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나쁜 학교 문 닫아!”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3.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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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공립학교들 대거 폐교 위기…뉴욕 한인회 강력 반발

플러싱은 뉴욕의 대표적인 한인타운이다. 이곳에는 1백38년 전통을 자랑하는 플러싱 고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지금 폐교될 처지에 있다. 지난해 초 뉴욕 시 교육정책위원회(PEP)는 학업 부진 등을 이유로 뉴욕 시에 있는 24개 공립학교를 폐교하기로 결정했다. 플러싱 고교 폐교도 뉴욕 시 결정에 따른 것이다. 뉴욕 시가 폐교 결정을 내리자 한인단체, 유색인종연합회(NACCP) 등 여러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한인회의 반발이 거셌다. 퀸즈한인회는 “뉴욕 시 최초의 인종 통합, 무상 공립학교인 플러싱 고교는 한인 사회에도 큰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지닌다”며 “폐교는 교원 해고는 물론이고 학생들에게 상처로 남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 지역 사회·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19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공립학교 폐쇄에 관한 공청회에서 학부모와 교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 The New York Times
오바마 정부가 공립학교 폐쇄 주도

폐교 문제는 법정으로까지 번졌다. 지난해 7월 법원은 “폐교 결정은 뉴욕 시가 뉴욕시교원노조(UFT)와 맺은 노동 계약 조항을 위반했다”며 절차상 문제를 들어 폐교 철회를 결정했다. 뉴욕 시는 이에 승복할 수 없다며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1월 뉴욕 시교육청은 전체 공립학교 중 60개교를 우선 폐교 대상으로 다시 지목했는데, 플러싱 고교는 여기에 포함돼 또다시 위기에 내몰렸다.

공립학교 폐교는 플러싱 고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각 주나 시들은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해 먼저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립학교의 문을 닫는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시카고 시 당국은 6백81개 공립학교 중 6분의 1에 해당하는 1백20여 개 학교를 폐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11개 학교는 철회했다. 필라델피아 시도 지난해 40여 개 학교를 폐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우선 고려 대상에 지목된 학교들이 대체로 학생들의 시험 성적, 출석률, 졸업률, 대학수학능력 등 여러 면에서 표준 기준에 못 미치기 때문에 폐교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행정 당국의 입장이다. 하지만 플러싱 고교의 경우 지난 3년간 졸업률이 54%, 59%, 60%로 계속 상승하는 등 꾸준히 개선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반대론자들은 “무조건 학교 문을 닫고, 교사를 해고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기준 미달 공립학교에 대한 폐교 정책은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한 방편이다. 오바마 정부의 교육 정책을 지지대로 삼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집권 초기 학업 성취도가 만성적으로 나쁜 학교 5천여 곳을 폐쇄하고, 교장과 교사들을 해고한 뒤 새로 개교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2009년 5월, 안 덩컨 미국 교육장관은 “어린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는 일생에 한 번뿐이기 때문에 학생 성적이 고질적으로 나쁜 학교는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며 “매년 전국 학교 중 최하위 1%에 드는 1천여 개 학교를 바꿀 수 있다면 교육 환경과 학생 수천만 명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를 위해 학교당 100만 달러씩 총 50억 달러의 예산을 학교 시설 개선과 교육 프로그램 개혁 그리고 교사 수준 향상에 투입할 계획임을 밝혔다. 미국 대통령에게는 학교를 직접 폐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이에 따라 연방 예산을 주(州) 당국이나 교육자치구 등에 지원해 교육 개혁을 실현할 예정이었다. 학부모들과 교원노조는 반발했다.

뉴욕 시는 1월17일까지 교육 개혁을 위해 새로 도입한 교사평가제에 대해 뉴욕 교원노조와 합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교사 평가제는 학생들의 시험 점수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교사가 학생들의 시험 경쟁력을 만들어내라는 의미다. 노조는 2015년 6월30일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평가 방식을 변경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2015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게 되면 실력 없는 교사를 퇴출하는 데 최소 2년이 필요한 만큼 제도 시행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며 이를 거부했고, 결국 합의가 무산되었다. 이에 따라 2017년이 되어야 연방정부 프로그램을 따를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오바마 2기 정부가 2016년에 끝나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 무산으로 뉴욕 주는 연방 기금 지원금 2억5천만 달러를 잃게 됐다. 그 외에 2억 달러가량의 각종 기금 지원 신청 자격까지 상실했다.

교사들은 성적 올리는 방법에만 몰두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살리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특수 목적 고등학교(특목고)나 특수학교로 전환하자는 운동이 대표적이다. 뉴욕한인학부모협회는 플러싱 고교를 특목고로 전환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뉴욕 시교육청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해외 출생 이민자 학생들을 위해 특성화 프로그램을 갖춘 인터내셔널 스쿨을 설립한다는 방침을 밝히는 등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경쟁력 없는 학교를 솎아내는 미국의 공교육 정책은 학생들에게 좀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있다. 미국 교육 정책 실무자이자 전문가였던 다이앤 래비치 뉴욕 대학 교육학과 교수는 이렇게 비판했다. “과거 미국 교육부 차관보 때 국가 교과 과정을 담당하며 학업낙오자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학교 선택제, 차터스쿨 등 교육에 비즈니스 원리를 도입한 정책들을 도입했다. 학업성취도 시험을 통해 학교에 책임성을 부과하면 좋지 않은 학교는 드러나고 따라서 학교 선택제를 통해 학생들이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해보니 미국 공교육을 좋게 만들려는 개혁이 오히려 공교육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래비치 교수는 여러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학업성취도 시험에 따라 기준을 달성하지 못한 학교를 폐쇄하는 정책을 시행하니 교직원들은 학생들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보다 오직 좋은 성적만 내도록 훈련받게 된다는 것이다.

애초 공립학교의 발전을 돕기 위해 설립된 차터스쿨(대안학교 성격을 지닌 공립학교)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만 입학하면서 다른 공립학교를 존폐 위기로 내모는 주범이 되고 있다. 래비치 교수는 “미국 공교육 개혁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교육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아니라 교육자에게 맡겨야 하고, 학생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교과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교사들에게도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고, 오류가 많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시험 점수를 바탕으로 하는 교사 성과급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양성의 국가 미국에서 적용되는 공교육의 획일적인 잣대가 지금 미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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