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우리 실력 봤지, 함부로 덤비지 마”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03.1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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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아직 안 끝났어, 이제 시작이야” … 새 정부 들어 재점화된 검·경 갈등

정권이 바뀌어도 검찰과 경찰의 싸움은 여전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이명박 정부에서 그야말로 피 튀기는 전쟁을 벌였던 양 권력기관은 대선 직후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다시 박근혜 정부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힘겨루기에 나섰다. 서로의 목표는 단 하나. 새 정부에서도 논란이 불가피한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것이다.

포문은 검찰이 먼저 열었다. 경찰이 내사를 진행하다 무혐의로 종결한 사건을, 검찰이 이번에 다시 전면 재수사해 범죄 혐의를 밝혀냈다. 이에 따라 경찰의 ‘무능력’에 대한 비판은 물론 내사 과정에서의 경찰관 ‘비리’ 의혹까지 제기하는 등 검찰의 공세가 거세다. 지난해 ‘돈 검사’ ‘성(性) 검사’ 등 각종 비리·비위 사건으로 수세에 몰렸던 검찰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격에 나선 모습이다.

지난 2월22일 수원지검 특수부(이주형 부장검사)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폐기물 업체 ㄷ사로부터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국세청 전·현직 직원 3명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3명은 2008년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ㄷ사로부터 5천여 만원을 수수했다. 이들 중 2명은 여전히 현직에 있으며 당시 조사팀장이었던 ㅎ씨의 경우 서기관으로 승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1명은 퇴직 후 세무 대리인으로 활동 중이었다.

여기까지 보면 이번 사건은 국세청 직원의 단순한 비리 사건일 뿐이다. 문제는 이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기 전에 경찰이 이미 한 차례 내사했다는 것이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이하 광수대)는 지난 2010년 이와 관련한 제보를 받고 같은 해 7월부터 2011년 8월까지 내사를 벌였다. 경찰은 그동안 계좌 추적과 통신 수사, 관련자 조사 등을 했지만 뚜렷한 혐의점을 밝혀내지 못하고 결국 내사 단계에서 사건을 접었다. 그런데 올해 1월8일 수원지검이 경기청 광수대에 관련 내사 자료를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공식화한 것이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이와 관련된) 민원이 수원지검에도 접수되었다. 민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료를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자료 넘겨받으려 압수수색 영장까지

그러나 단지 민원을 확인하기 위해 무려 1년 동안 경찰이 내사했던 사건을, 그것도 1년 이상이 지난 뒤 관할 검찰청이 나서 재수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수원지검은 경찰 자료를 넘겨받을 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임의 요청이 아닌,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해 경기청 광수대의 내사 자료를 확보했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당일 오전 전화상으로 광수대에 내사 자료를 넘겨줄 것을 요청했으나 관련 자료가 감찰계로 넘어갔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그래서 오후에 미리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을 가지고 경기청을 찾아 자료를 확보했다.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검찰이 ‘경찰 길들이기’를 위해 강수를 둔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이 시기는 경찰이 ‘성 검사’ 사건 피해자 사진 유출 혐의로 현직 검사 2명 등 검찰 관련자 5명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을 때이 다. 때문에 검찰이 이에 대한 보복성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재수사를 공식화한 지 2개월도 채 안 되어 관련 세무 공무원들의 범죄 혐의를 잡아냈다. 1년여 동안 내사를 했던 경찰로서는 망신이다. 당시 내사를 진행했던 한 경찰관은 “내사라는 것은 수사와 달리 한 사건만 집중해서 다루지 않는다. 여러 가지 사건을 동시에 들여다본다. 이 사건 역시 1년 동안 이 건만 조사한 것은 아니다. 또, 검찰에 제보된 민원이 (경찰에 제보된 것보다) 좀 더 정확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앞으로 있을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에서 경찰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수사권 조정 논의가 있을 때마다 경찰보다 검찰 수사가 우위에 있음을 강조해왔다. 실제로 지난 2011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수사권 조정 논의가 이뤄질 당시 검찰측은 “경찰이 놓친 사건을 검찰 수사로 바로잡았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잇따라 발표하며 여론몰이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김광준 전 검사의 뇌물 수수 사건을 맡았던 김수창 당시 특임검사는 “검사가 경찰보다 수사를 더 잘하고, 법률적 판단이 낫기 때문에 수사 지휘를 하는 것”이라며 “간호사와 의사 중 의사가 (간호사보다) 더 낫기 때문에 지시를 내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해 경찰의 반발을 불렀다. 이와 관련한 한 경찰 고위 간부의 설명이다.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경찰이 고위 공무원, 정치인, 대기업 총수 등에 대한 특수수사를 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지금도 일반 형사 사건은 경찰이 대부분 수사하고 있지 않나. 이번 사건은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 검찰은 새 정부에서 수사권 조정 논의가 본격화되면 이번 사건을 물고 늘어질 것이다. 경찰은 권력형 비리, 대형 게이트를 수사할 능력이 없다는 논리를 펼 것이 뻔하다.”

