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남자도, 어머니가 싫다
  • 하재근 | 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3.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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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속 여성 혐오와 모성애 실종 이면

‘딸바보’라면서 아버지만 뜬다. 이상하다. 어머니라고 ‘딸바보’가 되지 말란 법이 있나. 지금은 휴머니즘과 가족애의 시대. 아이가 뜨고 부성애가 주목받는다. 그런데 어머니는 없다. 원래 모성애야말로 불황기에 대중이 원하는 가장 따뜻한 품이었다. 가족애가 최고의 키워드로 떠오른 지금,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사라졌다. 왜일까.

어머니뿐 아니라 여성 자체가 환영을 못 받는다. <일밤>이 여성 멤버들로 이뤄진 <무한걸스>를 편성했을 때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그때 필자는 “여자들이 나오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대중이 여자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 후 <무한걸스>는 조기 종영했다. 최근 여배우들을 주축으로 했던 <토크클럽 배우들>도 비슷한 신세다.

한국 영화 최전성기의 과실을 누리는 것도 모두 남성 배우다. <광해> <도둑들> <7번방의 선물>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등 주요 화제작의 중심에 남성이 있다. 예능 MC도 남성 위주다. 여성으로서 메인 MC 반열에 있는 사람은 박미선 정도가 유일한데 그나마도 악플에 시달린다.

이른바 루저녀를 필두로 한 ‘○○녀’ 사태도 주기적으로 터진다. 사건·사고는 언제나 터지고, 범인이 남성일 경우가 많지만, 유독 여성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악플이 집중된다. 죄질에서도 여성의 경범죄 수준이 남성의 흉악 범죄와 동급으로 단죄된다. 남성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는 악플 내용이 행위 자체에 국한되지만 여성이 문제를 일으키면 ‘여자들이란~’ 하면서 전체가 매도되기 일쑤다. 대중이 여성 자체를 얄미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여사’ 신드롬도 나타났다. 김 여사란 여성 운전자를 일컫는 말인데, 네티즌이 경멸하고 비웃는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다. 네티즌이 조롱하는 또 다른 키워드로 ‘된장녀’나 ‘보슬아치’도 있다. 모두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TV 프로그램 tvN의 에서 방송되는 ‘나는M이다’에서는 엄마가 집안 서열 1위이다. ⓒ tvn 제공
아내는 속물적이고 불합리 하다?

지금은, 말하자면 여성 혐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이 따뜻한 가족애를 간절히 희구하는 상황에서조차 어머니가 사라진 것은 이런 흐름과 연관이 있다. 물론 트렌드는 항상 변하는 것이기에 한때 모성애가 주목받다가 부성애로 가고, 그러다 모성애로 돌아가는 사이클은 분명 존재한다. 그런 사이클을 감안하더라도 최근의 부성애 집중 현상은 여성 혐오를 빼고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기이하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까지도 여성을 싫어하는 것 같다. 어쩌다 한국인은 여성을 이렇게 싫어하게 됐을까.

대중문화는 대중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대중의 생각은 다시 대중문화의 표현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악순환 고리를 이뤄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게 된다. 여성의 경우도 그렇다.

최근 종영한 국민 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보자. 이 작품에는 세 집안이 나온다. 주인공 서영이네 집안에는 아버지만 있는데 그야말로 자식을 향한 애끓는 사랑, 헌신적인 희생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쌍둥이 남매 중에서 딸은 아버지의 존재를 숨기고 남편에게 의지한 반면, 아들은 그러지 않는다.

그 아들이 장가 든 집안에서는 장모가 가장 드센 인물이다. 장모는 극 중에서 ‘돈, 돈, 돈·출세, 출세, 출세·체면, 체면, 체면’에 혈안이 된 캐럭터다. 딸이 가난한 남자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때리고 윽박지른다. 반면 장인은 부인의 몰인정함에 반발하며 딸을 감싼다.

주인공 서영이가 시집간 집안에서는 시어머니가 우아함을 가장한 속물이다. 시어머니가 가장 원하는 것은 관심·카드·쇼핑 등이다. 서영이를 맞아들일 때 시어머니는 끝까지 배경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시아버지는 서영이의 사람됨을 알아준다. 이 작품 전편에 걸쳐 아버지는 남이 알아주지 않는 설움을 안고 열심히 일하는 존재로 그려진 반면, 어머니는 지겹도록 ‘따따거리는’ 역할이다. 요즘 막장 드라마답지 않게 대다수 등장인물이 착한 성격인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음모를 꾸미는 악역은 젊은 여성이다.

그 전 국민 드라마였던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도 어머니는 모두 속물적이고, 불합리하고, 이기적인 성격이다. 반면에 아버지들은 푸근하다. 최근 사극인 <마의>에서 궁중 최고 어른으로 남녀를 대표하는 왕과 대비를 보면, 왕은 합리적인 데 반해 대비는 끊임없이 우겨대고 좁은 소견으로 주인공을 핍박한다. 이런 예는 한도 끝도 없다.

그 밖에도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아니면 능동적일 때는 극단적 악녀로 그려진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여주인공은 시각장애인으로 궁극의 수동성을 보여준다. <마의>의 여주인공은 극의 대부분을 남자 주인공 소식을 듣는 모습으로 때운다. <야왕>에서 능동적인 여주인공은 돈 많은 집안 며느리가 되기 위해 자식까지 버리는 초악녀다.

여주인공에게 물을 뿌리거나 뺨을 때리며 패악을 떠는 것도 어머니 몫이다. 최근 <백년의 유산>에서는 여주인공을 정신병원에 가두는 상상 초월의 시어머니까지 등장했다. 그럴 때 구원자로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멋진 남성이다.

상황이 이러니 공감 예능으로 이름난 <롤러코스터>가 최근 ‘나는 M이다’(나는 에미다)라는 코너에서 어머니를 공포영화의 악귀처럼 묘사하자 시청자의 찬사가 쏟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모성애가 뜰 수 있겠는가.

 

찌질한 남성의 분풀이로 비쳐

20세기 초 미국에서 양극화가 극심했던 무렵, 여성 운전자에 대한 혐오가 사회 현상으로 나타났다. 양극화로 인한 분노가 막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기 시작한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분출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도 이런 것과 비슷한 구조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울분을 만만한 여성에게 화풀이하는 셈이다.

가부장적 구조가 수천 년 지속된 나라에서 여성은 아직 독자적인 물적 토대를 확보하지 못했다. 여성은 여전히 가정이라는 작은 세계에 매여 있다. 그것이 여성을 수동적이거나 의존적인 존재로 느껴지게 만든다. 불황으로 각박해진 대중에게는 의존적인 사람을 봐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남성·여성 할 것 없이 모두 여성을 싫어하게 됐다.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절대적 보호자인데 거기엔 사회적 능력을 갖춘 아버지가 더 어울렸다.

보통 자식 교육은 어머니 몫으로 여겨진다.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경쟁은 어머니를 자식 잡는 괴물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극성스러움을 탓하기 때문에 ‘따뜻함’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까지 여성을 밉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니 ‘여성 혐오’ 발언을 농담처럼 스스럼없이 하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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