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 못 믿는 ‘메이드 인 차이나’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 기고가 ()
  • 승인 2013.03.1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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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민 파동 후 홍콩 분유 싹쓸이…다른 나라서도 사재기

베이징 시에 사는 공무원 마러 씨(여·32)는 요즘 걱정이 태산 같다. 지난해 태어난 아들에게 먹일 분유를 구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마 씨는 그동안 홍콩과 외국을 다녀오는 지인들을 통해 어렵게 외국산 분유를 구했다.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중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인 타오바오(淘寶)에서 구매 대행으로 홍콩에서 판매되는 외국산 분유를 사왔다. 그런데 3월부터 인터넷을 통한 분유 구매를 못하게 됐다. 2월 말 베이징 시 공상국이 ‘식품안전조례’를 개정해 오프라인 상점이 없는 식품 소매업자가 온라인에서 대량 포장 식품과 유제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이번 베이징 시의 조치는 3월1일부터 홍콩 정부가 마련한 ‘분유 수출입 허가 조례’의 연장선에서 나왔다. 홍콩 정부는 수출입 허가를 받지 않은 개인이 분유를 1.8㎏ 이상 외부로 반출할 수 없도록 했다. 1.8㎏은 분유 두 통 분량이다.

타오바오에서 구매가 대행되는 외국산 분유는 홍콩에서 다이궁(帶工:보따리상)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온다. 마 씨는 “멜라민 파동 이후 영아를 둔 부모들은 중국산 분유를 철저히 불신한다. 그나마 홍콩에서 외국산 분유를 공급받았는데 앞으로 어려워진다니 어찌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의 보따리상이 홍콩의 분유를 잔뜩 구입한 뒤 휴식을 취하고 있다. ⓒ Imagine china 연합
빵·과자·사료 등에도 멜라민 첨가

2008년 일어난 멜라민 분유 파동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 먹거리와 관련해 벌어진 최악의 사건이다. 그해 6월28일 간쑤(甘肅) 성 란저우(蘭州) 시 인민해방군 제1병원에서 영아 16명이 신장결석 증상으로 입원하면서 사건이 터졌다. 며칠 뒤 다른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통틀어 59명의 아기가 같은 증세를 호소했다. 그중 한 영아가 사망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입원한 아기는 모두 같은 회사 분유를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최대의 분유 생산 기업인 싼루(三鹿) 그룹 제품이었다.

중국 당국은 허베이(河北) 성 스자좡(石家庄)에 소재한 싼루를 조사했다. 2008년 9월9일 문제의 분유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고 발표해 13억 중국인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멜라민은 주로 합성수지를 만드는 물질이다. 열경화성 플라스틱 성분으로 본드·내연제 등의 제조에 쓰이는 공업용 화학제품이다. 멜라민을 인간이 먹을 경우 신장결석이나 요도결석에 걸릴 수 있다. 조사 결과 싼루는 분유뿐 아니라 요구르트·빵·과자·사료 등 여러 가공식품에도 멜라민을 첨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멜라민을 섞은 일부 유제품은 외국으로 수출됐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벌어진 비도덕적 행위는 지구촌을 경악시켰다. 50여 개국이 중국산 유제품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중국인들이 받은 타격은 더욱 컸다. 영아 6명이 숨지고 30여 만명이 치료받는 참혹한 대가를 치렀다. 무엇보다 분유로 인한 사고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국인의 공분을 샀다. 2004년에도 영양분이 없는 저질 분유가 대량 유통됐다. 저질 분유는 영아들에게 머리만 커지는 대두증 증상을 낳게 했다. 그로 인해 수십 명의 아이가 죽었다.

중국인들이 분노했던 또 다른 이유는 싼루와 정부 당국이 사전에 멜라민 분유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싼루는 2007년 12월 자사 분유를 먹은 아기들이 신장결석에 걸렸다는 진정을 접수받았다. 관할 지방 정부인 허베이 성도 이 사실을 보고받았다. 하지만 싼루는 진상을 감췄고, 지방 정부는 지역 경제의 효자인 싼루를 감싸기 바빴다.

중앙 정부도 조사 결과 발표에 늑장을 부렸다. 당시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코앞에 둔 상황이었다. 이 문제가 불거져 국가 이미지가 추락할 것을 우려해 발표를 늦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단속이 진행되자 싼위안(三元)·광밍(光明)·이리(伊利)·멍뉴(蒙牛) 등 다른 대형 업체의 유제품에서도 멜라민 성분이 확인됐다. 지역으로 봐도 중국 전역에 골고루 분포됐다. 2008년 한 해 동안 총 20개사 31개 제품에서 멜라민 성분이 검출됐다. 광밍, 이리, 멍뉴 등은 국가질량총국이 ‘명품’으로 지정한 중국의 대표 브랜드다. 2001년부터 국가질량총국은 ‘중국 명품’을 선정했는데, 2008년 말에는 그 수가 2천개에 달했다. 자국 상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명품’에서 사단이 난 셈이다. ‘중국 명품’도 이 정도인데 다른 중국산 제품은 어떻겠느냐는 회의론이 중국인들을 절망케 했다.

홍콩 분유값 50~60% 급등

중국산 분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자 중국인들은 대안 찾기에 나섰다. 그래서 등장한 방법이 홍콩에서 외국산 분유를 사오는 것이었다. 과거와 달리 중국인은 홍콩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분유는 홍콩에 가서 쇼핑하는 필수 품목 중 하나가 됐다. 너도나도 외국산 분유를 대량 구입해 되돌아갔다.

문제는 분유를 사가는 중국인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직접 사가는 사람보다 구매 대행을 통해 보따리장수들이 들고 나가는 분량이 엄청났다. 그 양이 점점 늘어나 이제는 7백10만 홍콩 인구가 소비할 분유조차 구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수년간 분유값이 50~60%나 급등하자 홍콩인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민심의 동요를 방관하기 어려운 홍콩 정부는 지난 1월 슈퍼마켓에서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분유 수를 4개로 제한했다. 3월부터는 다이궁을 통해 중국으로 반출하는 것까지 규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인의 분유 사재기는 홍콩에서 그치지 않는다. 호주·뉴질랜드·네덜란드 등 주요 분유 생산국에도 여파가 미쳤다. 2009년부터 중국인들은 이들 나라에 여행 가서 분유를 대량으로 사들였다. 중국인의 때아닌 공습(?)에 놀라 해당 국가들도 상점에서 구매량을 제한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중국인의 분유 구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분유 문제는 중국 내 식품 안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작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종이로 속을 채운 만두, 호르몬이 섞인 사료로 키운 돼지 등의 식품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말에는 KFC의 19가지 치킨 가운데 8가지에서 항생제가 과다 검출됐다. 외국 브랜드라도 ‘메이드 인 차이나’라면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2월 톈진과학기술대학 연구팀은 집에서 손쉽게 식품의 유해성 여부를 가려낼 수 있는 가정용 테스트기를 개발했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유해 식품을 가려내는 아이디어 상품까지 등장한 것이다.

식품 안전사고의 근본 원인은, 중국 전반에 효율성만을 추구하고 사회적 책임과 상도의를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한 데 있다.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부작용이기도 하다. 중국인 스스로가 중국산을 ‘저질’ ‘유해 상품’이라고 낙인찍는 이상 중국 상품의 이미지 제고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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