한 발짝 더 나가 검찰이 당시 내사를 진행했던 경찰들의 비위 혐의를 포착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경찰이 금품을 받고 사건을 덮었다는 의혹이다.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내사 자료를 넘겨받은 것 역시 임의 요청으로 할 경우 자료가 조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을 갖추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시 내사에 참여했던 한 경찰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정당하게 수사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이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경찰은 3월5일 서울지방국세청을 사상 처음으로 압수수색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경찰, 사상 처음 서울국세청 압수수색

경찰은 오랜 요구 끝에 지난해부터 내사 자율권을 보장받았다. 신문조서 작성, 긴급체포, 체포·구속 영장 청구, 주거지 압수수색 등의 경우에 한해 내사 종결 후 검찰에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내사 단계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는 경찰 책임이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경찰의 비위 의혹까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경찰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1월16일 부산 연제경찰서의 최 아무개 경사가 금품을 받고 내사를 종결한 사실이 검찰에 발각돼 파문이 일었다. 최 경사는 항만청 납품 과정에서 타 업체의 입찰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던 한 해상교통 관제 시스템 공급업체로부터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2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긴급 체포됐다.

최 경사의 내사 종결로 묻힐 뻔한 이 사건은 부산해양경찰서가 지난해 7월 재수사에 들어가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해경은 최 경사의 내사 결과와는 달리 관련 업체 대표 등 2명을 구속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검찰이 최 경사의 사건 수사를 재조사하면서 금품수수 정황이 드러났다. 최 경사는 해경의 수사가 시작되자 수사 상황을 관련 업체에 알려준 혐의도 받고 있다. 최 경사는  긴급체포된 후에도 업체로부터 받은 금품에 대해 대가성 없이 차용증을 쓰고 빌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최 경사를 대기발령 조치하고 수사 상황을 지켜본 뒤 징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올 초부터 불거진 일련의 사건으로 경찰의  행보도 다급해졌다. 경찰은 올 상반기부터 총경·경정급 고위 간부가 중대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대(大)수사관제를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특수수사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3월5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서울지방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 역시 경찰의 능력을 새 정부에 보여주기 위한 실력 행사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지난 2010년 서울국세청 소속 조사관이 유명 사교육업체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2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고, 유명 식품회사와 해운회사 등으로부터 1억원의 금품을 별도 수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이 조사관이 뇌물 상당액을 당시 담당 국장·과장, 실무 책임자 등 상관에게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국세청의 이와 같은 조직적인 ‘상납 사슬’을 밝혀낼 경우 새 정부에 확실한 눈도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월21일 국정 과제 발표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 국민 참여를 통해 차후 재논의하겠다고만 밝혔다. 뚜렷한 결론이 없다 보니 양쪽 모두 몸이 달아 있는 모양새이다. 이에 따라 검·경이 서로의 치부를 들추며 진흙탕 싸움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수사권 조정에 대한 어정쩡한 봉합으로 김광준 검사 비리 사건 당시 사상 초유의 이중 수사 사태가 발생한 이명박 정부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왼쪽)김진태 대검 차장 ⓒ 시사저널 이종현. (오른쪽) 김기용 경찰청장 ⓒ 시사저널 이종현
새 정부의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차기 검찰과 경찰 수장에 누가 오를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경 전쟁의 사령탑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검란(檢亂) 파동 이후 한상대 전 총장이 퇴임하면서 지금까지 공석으로 남아 있는 검찰총장에는 김진태 대검 차장(사법연수원 14기)과 소병철 대구고검장(사법연수원 15기) 등 2명이 앞서나가며 막판 경쟁을 하는 분위기다. 검찰총장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 이들 외에도 채동욱 서울고검장(사법연수원 14기)을 추천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 들어 바뀐 법무부장관 아래서 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열어 다른 인물을 후보군에 올릴 가능성까지 제기됐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검찰 고위 관계자의 얘기다. “김 차장이 유력한 분위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후보 시절부터 김 차장을 낙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 고검장의 경우 검찰 내에서 신망이 두텁다. 김 차장의 아들이 사구체신염으로 군 면제를 받았는데, 소 고검장은 모두 깨끗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소 고검장이 호남 출신이라는 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경찰에서는 현 김기용 경찰청장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찰청장 임기 보장을 공약한 까닭이다. 만약 경찰청장이 교체될 경우 호남 출신인 강경량 경기청장과 조직 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이성한 부산청장이 거론된다.

국세청장은 최근 들어 연이어 터지고 있는 세무 공무원 비리 사건으로 ‘외부 인사 영입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김영세 연세대 교수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직 내에서는 당연히 내부 인사가 (청장에)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부에서 온다면 안 의원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안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뜨고 있는 위스콘신 대학·성균관대 출신으로 이른바 ‘성골’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거꾸로 이 점이 안 의원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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