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조원이 불러올 ‘나비 효과’는?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3.03.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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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국 소유 해외 금괴 회수 송환 결정… ‘마르크화’ 복귀하려나

50년 이상 해외에 보관해두었던 독일 소유의 금(金)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온다. 독일 중앙은행은 “독일이 소유한 금의 절반가량을 독일 중앙은행 금고에 두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갑작스런 독일의 결정은 두 가지 의문을 불러왔다. 하나는 금을 품으려는 이유, 다른 하나는 금의 이동 시점이다.

그동안 독일이 소유한 금은 대부분 다른 나라에 보관되어왔다. 특히 미국의 뉴욕연방준비은행 금고 속에 대부분이 들어 있다. 독일의 금 보유량은 3천6백t으로 미국이 보유한 8천3백t 다음으로 많다. 액면가만 1천4백40억 유로(약 2백4조7천6백억원)에 달한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은 60개국 이상의 금을 보관하고 있는데, 독일은 전체 금 보유량의 절반에 가까운 1천5백36t을 이곳에 예치했다.

논쟁은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되었다. 독일의 금이, 있어야 할 곳에 보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독일 중앙은행이 금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독일은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독일 정부의 재무 관리를 감독하는 독일 연방감사원은 독일 중앙은행의 금 관리 방법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독일 연방감사원 담당자들은 자국 내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금괴를 해외에 있는 금괴보다 더 치밀하게 감독하는 점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다. 독일 내에 보관 중인 금괴는 확인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뉴욕연방준비은행이나 프랑스 중앙은행에 소장하고 있는 금괴는 상대 국가의 확인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중앙은행들은 독일 소유의 금괴를 확인하는 연례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지만, 독일 정부는 자신들의 금괴를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는 작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독일 중앙은행은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보관 중인 1천5백t 중 일부와 파리 프랑스 중앙은행에 보관되어 있는 4백50t 전부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EPA연합
“해외 금괴 왜 제대로 확인하지 않나”

독일 연방감사원은 2011년 독일 중앙은행에 대한 연례 기밀 감사보고서에서 ‘독일 중앙은행이 해외에 있는 금괴를 매년 직접 점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독일 중앙은행은 감사원의 지적을 두고 “각국 중앙은행들은 상호간 금 보유고를 점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며 감사원의 제안을 거절했다.

2012년 독일 국회의 재무위원회에서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독일 국회의원들은 일간지 빌트가 ‘독일 중앙은행이 5년간 독일이 보유한 금에 대해서 점검을 하지 않았다’고 보도하자 독일 중앙은행에 대한 감사원의 보고서를 요청했다.

독일이 금을 해외로 옮긴 배경에는 냉전이 있다. 과거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소련의 기습 공격으로부터 자국의 금을 보호하기 위해서 취한 조치였다. 냉전 시대가 끝난 뒤 금은 일부분만 독일로 돌아왔을 뿐이다. 독일 중앙은행은 “세계 주요 금융 중심지에 일정량의 금을 보유하는 이유는 필요할 경우 신속하게 팔 수 있기 때문에 현명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 국회의원들 중에는 ‘해외에 독일 금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다. 집권 여당인 기민당(CDU) 소속 필립 미스펠더는 “금을 직접 보기 위해 개인적으로 뉴욕에 갔지만, 독일 소유의 금을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미스펠더 의원은 “뉴욕연방준비은행의 금고를 방문했을 때 금고 직원들은 어떤 금괴가 독일 소유인지를 보여줄 수 없었거나, 보여줄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기사당(CSU)의 피터 가우바일러 의원은 해외에 있는 독일 금 보유고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가우바일러는 수년 동안 국회 질의를 통해 독일 소유의 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으려고 시도했다. 2011년에는 한 경제학 교수에게 의뢰해 전문가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는데, 거기서 ‘독일 중앙은행은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금을 실제로 확인하지 못해 점검 규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2011년 7월 <슈피겔>은 ‘분데스방크 직원들이 뉴욕에 있는 독일의 금을 직접 확인했다. 그 이전 확인 시기는 2007년이었다’라고 보도했다. 가우바일러 의원은 중앙은행이 해외에 있는 금에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를 미심쩍어 하면서 “일부 금이 대출된 것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중앙은행은 이를 부인했다.

가우벨러는 “중앙은행이 국내에 있는 금은 모범적으로 관리하면서 해외에 있는 금을 부실하게 관리하고 있는 점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뉴욕연방준비은행 관계자들이 보내준 문서에 만족해왔지만 막상 금을 직접 확인하는 것은 거절당한 셈이다.

어떤 이는 “금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대출되었다”고 의심한다. 심지어 뉴욕의 금고에는 “가치 없는 약속어음 꾸러미만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냉전 시대 독일이 금을 되찾겠다고 요구했을 때 “독일 주둔 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미국이 협박했다는 괴담도 나돌았다.

1월16일, 독일 금괴 반환을 결정지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운데), 옌스 바이트만 독일중앙은행 총재(왼쪽), 필립 뢰슬러 경제장관(오른쪽)이 한 자리에 모였다. ⓒ EPA연합
금 반환 요구에 중앙은행도 항복

논쟁이 커지면서 금의 송환을 요구하는 청원서도 출현했다. 독일의 유명 기업인들과 국회의원들이 청원서에 서명했다. 청원서에는 ‘세계적인 재정 위기와 채무 위기의 결과로 독일의 금이 보관 국가에 의해 몰수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중앙은행측은 여전히 금을 그대로 해외에 두기를 원하는 기색이었다. 독일 내 관측통들은 “해외의 금을 프랑크푸르트로 옮기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그보다 독일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만으로 이미 불안정한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유로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이 본국으로 돌아오도록 한 결정에 못내 불만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독일의 금은 다양한 용도의 밑천으로 거론되어왔지만 매번 좌절되었다. 로만 헤르조그 전 독일 대통령은 “의료보험금의 바탕으로 삼자”고 했고, 자민당(FDP)의 전 원내총무였던 라이너 브뤼더를레는 “자연재해기금으로 쓰자”고 했으며, 에르니스트 벨트케 전 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교육기금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최근 유로존 회원국은 독일의 금을 유로본드(유럽연합 차원의 채권)를 조성하는 담보로 삼자고 제안했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를 거절했다.

유로화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금’의 중요성은 매우 커진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독일이 유로가 해체될 경우에 대비하고 있는데, 새로운 독일 마르크화가 도입될 때 이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금에서 찾고 있다”고 분석한다. 독일로 반환되는 금은 유로 회원국의 바람대로 ‘유로화의 금본위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마르크화의 금본위제’를 위해서라는 개연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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