 민주당에서는 정용환 변호사가 새 정치의 기수가 되겠다고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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